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지하철에서 읽기엔 감당하기 벅찬 정도의 무게감이 있어서 출퇴근길엔 동행하지 못했다. 동행하다가 내려놓기 일쑤였다. 생활 잡음이 많아 여기저기서 읽기가 참 벅찼던 소설집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뜨끈한 라떼 한잔과 함께 먹다가 시럽을 추가했다. 밋밋하게 그렇게 저렇게 별다른 기승전결이 없이 아주 평온하지만, 그것이 지금 현대사회의 삶일까 싶기도한 글들. '참 재미없게 산다.' 싶을정도로 글속에 나오는 그 문장들이 요즈음의 몇몇 사람들의 삶을 잘 대변해줘서, 일상적이지만 일상인듯 읽어내려가지는 못했다.(특유의 상큼함이 있는 이기호씨의 소설은 제외다.)

황정은 작가님 빼고도 김숨, 김언수, 윤고은, 윤성희, 이기호, 편혜영 작가까지, 그간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 분들의 작품이 실려있어서 더 끌렸던 이번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다. 편혜영 작가님의 <홀>이 더 기대되기도 했고, 이기호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 또 좋았고, 이상문학상 작가인 김숨 작가님도 굉장히 궁금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을 자신은 없었다.)

 

 

 

<웃는 남자> _ 황정은

황정은 작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으로 만남을 시작하고 싶었다. 꼭 읽어보고 다른 작품을 읽어보리라 했건만 처음 접하게 된 소설이 상받은 소설이라니. 그럼 더 무겁고 깊이가 다를거라는 예상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작품들 역시 이렇게 남다른 건조함과 묵직하면서도 수평선 같은 작품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읽기전 심사평을 먼저 읽고나서 봐서 그런지 확실히 몰입도도 좋았고, 이해도 빨랐다. 시집이 아닌이상 해설을 챙겨보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득 <계속해보겟습니다>와 <百의 그림자>도 이런 느낌일지 기대되기도 했다.

심사평이 없었다면, 황정은 작가님의 웃는남자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싶기도 했을만큼, 넓은 폭을 가진 틀 안에서 고요하게 움직이는 듯 했던 작품집이었다. 몇몇개의 작품들도 그 폭의 범위가 조금 다를뿐  비슷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손녀하고 딸년은 내 사는 꼴이 지저분하다고 부끄럽다지만...... 그것이 무엇이 부끄러운가? 내가 아는 부끄러운 것 중에 그런 것은 없어. 산 사람의 살림이 오만 잡종인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 p25

 

 산 사람의 살림이 오만 잡종이지, 죽고나면 가지고가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사는 사람의 특권이 오만가지 살림들인데 어째 요즘 미니멀리즘으로 자꾸 줄이려 드는걸까 싶기도 하면서 그래도 또 욕심은 줄여가야지 하며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삶에 있어서 무엇이 정답이라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언론이 만들어낸 혹은 삶의 지혜라며 칭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취할것인가 취하지 않을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것을 골똘하게 내려다보며 d는 바깥인데 조금도 바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방에 틀어박혔다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으나 여기는 여전히, 어딘가의 안쪽이고, 작은 주머니에서 조금 덜 작은 주머니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가 놀랍도록 친밀하고 구태의연했다. 그리고 ...... 그렇다 당신의 말씀 그대로, 이 방은 본래 이러했다. - p32

여기는 여전히 어딘가의 안쪽이고 작은 주머니에서 조금 덜 작은 주머니로 이동했다는 생각.
대기가 놀랍도록 친밀하고 구태의연했다는것.
아주아주 아아아아주.. 문장을 곱씹었다. 씹고 또 씹어도 또 뱉어내면 구태의연한 상태였다.

구태의연했다는 것. 옛날모습 그대로였다는 것.
그렇게 몇번을 퇴고하셨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속을 휘저었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깊이감을 갖고 있으면서 생각에 생각을 꼬리물기 해도 구태의연해지는 문장. 이보다는 더 잘 설명할 수없을 것 같은 단어들의 나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 p94

 

 내내 이어질 그 삶. 무미건조하지만 솔직하지도 않고 더는 아름답지도 않은 그 삶들이 계속 이어지고 또 알고 있으면서 이어지고 또 이어지겠지. 이 문장이 왜그리 무서웠는지 싶다. 내가 피부로 느끼는 전반적인 한국사회는 이런 느낌이 아닐까. 공공연하게 다 아는 거짓말, 솔직할 수 없게 만드는 직위, 위치. 먼발치에서 바라봐도 내면이 다 보여서 더는 아름답지도 않은데, 모두가 망하길 바라는 그 단체는 결국 망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또 그렇게 적나라하게 우린 아무렇지도 않아, 잘못한게 없어 라고 하면서 내내 이어지겠지 싶었다. 적폐는 청산해야한다고 모두가 그렇게 바라면서도 그것이 어떤 이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 그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읽다말고 간혹 너무 밀려오는 건조함이 무서웠다. 세운상가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도 d는 웃지 않았다. 음악만 가만히 듣다가 그렇게 갔다. dd가 사라진 이후의 d의 삶은 무미건조했다. dd의 음반들을 들으면서 고요히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d가 dd를 떠나보내는 방법처럼 보여서 내가 다 먹먹했다.

 

 

 

 

<이혼> _ 김숨

 김숨의 <이혼> 을 읽던 날 아침.
결혼한 남자 지인의 차를 얻어탈 기회가 생겨서 문득 대화를 하게 되었다. 영업을 하는 그사람에게 "언변이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 좋겠다" 고 말했더니, 정작 내 아내에게는 말한마디하는게 뭐가 그리 어려워서 생각한 것 만큼 더 잘해줄 수가 없어 속상하단다.
'늘 내곁에 있어줄 것만 같아서' 라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다보니 여유가 생긴 요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해주려 하는 마음만 있다고 멋쩍게 웃는 동네 형아의 눈을 보니 그 아내가 참 행복하겠다 싶었다. 우리 엄마 아부지를 보아도 이모를 보아도 그 누구를 보아도, 부부라는 관계는 역시 남들이 말하지 못할 그들만의 끈끈함이 있었다.

 

부부의 이혼이 쉽다면 쉬운 세상에서 이 글을 써내려간 김숨 작가는 어떤 느낌으로 썼을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에 대해 한번 쯤 더 생각하게 되었다. 유독 이 글은 결혼 전의 나보다 결혼 후의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하며 읽어내려가는 글이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나는 생각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려운 사람이다. 소설속에 나오는 여러모양의 부부들이 때로는 안좋은 일들로 가득해서, 결국 이혼을 생각하게 만들고 실행하게 되었을때를 그린 그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부부라는건 무언가 특별하고 소중해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도 살아보려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혼도 안한 내가 이혼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기 때문에 더 공감을 못하기도 했다. 연인의 헤어짐과는 다르다던데 연인의 시작과는 다른 결혼이라던데, 나는 다름을 인정할 노력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일까.


<존엄의 탄생> - 김언수
그렇다 할 독특한 문장이 없어도, 눈길을 끄는 문장이 없어도 흐름이 좋아서 이기호씨 작품 다음으로 참 수월하게 읽었다. 앞서서 읽은 두 작품보다 밝은 느낌의 작품이라서 미소를 지으면서도, 개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의 느낌이 막 싫지만은 않아서, 존엄이라는 것은 누가 선택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은 개보다 못한건가 아닌건가. 주인 잘 만나서 좋은 대우 받으며 사는 멍뭉이들은 행복할까. 길에 있는 쫑끼도 대우받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집에가는길에 천하장사 소세지나 사먹어야 겠다.

 

 

 

 

 

<평범해진 처제> - 윤고은

한단어로 말하자면, 오독.
이 모든게 오독으로 인해 벌어진 것들이었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의도가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함께했던 연애를 오독했고, 천재를 처제로 오독했고, 나는 읽으면서 표고영이 여자일 거란 확신으로 글 전체를 오독했고, 결국은 말도안되는 반전때문에 나의 오독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 배신감이 아주 멋졌다. 나의 오독을 탓해야지. 이것은 일상에 갑자기 훅 치고들어온 잽 한방과 같은 글.

야동을 가지고 글을 썻다는것 자체도 되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그 글의 주인공이 여자라는게 또 강렬해서- 그러니까 이소설은 나는 오독한거겠지.

 

 

 

 

 

<최미진은 어디로> - 이기호

이기호 작가와의 두번째 만남인데, 이게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싶을정도의 이야기는 여전했다. 그래서 더 잘 읽히기도 했고,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다. 이기호작가의 에세이 같으면서도 또 소설집에 들어있으니 소설이겠는데 싶기도 하는터라, 중고장터에 올라온 작가 친필싸인본이 착찹했다.
나도 왠지 조만간 올려야 하나 싶은 책이 한두권 있어서 그랬는지 괜히 더 찔렸다.
(작가의 사인을 받을땐, 꼭 소장가치가 있는지 먼저 읽어봐야하는게 맞겠다.)

후보작에 들어간 <최미진은 어디로> 라는 소설이 신기하면서도 소설속 그 작가가 이기호씨일까 아닐까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에세이 같은면이 이기호 작가의 강점이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 그렇다. 다음엔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감 상승 !

 

 

 

 

<개의 밤> - 편혜영


사고가 일어났는데 개는 짖지 않았다. 짖지않은 개였다. 닥스훈트 한마리가 머리속을 왔다갔다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다. 다리짧은 닥스훈트 한마리가 날 잡아보라며 마구 뽈뽈거리고 극속의 인물에게 패대기쳐지고 그랬다. 개의 밤. 이라서 뭔가 묵직할줄 알았는데, 초점을 개에 맞추고 읽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편혜영씨 작품에 대한 평보다는 라이트 했다. <홀> 은 거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정도라는데, 마냥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 또 읽을 목록이 자꾸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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