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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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P317 

 

 

그렇게 마음을 위로받은 듯, 내가 그 일곱시 조찬모임에 참여한 듯, 연애하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내 방에 남아있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사람의 흔적들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연애의 마침표는 꼭 필요하다는 그 말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마음이 씁쓸해졌지만, 더이상은 지나간 연인 때문에 아프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이 오고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 두개의 마침표를 찍어야햇고, 어쩌면 다른 하나는 영영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연이 필연이 되게 된다면 나의 어리숙함과 어린날을 인정하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고 싶다고. 그간 많이 미안했다고.. 새삼 깨달았다. 이별앞에 사랑앞에 조금더 능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미숙한 사람이었던게 분명했다.

 

 

그래서 바라본 백영옥 작가는, 그전에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 의 작가이다. 몰랐는데,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던 분이었다. 그외에 여러가지 소설들도 있으면서 <아주 보통의 연애> 라는 소설집도 출간하셨었다. 읽고 싶던 책의 목록중에 있던 제목이었는데, 이렇게 다른 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어서 좋았다.

이 책도 알라딘에서 구매목록에 넣을까 말까를 한참을 고민했던 책이었는데, 개정판을 기다리길 잘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양장본을 좋아하기 때문에, 2012년 책의 개정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차라리 실연을 선언하는 모임이었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 p49 

 

 

 

 

 실연을 이겨내려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었다. 내 상황을 인정할 것. 내가 첫단추를 잘못 끼웠던 것은 아마 이부분부터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괜찮다는 말로 타인도 속이고 나도 속였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선을 그었다. 헤어진지 얼마 안되어 애인이 생긴 그의 카톡 프사에 분개하였고, 자존심 상해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나는 날마다 나를 깎아내렸고 이 모든게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라 단정했다. 그간의 그 모든 행동들이 거짓이었다 칭했었다.
그런데, 문득 바라보니 아득바득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 실연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선언할 수 없었고, 내려놓을 수 없었다. 너무 소중했던 오랜 시간이 자꾸 떠올랐다. 인정하기까지 참 오래걸렸다. 근 2년이 다되어서 알았다. 그랬다.
지금은 전혀 상관없다. 당신이 나를 보고 웃고 있어도 하찮게 생각해도 혹은 타인의 손가락질도 다 괜찮다. 다만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에 비해, 자신이 원하는 걸 분명히 말하는 사람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p154 


 

 

나는 말하는 편인지라, 말 안해주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르겠다. 날마다 눈치를 볼수도 없는 거고, 조금 예민하게 반응해주려고 하면 내가 하루가 지쳐버렸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에겐 어쩔수 없이 자꾸 신경쓰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매일하는 그 연애기간동안 그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자체가 참 신기했다. 내게 그런 순간이 다시금 오면 참 좋겠는데, 아무래도 내가 아무리 금사빠라 한들 설레긴 글렀다.

 

 

 

 

 

 

 

 

 

 

 

 

 

  밤이면 편안히 침대에 기대어 앉아, 두꺼운 소설을 조금씩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이라면, 그건 어떤 식으로든 성공한 삶이 아닐까.  -p210-211 

 

 

이런날을 원했다. 그거면 성공한 삶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조금만 노력하면 이런 여유 있는 삶이 될텐데, 아주 조금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다. 알쓸신잡에 나오는 뇌과학자 정재승박사님의 이야기처럼, 자기절제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절제력으로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그래서 나는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밤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고, 공무원이 되면 나는 달라진 삶을 살게 될까?

 

 

 

 

 

 

 

 

 하지만 전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이에요. 전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대단한 영감으로 순식간에 걸작을 써내는 작가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트루먼 커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 』를 쓰는데 육 년이나 걸렸어요. 그런 거에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예요."   - p288-289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 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

그 일에 나는 질문이 없었고, 일상을 캐물으면 상대방의 사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라 조심스러웠고, 취향과 가치관이 안맞으면 집요하지 않게 그저 각자의 삶으로 살자.. 라고 했는데, 흠 이래서 문제였던건가 싶다. 조금의 개선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온전히 책 한 권을 쓰고 나면
나는 조금쯤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겐 언제나 그것이
글 쓰는 일의 가장 기적 같은 부분이었다.   p333 


 과거에 책한권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이야기가 드라마에 나올법한 일이어서, 아주 오래전의 연인과의 이야기는 소설을 쓰면서 다시금 정리한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성장했다 싶었는데 이별 앞에선 성장은 커녕 또 똑같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온전히 책 한권을 쓰고나면, 정말 달라질까 싶은 마음에 모니터를 바라보며 오늘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백영옥 작가의 "작가의 말" 이 참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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