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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평점 :
재밌다!
재밌는! 소설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내가 한없이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게 느껴지는 우울한 순간에 나를 빠져들게 만드는 재밌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후회가 없을 결정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럴 때 성석제의 소설은 대부분의 경우 성공적인 선택이다.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 말고, 읽고 나서 현실의 내가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삐까번쩍한 이야기 말고, 뭔가 느끼고 깨달은 뒤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할 것 같은 대단한 성찰을 던지는 이야기 말고, 그렇다고 말초적인 재미에만 치중한 뒤에 책을 덮고 나면 괜히 공허한 이야기도 말고.
여기 이야기의 온전하고 순수한 재미가 있으니, 성석제의 소설을 오래 전부터 좋아해 왔던 사람은 동인 문학상의 수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석제의 매력을 알아차린 지금의 사태를 은근히 안타까워하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껴두고 나혼자서만 보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는 작가란 이야기다.
오! 페이소스
성석제의 소설이 재밌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페이소스이다. 사전적 어의로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 또는 애상감(哀傷感), 비애감의 뜻을 가지는 그리스어 파토스(pathos)에서 왔다는 이 페이소스는 한 마디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파토스(pathos)가 특정한 시대 지역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와 대립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볼 때 이 말이 가지는 내포는 좀더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페이소스가 있다', '페이소스가 강렬하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그 문학 작품이나 문학적 표현이 '정서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라고. 보통 영화나 책을 보고서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고 말할 때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하나가 내가 동정이나 연민을 느낄만한 면, 다시 말해서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못한 면을 가지고 있는 등장 인물이다. 또 하나는 그 인물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불쌍함이라거나 진지한 동정이어서는 안 되고 '눈물과 웃음' 이 공존하는 이상야릇한 감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석제의 이야기의 매력은 페이소스다. 고만고만한 인물들이나 특출나게 이상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되 그들을 그리는 시선에 있어서는 연민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민도 그렇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시선이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편안하고 재밌게 받아들이게 함과 동시에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닐진대, 묘한 위안을 주는 것이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또 하나 성석제의 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문체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이 시와 다른 점은 문체의 힘이라고 말한다. 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문체의 매력은 읽는 사람들을 더욱 붙잡아 두게 하고, 게다가 그것이 이야기의 성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성석제의 소설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한다고 생각할 때 그 매력이 제대로 살아날까를 생각해 보면 그가 한국말을 얼마나 유려하고 황홀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의 페이소스와 그의 문체의 힘은 갈수록 그 매력을 더해 가고 있으니, 인생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멀지 않은 날에는 그의 신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망설임 없이 사 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