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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역사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고흐, 고갱, 피카소, 모딜리아니, 마네, 르누아르, 보들레르, 랭보, 헤밍웨이, 지오느, 사르트르... 이들의 삶과 예술과 사랑이 싹트고 무르익었던 곳'
책의 앞표지에 쓰인 글은, 카페가 어떤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게 한다. 소설가, 시인, 화가, 그리고 음악가들이 손끝에서,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달구는 그이들이 쉬고, 논쟁하고, 영감을 받는, 또한 그들의 특별한 사랑과 고뇌를 품은 곳.. 카페는 그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역사'를 이룰 수 있었으리라. 물론, 카페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카페에서 마치며, 몰래 그들을 지켜보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오브제가 되어주었다.
이 책이 소중한 건, 저자가 프랑스 방방곡곡을 다니며 찍은 풍부한 사진들이다. 시골의 작은 비스트로에서, 대도시의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고급스럽고 화려한 인테리어의 카페까지, 그리고 카페 로고에서 내부 바(bar) 위의 재떨이 하나까지 그리고 그 카페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카페의 풍경을 보여준다.(그래서.. 책값이 좀 비싸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땐 야외 테라스의 한구석에서 노동이 끝난 후의 피로를 한잔의 압생트로 풀고있고, 어느땐 작은 구석방에 앉아 글을 끄적이고 있다. 거긴, 서울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체인형태의 커피숍이나 소주방 등에선 느낄 수 없는 '취향'이 있다. 어떤 고급스러운 안도감을 주는, 또는 단순한 오아시스(물통) 형태의 긴요함도 역시 분수를 넘어버렸다. 물론, 생활의 질이 만든, 트렌드가 만든 삶의 자세탓도 있겠지만, 책을 보며 아쉬움을 느낀 건 어쩔 수 없다.
저자의 기록들 중 아쉬운 부분들은 뒷부분에 조금 언급되어있는, 각 지방의 술의 별명들과 카페에 여성들이 드나든 시절의 이야기들, 그리고 웨이터들에 대한 관련 자료들이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여성들은 카페의 퇴폐성 조장에만 일조한 것 같은 자료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카페를 쥐고 흔들던, 통 큰 여주인들!의 이야기들이 분명 어딘가 전해져올텐데, 앞으로 카페를 가꾸고픈 내게 그녀들의 이야기들이 빠진 건 참으로 아쉽다.
저자의 이력으로 보아서 무리한 기록일수도 있으나, 그래놓고 책 제목이 <카페의 역사> 라는 것도 안타깝다. 그저 '카페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임으로. 그래도 이 정도의 자료를 모아놓은 것도 그리 많지 않음을 알면, 이렇게 만나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조금 비싸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생생히 느낄 수 있다는 건, 무척 행복한 책읽기다. 오늘 이렇게 프랑스의 카페를 만났으니, 내일부턴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