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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도둑
수잔 올린 지음, 김영신 외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꽃에 대한 미친 사랑의 기록'
이 책에 부제처럼 붙어있는 문구다. 처음엔 진정 '난초도둑' 에 대한 작은 기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모든 범죄엔 사연이 있듯, 이 난초도둑도 마찬가지였으니,
그 자신은 흠없는 논리와 이성으로 가득찬 '난초애호가'이며, 자신의 사물을 보는 방식이 대단히 합리적이라 법을 무시하기는 하나, 법보다 더 중요한 현실적인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과 자신의 신념만이 가장 정의롭고 진취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 '난초에 미친 도둑'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에게는 없는 '狂的 취향'을 가진 한 남자를 신문에서 발견한 후, 찾아가게 되고 묘한 감정의 거리를 둔 채, 오직 '기록'만을 해나간다.
의외로 재밌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꽃에 대한 상사병을 가진 환자들은!
그들은 새 꽃이 피기까지 10여년을 기다려야하는 '난' 돌보기에 흔쾌히 동의하며 미친 짓처럼 보이는 그 '짓'에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난초에 대한 정열은 연애를 하는 것에 비할 정도가 아니라고 고백하고, 한 과테말라 출신의 난초수집가는 '일단 그 병에 걸리면 방법이 없죠. 술을 끊고 싶으면 단주모임에 나갈 수 있지만, 난초 열병에 걸리면 그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중독자는 '난 아제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여자도 끊었어요. 중독증 중에서는 난초중독만 남겨놓았어요' 라는 헷갈리는 소리를 하고, 위대한 몇몇의 발런티어들은 그들안에 흐르는 '모험'이라는 피를 부글거리며 평생동안 희귀한, 유일한, 난초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오지에서 죽어간다.
'단순히, 마음을 뺏길 수 있고, 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뭔가.'
'다만, 나에게도 당혹스럽지 않은 열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뭔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라는 한 난초 중독자의 고백은 그 광인들이 가장 제정신일 때 말하는 그들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듯 하다. 또한, 정말 일반인들이 갖기 힘든, 섹시한 태풍같은 감정이기도 하다. 이 난향기 가득한 사회인류학적 보고서(?) 는 메마른 인생에 뿌려지는 가장 설득력있는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초들이 약간 사악하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해서 좋아요' 라고 말하는 그들같은 인종들에겐 '난' 대신 어떤 '중독물'을 대체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는 그런 인간들 중 가장 사악해보이고 또한 신비로운 품종처럼 보이는 '존 라로슈'를 지켜보며 절대 그가 예고하는 '난'에 대한 중독에 걸려들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쓰고, 막무가내인 그의 행동에 화를 냈다가는 금방 압도당해버리기도 하며, '난'의 세계, 아니 '난초도둑'의 세계에 빠져든다.
워낙 제정신이 아닌 일에?, 정신차리고! 미쳐있는 사람들의 세계란 중독성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치부해버리기엔 가진 게 없는 나로썬 그저 부러울 따름이고, 조금 지루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잔 올린의 <난초 도둑>류의 책은 나같은 인간마저 신선한 수혈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라로슈는 또 무엇을 훔치고 있을까? 수많은 것들에 애정을 바쳤다가 마지막으로 금붕어와 절교했다는 그 이빨빠진 이혼남의 다음 상대말이다.
ps 책 중 '상상의 식물학' 이라는 개념은 아주 즐거운 '상상'거리를 제공하게 했다.
'저놈들은 죽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오늘은 무엇을 하지? 에이 그냥 죽어버리자'
난초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죽을거라, 사람들은 그렇게 상상하며 ... 살아가고 있다. 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