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구판) 12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52년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로 시작하는 문장부터 자신이 사춘기를 보낸, 지독하게도 부끄럽고 소외된 계층들의 삶들, 그들만이 쓰는 한정된 언어만을 썼던 그 시절의 거리를 회상하고 유일하게 그리고 어울리지도 않게도 가게 됐던 가톨릭 사립학교에서의 생활을 돌아본다.. 어릴 때, 누구나 느꼈던 모든 사소한 것에 대한 질투와 가벼운 우정...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뒤덮었던 '그해 여름'에 있었던 사건... 그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소녀시절의 회상.
어린 시절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토해내지 않으면 안될 '부끄러움'같은 건 모두에게 있는 법.

참... 그러고보니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건 위협에 그친 것이었지만 ...- 아마, 아니 작가의 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나이의 남편들에게 아내란, 태엽인형에 불과하다 - 나에겐 그런 종류의 사건과 남들에게 미치지 못한 富와 어머니의 옷차림이 부끄러움이라기보단, '반항'의 좋은 핑계와 '기이한 특수함'에 대한 소유의식으로 즉, 애써 말할 필요도 없지만 숨기진 않았던 얘기들 중 하나로 발전했다. (시쳇말로 왕따는 내가 시켰던 것이다. 그런 얘기들을 마치 남의 집에 불난것처럼 떠들며 말하던 내 모습... 참.. 불쌍했던거다) 물론, 나 역시 작가처럼, 그런 비뚤린 사춘기를 스스로 규정할만한 단어들을 찾아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고, 어느 누구의 위로도 바라진 않았지만, 결국 작가의 말대로 오직 혼자만이 그 체험상황에 대한 의식을 또렷이 간직해야한다는 것, 그 '부끄러움'에 대한 감정을 혼자만이 알아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끔찍한 일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나 역시 '소녀'(작가)가 찾아낸 '이상적 하루'라는 놀이로 위무하고, 은밀하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정신적 외상(이렇게 규정지으면, 모든 어린 시절의 기억의 개성은 모두 잃어버리겠지만) 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옅어질진 모르겠다. 기억은 상당히 기만적이고 그동안 습득한 단어들로 나의 그 시절은 어드벤쳐가 될 수 있고 호러가 될수도 있는 법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부끄러움은 반복되고 누적될 따름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일이다. (불필요하다는 건, 이런 자기 고백식의 반추를 말하는게 아닐까...)

궁금해진다. 다른 그녀의 이야기들이. 어떤 감정의 언어로 표현하고, 내가 알고 있는 1952년의 그 소녀는 다른 사건을 맞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조금 지루한 문체긴 하지만, 프랑스 특유의 여류작가다운 고고함이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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