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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평점 :
책을 다 읽고 나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은 나로써는 우선, '참.. 힘들지 않게 썼겠다' 가 첫 번째(쉽게 썼겠다라는 표현은 좀 시건방지지 않은가?), 두 번째는 차라리 제목은 '츠구미'가 나았다.(여주인공 이름인 츠구미를 풀어쓰면 '티티새' 가 된다고 역자가 말했다. 개똥지빠귀라... 그 제목은 북한소설같고. 오리지널 제목은 '츠구미'가 맞는 듯. 아마 출판사는 조심스러웠을것이라...
하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인데, 그녀를 아는 독자를 위해서라면, 마케팅에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금 실망한 이유는 그동안 그녀의 책 속에서 보던, 각약각색의 특이한 캐릭터들, 그들 사이의 감정교류, 그 미묘하면서도 가슴 설레게 하는 표현들의 기가막힘 때문이었는데, 이번 <티티새>는 다들 멀쩡하고 평범한,(역시나 무척이나 착한!) 가족 속에 오직 '츠구미'라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는 아름다운(그러나 성질 사나운) 소녀만이 바나나 다운 '특이함'을 지니고 있다.
맞다. 츠구미는 바나나고, 바나나는 이 책을 첫 장편 '키친' 이후 , 두 번째 쓴 소설이었다. 그걸 몰랐다. 국내에선 발간되는 순서대로, 역시 나왔겠거니 생각하는 이놈의 착각이 책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게다가, 저자의 글을 읽는 동안 나온 이 말은 무엇인가? 바나나는 말한다.
'이 책을, ... 멋진 그림을 그려주신 야마모토 요코씨의 w, 요코씨에게 바칩니다'
앗, 그림이 있었단 말인가? <하드보일드 하드 럭>을 기억하는가? 기괴한 내용이었지. 하지만 그 그림은 더 기괴했었지. 요시모토 나라의 그 얼굴 찌그러진 소녀는 정말 그 책의 감성을 200% 업그레이드하는 판타스틱 파라다이스 소스였다. 글에 색을 입히는 그림의 효과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아, 이 <티티새>의 표지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국내 판본은 정말... 개똥지빠귀가 그려져있다. 흠. 내가 제발 오해한 것이기를.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도대체 흉만 보고있군. 사실 그건 아니다. 한 서너시간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이 책의 매력은 역시 주인공 '츠구미'다. 아니다. 사실은, 그 바닷가 여관이다. 아니다. 사실은, 그 바닷가 여관에 사는 가족들의 일상생활이다. 그건 10년간 같은 바닷가, 같은 여관에 여행을 간 바나나 가족의 기억이 바탕이 된 얘기다. 가장 큰 매력은 그렇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고, 그런 성정이고, 변치 않는 애정에 대한 인내심이다. 모든 것에 대한. 바다와 해질녁과 조리에 끼워진 발가락 사이를 오고가는 모래알에 대한.
갈수록 '익사이팅' 한 휴식말고, 말그대로 '릴랙스'한 휴가를 원하게 된다. 그물침대에 몸을 담고, 이지한 테크노음악을 들으며, 망고쥬스에 꽂힌 빨대를 찾는. 거기에 '츠구미'의 사촌이자 친구인 '마리아'같은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 멍청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내 마음과 내 흑심을 다 읽고 동참하는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