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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주인공은 두 여성, 나오미와 가나코다. 가나코는 폭력적인 남편 밑에서 매일 공포 속에 살아간다. 그녀의 멍든 몸과 무너져가는 자존감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 제도의 무력함을 고발한다. 나오미는 그런 친구를 바라보다가 결국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두 사람은 공모하여 남편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소설은 바로 이 사건의 준비, 실행, 그리고 그 이후를 두 여성의 시선으로 번갈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감정이 극명하게 갈라진다는 것이다. 나오미에게서 우리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불합리와 폭력에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 그리고 자유를 향한 주체적 선택이 그녀의 시선을 통해 전달된다. 반면 가나코의 세계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공범이 되었고, 그 사실은 끊임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독자는 나오미와 가나코, 즉 해방과 회피라는 두 감정 사이를 오가며 작품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읽는내내 응원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작품을 10년 전 한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읽었다면, 나오미와 가나코의 선택은 다소 극단적이고 소설적인 장치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가정폭력 사건이 뉴스에 등장하고, 법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두 여인의 결단은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가 지켜주지 못한다면 결국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지않은가의 메시지가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오미와 가나코》는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거울처럼 읽힌다.
책을 덮고 나면 묘한 감정이 남는다. 나오미의 서사에서는 분명 카타르시스가 있었지만, 가나코의 서사에서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불안이 몰려왔다. 해방이자 동시에 회피, 자유이자 또 다른 속박. 나는 책을 읽으며 나는 나오미면서 가나코라는 생각을 했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여성 연대의 힘을 보여주면서도, 그 연대가 결코 가볍지 않은 대가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겁지만 동시에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같은 역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