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무거운 사슴이 고민 들어 드려요 문지아이들 177
김민정 지음, 이은경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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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책으로 읽지 않았어도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들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 미운오리새끼, 개미와 베짱이 등등 .. 그런데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입 무거운 사슴이 고민 들어 드려요> 책에서 입 무거운 사슴은 우리에게 익숙한 옛이야기 우화 속 주인공들의 남모를 고민들을 들어주는 역할이다. 대부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우화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야기를 좀더 깊이 읽고 그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이후의 삶을 생각한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우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해 고민을 털어놓는 에피소드도 물론 좋지만 마지막에 입 무거운 사슴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는데 참견하길 좋아하는 어린 사슴이 입을 꼭 닫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고민해결사로 성장하는 과정이 멋졌다.

적당한 글밥과 밝고 따뜻한 색채의 그림은 물론, 무엇보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것을 배워야하는 저학년 시기의 친구들에게 딱 적당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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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눈 창비청소년문학 84
주디 블룸 지음, 안신혜 옮김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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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나게 끔찍한 일들이 닥쳐 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대한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창 중2병에 걸려 있을 열다섯 살 소녀 데이비에게도 전혀 예상치 못 했던 끔찍한 상황이 펼쳐졌다. 소중한 아빠가 총에 맞아 돌아가신 일. 전혀 괜찮지 않지만 남들에게 이런 괜찮지 않은 모습을 들키기도 말하기도 싫은 데이비는 남들 앞에서 최대한 이성적으로 지내려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하고, 충격으로 인한 과호흡 증상까지 와서 학교에서 쓰러지기까지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길 원한 데이비 가족은 집에서 꽤나 먼 도시에 있는 고모네 집에서 얼마간 지내게 된다. 금방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데이비는 보호자가 되어 줘야 할 엄마가 오히려 고모네 집에서 정신을 잃고 두통약과 잠에 취해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고모와 고모부의 간섭, 잔소리, 과잉 보호에 고모네 동네에서의 생활이 점점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데이비는 예의 바르게 룰을 지키고,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사람을 대하고 사귀며 생활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정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기준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아픔에 대해 들여다보고 스스로 치유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도 이해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잘 가, 아빠. 사랑해요.
앞으로도 항상 사랑할 거예요.
이제 아빠 생각을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야.
그날 밤 일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겠다는 뜻도 아니고.
그건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니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잖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좋았던 순간들만 기억할 거야.
이제부터는 나도 아빠를 활기차고 사랑이 가득했던 사람으로 기억할게.

삶은 여전히 계속 된다는 말이 있다. 데이비가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를 잃고, 친한 친구인 레나야와 남자친구 휴를 떠나 고모네 집으로 환경을 옮겨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학교에서 새 친구 제인을 만나고, 비밀 장소인 협곡 아래 동굴에서 울프를 만나는 등 여러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만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데이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지만 그 속에서도 데이비는 늘 앞으로 나아가기를 꿈꿨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슬픔을 입밖으로 내고, 마주보고 직시하며 털어버릴 줄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고모네 동네에서 만난 울프와 울프의 아버지, 그리고 친구 제인의 영향이 있기도 했지만 마음 깊이 건강한 생각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데이비 자신의 힘이 가장 컸을 것이다.

엄마 말 좀 들어 봐, 딸.
엄마는 너희를 핑계 삼아 여기에 왔고 계속 머물렀어.
그게 너랑 제이슨을 위해서도 더 좋다고 믿고 싶었지만 ......
실은 모두 엄마를 위한 거였어.
왜냐하면 엄마는 너무 무서웠거든. 그래서 도망 온 거야.
진실을 피해 도망 온 거야......
책임도 회피하고.

데이비가 성장하는 동안 데이비의 엄마도 아무에게도 들키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두려움의 무게에 대해 깨닫게 되고, 그것을 딸인 데이비에게 털어놓으며 그 무게를 내려 놓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있던 아빠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그렇게 가족들은 현실의 아픔과 두려움을 조금씩 치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처음 읽은 청소년 소설이다. 그동안에는 아무리 성인이 된 이후였어도 늘 주인공 자신을 나로 투영시켜 읽게 되었는데 이제 '엄마'라는 어색한 이 자리에 앉게 되어서인지 읽는 내내 우리 딸이 데이비처럼 이렇게 건강하고 야무진 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책 속에서 고모와 고모부는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엘리트에 겉으로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고모와 고모부에게 데이비의 아빠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꿈을 찾아 돈 한 푼 제대로 모으지 못 한 철없는 어른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데이비가 고모와 고모부와 함께 안전한 동네에서 모든 것을 조심하고 좋은 대학과 번듯한 삶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다면 이렇게 건강한 생각과 중심을 가진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와 그 아이에게 닥쳐올 크고 작은 일들은 무수무한할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나니 아주 작은 위험도 되도록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내 아이가 어떤 위험과 어떤 아픔을 만나더라도 그 속에서도 언제나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고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고, 그렇게 키우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일 같다. 씩씩한 데이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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