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자는 숲』








**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용의자는 해당 발레단 단원인 발레리나 하루코. 그녀는 갑자기 침입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 위협을 느끼고 정당방위로써 행한 것이며, 남자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가가 형사와 오타 등 형사들은 사건 해결을 위한 조사로 곧 죽은 남자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러나 발레단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상태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앞두고 진행된 최종 리허설 도중 발레단의 연출가인 가지타가 객석에서 독살되어 살해당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게 된다. 이어 야기유라는 발레리노에게 향한 테러와 최종지점에 다다다른 순간 발생한 자살 사건까지. 



이런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가가 형사의 눈에 들어온 발레리나 미오는 열렬한 팬심으로 가장한 가가의 이성적 호감과 긴장감 속에서 묘한 관계성을 가진다. 그동안 접해왔던 여타 다른 추리소설에선 잘 등장하지 않는(아닐 수도 있음), 용의자 중 한사람에게 흑심을 품는 형사의 수사 이야기라니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또한, 가가의 인간적인 면모는 곧 모두에게 두루 적정선의 거리를 지키며 대하는 부분을 통해 그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란 걸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겉표지에서도 이미 수식되어 있듯이 이건 추리소설을 가장한 약간은 미지근한 로맨스물이다. 그러나 이전에 접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적 특성만 살펴봐도,「명탐정의 규칙」이라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각 사건마다 꼭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요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요소중엔 범행 동기에 가장 가까운 특성으로 '미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없이 약해보이고 지켜주고픈 존재로 비춰지지만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는. 하지만 이건 특별히 매력적인 장치는 아닌 것 같다. 



또한 추리소설 속 사건이란 몇몇 인물이 죽임을 당해야 전개되기 때문에 2~3명 정도 죽었다 싶은 지점에서 슬슬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범인의 정체가 공개되고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가 가진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사건이 발생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우연적 속성, 그리고 엮이게 된 사람들의 사정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매력이란 무엇일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개인적으로 추리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셜록이 대표적이고, 셜로키언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어쨌든 아직까진 호감을 가지고 있는 소설 속 캐릭터 중 하나이다. 내겐 이런 인물이 가진 매력이 추리소설을 찾게 하는 요소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교묘하고 기발한 트릭? 매력적인 인물? 촘촘하게 짜인 서사? 여기서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주로 언급되는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말해볼 수도 있겠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초반부터 터뜨리는 플롯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호기심을 끈 다음 인물간 관계성과 그 바탕이 되는 동기에 사연을 부여하는 식이었다면, 미야베 미유키 같은 경우 초반부 다소 늘어지지만 세세한 묘사로 서사를 촘촘히 쌓아간 다음 중반부터 몰아치며 동기, 인물, 배경 등을 한데 어우러진 상태로 끝까지 내달리며 읽게 한다. 


사건의 다양성과 폭넓은 세계적 특성을 가진 히가시노 게이고와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구조에 따른, 그에 휩쓸리게 된 보통 사람들에게 대해 말하는 미야베 미유키. 결국엔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고, 각자 끌리는 방식에 따라 선택하여 읽으면 될 것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때론 작품성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고, 워낙 영상매체로도 많이 만들어졌기에 이를 스스로 비판하듯 언급하며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상으로 표현하기에도 적절한 사건과 이야기, 인물까지 고루 갖추었기에 가볍게 읽기 좋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워낙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건이 발생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많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서 장점으로 발휘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내게 히가시노 게이고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인 작가가 아니다. 꽂히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읽는 재미와는 별개로. 초반부에는 이 발레단이 가진 특수성과 그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지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가독성도 좋았기 때문에 술술 읽히는 힘이 있었지만, 연이은 사건에서 점차 밝혀지는 실마리에 허탈함이 들었다. 예술적 특성에서 비롯된 태도, 프로가 가지는 자세. 그리고 그러한 신체를 만들기 위한 고된 노력과 제약, 사고, 그리고 관계성을 들여다보면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허무함만 남게 된다. 


가가 형사의 연정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그의 끈질긴 시선이 사건 해결의 중요요소로 작용되었으니, 이는 곧 형사의 직감으로 봐야 할까, 그렇다면 이 작품은 곧 추리소설을 가장한 로맨스물인 동시에 특출한 트릭과 서사보다는 형사의 직감과 우연적 요소가 겹친 사건 해결 이야기라고 말 할 수도 있을까.


시리즈물은 곧 기본 바탕인 플롯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매력적인 인물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가가 형사의 첫 출발점은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 다음으로 펼쳐지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또다른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면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매력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개정판으로 고운 새옷을 입었고, 가가 형사라는 인물에 매혹되었다면 소장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에.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픽스
워푸 지음, 유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











**



<나무 두드리기>

문단 내 꽤나 이름을 떨치는 작가인‘그’는 신작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발표할 신작은 사회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문학적인 깊이는 물론 추리소설의 묘미까지 느껴지는 작품을 발표하려는 중이고, 인쇄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그에게‘아귀’라는 이름의 독자가 작가의 새로 발표할 작품에 여러 오류가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온다.




<당신 없이는 미소 지을 수 없어요>

20년 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제의 작품은 세 남녀 사이의 치정관계와 연관된 살인사건으로 흥미롭게 연재가 되던 도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작가가 사망한데 이르러 완전한 결말에 다다르지 못하고 종결되고 말았다. 연재했던 잡지사는 점차 발전하여 다시금 이 작품의 재연재를 예고하며 유고 원고를 찾았다는 광고를 내건다. 진실은 대필 작가로 활동하는‘그녀’가 편집자를 통해 독자‘아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나머지 부분의 원고를 완성하는데 있다. 그리하여 도대체‘아귀’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웅들>

경찰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수술 후 병상에 입원하고 계시는데 방문한 동료 샹 아저씨 덕에 과거 수사한 여러 사건에 대해 듣게 되고, 글 쓰는 일을 꿈꿨던‘그’는 이를 소설로 옮겨 적어보기로 한다. 블로그에「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기 시작하고 좋은 반응도 얻는 와중에‘아귀’라는 독자로부터 범인 묘사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다.



영웅도 보통 사람이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하지만 잘못을 직시하고 바로잡으려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마땅히 영웅이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한 지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64쪽



<우리와 그들>

은행에서 일하는 그녀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자친구와의 순조로운 연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좋아하는 SF소설을 읽고 시놉시스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연재 플랫폼에 직접 연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도전해보기에 이른다.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그녀를 위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추리소설에 대한 힌트와 아이디어를 주고 그녀 역시 열심히 연재하는 끝에 독자도 서서히 늘어가 이제 유료 연재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적인 작가 포스를 풍기는 독자 네티즌‘아귀’로부터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 앞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지적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작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던 이 독자는 반드시 그 영향을 미치고 만다.



“사실 좋은 소설은 인간 내면의 깊은 심리를 파헤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정치적인 현실을 반영하기도 해.” 221쪽



<커다란 노란 택시>

추리소설 「커다란 노란 택시」로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게 된‘그’는 그로 인해 문단에 등단할 수 있는 영광을 동시에 누리고 되었고, 수상작을 포함한 심사평이 실린 합본집이 출간될 예정을 앞두고‘아귀’라는 인물로부터 메일을 받게 된 그는 기능적으로 설치된 플롯에 허점이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미 인쇄과정에 들어간 책을 수정할 수도, 심사위원들에게 이런 사정을 논의해볼 수도 없어 막막했던 그는 새롭게 구상한 플롯과 인물묘사로 이야기를 이어가 후속 작업을 이어갈 계획을 밝힌다. 아직 인쇄가 채 마치지 못한 수상작을 과연, 누가 어떻게 읽고 지적할 수 있었을까?


전제, 주제, 인물, 플롯 그리고 설정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입니다. 266쪽



<점점 더 하얗게 창백해졌네>

연애소설 작가인‘그녀’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으나, 점차 출판사의 형식에 맞춘 작품이 아닌 자유롭게 다른 형식의 작품을 써보고 싶은 열망에 미스터리와 연애를 접목한 작품을 신작으로 발표하게 된다. 연애소설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장르 역시 미스터리와 스릴러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반응에 독자 반응을 살피던 도중‘아귀’라는 네티즌의 댓글에 자신의 생각과 같이 속편은 나오지 않을 거란 말에 호기심에 질문을 이어가게 된다.



아귀는 많은 연애소설에서 인물이 충분히 입체적으로 설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설령 작가가 감정이 풍부하고 다양한 층위가 있는 역할을 그려낼 역량이 있다 해도, 연애소설의 경우는 주요 줄기가 애정 관계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다른 사건에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인물의 다른 성격적 면모를 표현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296쪽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든 아니면 대반전이 일어나는 결말이든, 둘 다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형식으로, 모두 플롯 안에서 등장한다. 그래서 많은 추리소설 작가가 일단 플롯들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인물을 욱여넣는다. 문제는 독자가 이야기를 읽을 때 보게 되는 플롯이 실은‘인물이 일으킨 일’이라는 것이다. 301쪽




<얼룩진 사랑>

출판사의 대대적인 판매량과 직원들의 월급을 책임지는 대표작가의 연작시리즈의 원고는 잡지 연재로도 이어지게 된다. 열정 넘치는 신입 편집자와 드디어 밝혀진‘아귀’의 정체는 뜻밖으로 보이지만, 아! 하고 감탄하게 만든다.‘아귀’는 편집자와 작가가 토론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



간만에 굉장히 재밌는 작품을 만나 모처럼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일곱 개의 작품, 일곱 편의 추리소설이 소설 내에 액자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부분부분 전개되고, 어느날 작가 앞에 나타난 유령 독자 '아귀'는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 플롯이 가지는 허점에 대한 힌트를 던지면서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작가들은 모두 3인칭으로 표현되고 말하며, 처음엔 경계를 느끼던 태도 역시 '아귀'의 논리와 타당한 근거에 따른 의견에 수긍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를 묻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마치 소설 속의 소설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메일이나 댓글로. 작가와 의견을 주고 받고 토론을 하는 아귀의 정체는 맨 마지막 챕터에서 밝혀지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재미요소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직업군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는 어떠할 지 모르겠지만 해외같은 경우와는 작가와 같이 작품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의 그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각기 다른 플롯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도 읽을 거리가 참으로 풍부하다. 또한 군데군데 대화의 형식은 매우 직설적이다. 이걸 호방하다고 표현하다고 해야 할지, 유쾌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만의 특성이 느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아주 간간히 유머도 섞여있다. 생각치도 못한 포인트에서 터지기 때문이다. 독자의 특징들 역시 흥미로웠다. 

이 작품 속 독자들은 늘 자신들이 읽는 작품을 두고 토론을 하는 게 일상처럼 표현되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물론 국내에도 독자 개개인의 서평활동을 제외하고도 북클럽이라든지 독서토론 모임이라든지 많이 있지만, 그보다는 뭔가 더 일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힌트로 등장하는 여러 작품들과 곡 제목을 통해 차용된 챕터별 제목 구성도 좋았던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소설 쓸 때 가져야 할 미덕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특히. 아귀의 표현대로 소설에서 플롯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결국 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사건들과 플롯, 그리고 탐정이라는 캐릭터적 특성을 활용한 많은 작품들을 보며 추리문학을 열렬히 사랑하는 독자에게 의문점이 드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는 또한 글을 쓰고, 작품을 창작해내는데서 가져야 할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자료조사의 중요성과 작품 속 인물이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테도 관계성과 심리묘사 또한 무척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창작이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밀도 높은 완성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게 되었다. 실제로 열혈독자들은 맑은 눈과 깊이 있는 독서력으로 발달된 날카로움을 가졌을테니 더욱더 그러하다. 


작가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사건을 증오한다고 밝혔다. 이 소설집 전반적인 플롯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아귀'라는 역할을 내세워 자신 나름대로 진실을 밝혀보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과정에는 픽션의 속성도 가미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억울한 심정을 풀어내고 있을테고, 누군가는 괜히 지나간 사건들을 들쑤신다 여겨 마땅치 않아 할 것이다. 어느 것이든 진실에 관한 것이라면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으니 좋은 영향력이 될 수도 있겠다. 너무 과신하지만 않는다면.


재미와 완성도를 두루 갖춘, 가독성 좋은 이야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작품 속에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었던 작가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내보인 탓에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지지만, 덕분에 신뢰가 간다. 이는 소설 쓰기에 관심갖는 사람이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워푸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어 에번 핸슨』




"Anybody Have a Map?" from the DEAR EVAN HANSEN Original Broadway Cast Recording

(뮤지컬이 소설로 재탄생되다니, 기대되는 작품
 『디어 에번 핸슨』)








(굿즈 선물도 한 가득)



**


소설 『디어 에번 핸슨』 은 동명의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사회 불안 장애를 앓고 있는 한 소년이 한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온갖 오해와 혼란의 중심에서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뭉클한 메시지까지 전달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텍스트가 영상이나 무대로 구현된 사례가 많았으나, 이 작품은 그와는 반대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컨텐츠에서 읽고 상상하는 것으로 전환되어 생소하고 매력적이다. 이미 흥행한 작품이라면 단연 재미와 감동을 겸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또 운좋게도 유유브에 검색하면 훌륭한 무대 영상과 특별 영상, 사운드 트랙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함께 텍스트를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한 번 쭉 읽어본 뒤, 뮤지컬의 구간별 사운드와 연결하여 들으면서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


사회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고등학생 에번 핸슨/에반 한센.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지금은 어머니 하이디와 같이 살고 있는 에번. 낮엔 병원에서 간호사로 밤엔 로스쿨 학생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하이디는 에번을 잘 챙겨주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에번을 걱정하고 있다. 심리 치료를 받으며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어야만 진정이 됐던 에번은 여름방학 동안 공원관리원으로 일했던 곳에서 팔이 부러지는 추락사고를 겪게 된다. 깁스를 찬 에번에게 하이디는 친구들의 메시지와 낙서를 받아보며 친밀감을 갖길 바래보고, 내색하지 않지만 고운 심성을 가진 에번은 하이디의 말대로 친구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조심스러운 시도를 이어간다. 

 한편 치료의 일환으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를 해야만 하는 에번은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형식적인 내용의 편지만 썼다가, 아무도 없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담은, 마치 유서와 같은 편지를 쓰게 된다. 투명인간 같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이 사라져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담긴. 

그러나 혼자 있다고 생각했던 컴퓨터실엔 교내 문제아로 낙인 찍힌 코너가 있었고, 웬일인지 에번의 빈 깁스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는 코너. 오전에 그와 부딪혔던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 뜻밖의 행동을 이어간다. 에번이 자신의 동생 조이를 짝사랑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편지 내용에 조이의 이름이 보이자 화를 내며 가져가버린다. 

불안했던 3일이 지나고 갑작스러운 교장선생님의 호출에 가보니 에번의 앞엔 코너 부모님(래리, 신시아)이 와 계셨고, 당황스러운 소식을 전해온다. 며칠 전 코너가 자살을 하였고 그가 자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다는 말에 에번은 자신의 편지를 가져간 코너를 떠올리고 오해를 풀고자 하지만, 그의 깁스에 새겨진 코너의 이름을 보고 안도하는 그들을 보며 믿고 싶어하는 대로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무심한 아버지와 바쁜 어머니 사이에서 외로웠던 에번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계기로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집이 가까운 이유로 그나마 친구인 것 같은 제러드와 코너와 주고 받았다는 가짜 메일을 만들고, 매사 적극적인 엘레나의 교내 활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코너 프로젝트'의 영향력도 점차 커져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토록 원했던 조이와의 관계도 가까워지고 더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일상이 편안한 에번에게는 코너의 환상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역시 커져만 간다. 무엇보다 코너와 가깝지 않았지만 거짓말로 그와의 친밀성을 꾸미다 보니 정말 가까운 듯 느끼게 되어 진심어린 마음을 전한 추모식 연설은 널리 퍼져나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 이른다. 한순간의 유명세와 많은 친구를 얻게 된 에번. 

코너와의 추억의 장소로 말했던 게 우연히도 맞아 떨어진 어느 농장, 그리고 그 농장을 다시 재개장 하기 위한 모금. 어머니 하이디와의 대화 단절이 지속되어 가고 모든 일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듯,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쳐온다. 가짜 메일을 의심하는 엘레나, 자신의 아들이 다른 집에서 더 친숙하게 지내고 있었고, 대학 학비마저 지원해주겠다는 의견을 듣게 된 하이디는 에번과 크게 다투게 되고, 오해를 덮기 위해 전달한 편지는 코너의 유서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사람들의 공격적인 관심에 다툼과 혼란이 이어지는 코너의 가족들 앞에 결국 진실을 고백하고 모든 걸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 에번은 앞이 캄캄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한다.

가족은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늘 해왔던 생각이지만 누구보다 가깝지만 누구보다 먼 존재같은.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기에 때론 남에게는 잘 보였던 모습을 감추려고 애쓰는 듯한 양상. 화목한 가정을 바랬던 신시아와 바른 길로 가길 원했던 래리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며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애매모호한 흔적으로만 남기고, 소중한 친구를 지키기 위해 했던 거짓말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된 코너처럼. 모든 게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어딘가 한 구석 상처 하나 없이 맑은 가족은 대체로 흔치 않을 것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슬픔에 잠식된 코너네 가족을 위한 거짓말은 어쩌면 각자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방황하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개선과 그저 방치했다는 죄책감, 오빠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했고 자신을 싫어했을 거라는 오해와 함께 남겨진 미안한 마음. 모든 복합적인 마음들에 한 줄기 희망이자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번의 말처럼 다행스럽게도 코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였고, 진심을 나눌만한 친구가 있었으며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 진실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그 결이 아주 다르다라곤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코너 역시 스스로 간절했을 것이다. 그만큼 모든 게 불완전하고 서툴렀다. 



"You Will Be Found" | DEAR EVAN HANSEN



에번의 추모식 연설이 다수의 마음 속에 가닿을 수 있었던 건 그 역시 코너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어떤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면 서로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는 게 더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코너의 시도는 원하는 대로 이뤄졌고, 에번은 실패에 그쳤는데, 이 실패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는지...그 마음을 감히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왜 글로써 다시 재탄생하게 되었는지 읽어나갈수록 선명히 와닿는 기분이었다. 직접 보는 것으로 다 전달할 수 없었던 섬세한 면면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다. 두 가지 형식 모두 너무나도 매력적이므로 이 모두를 감상하기를 추천해본다. 


성장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그래도 이야기 속 주인공은 행복했으면 하는 해피엔딩 지지자이기 때문에, 현실은 비루하지만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좌절하며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동력을 닮고 싶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들로 보자면 결국은 좋아한다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SNS라는 새로운 매체를 차용한 것도 현실성 있고 좋았다.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은 금방 확 불타오르기도 하고 또 금세 팍 식어버리기도 한다. 일회일비 하지 말자고 하지만 쉽지 않은. 아마 대개 누구든 관종끼는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는 게 마냥 싫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듯한 관심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때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의 걱정과 염려를 받고도 싶고, 때론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주어 위로를 받고 싶은 것처럼.

 때론 나와 같은 상황에서 무사히 잘 살아가고 있는 이에게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겐  『디어 에번 핸슨』 이 그런 힘을 주는 좋은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



다들 달라진 것 아무것도 없는 듯 다닐 테지만 나는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16쪽

이 편지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때도 있다. 원래 목적은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시키는 건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쪽

환상은 언제나 근사하지만 들이닥친 현실이 나를 땅바닥으로 밀칠 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38쪽


내 팔에 적힌 그의 이름. 내가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눈을 뜬다. "그것이 그가 제게 준 선물입니다……혼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것 말입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렇다. 나는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게 그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선물이죠. 다만……."
이게 가장 끔찍한 부분이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우리도 그 선물을 그에게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32쪽

나는 땅으로 추락한다. 나는 절대 하늘 위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추악하고 무거운 진실이 나를 계속 잡아당기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265쪽

나는 알맞은 대가를 치를 수 있길 기다렸다. 가끔은 두 손에 머리를 묻고 이미 지난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애원했다. 코너가 내 편지를 어떻게 할지 전전긍긍하던 때와 비슷했지만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심했다. 위험부담이 훨씬 컸다. 405쪽


깁스를 떼도 내 살갖에 남은 그의 이름이 보이는 듯 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를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을. 411쪽


세상에는 우리처럼 외로운 영혼이 너무나 많다. 우리 모두가 여길 건설하는 데 일조했다. 여기가 자라는 걸 지켜볼 사람들. 우리가 떠나보낸 사람들. 우리는 함께 행진한다. 함께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모든 것의 중심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우리 자신에게 가까워지려고. 서로에게 가까워지려고. 진정한 무언가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422쪽 


"Only Us" | DEAR EVAN HANSEN


"Disappear" from DEAR EVAN HANSEN performed
by Taylor Trensch and Alex Boniello | DEAR EVAN HANSEN

#브로드웨이_최고_인기_뮤지컬 #전격_소설화 #감동_성장소설 #당신은_혼자가_아니에요 #나에게쓰는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만한 나날』











**



민음북클럽 "손 끝으로 문장읽기" 를 통해 알게 된 김세희 작가님의 작품 『가만한 나날』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략적인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


진아와 연승은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이이다. 연승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둘 사이 관계성도 묘한 기류가 흐르게 된다. 연승의 부탁으로 그가 동경하던 대학 선배 소중한을 만나러 가는 길, 진아도 함께 동행하게 된다. 젊고 자신만만했던 청춘의 시절을 지나 앞날이 두려워진 지금, 과거의 빛났던 시절을 떠올려보게 된다.



<현기증>


원희와 상률은 보증금과 월세를 각각 부담하며 동거 중인 연인 사이이다. 상률은 오랜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자 이사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집과 가전을 보러 다니지만, 원희는 갑작스러운 변화와 결정된 앞날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신혼부부인 척 했던 원희, 고물 가전으로 채워질 새로운 터전 앞에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혼란스럽기만 하고, '딸'의 모든 일에 걱정과 부정적인 일만 생각하는 엄마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가만한 나날>


경진은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어느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동기들 중 가장 유능하다는 평을 받으며 경력이란 걸 쌓게 된다. 그곳에서 하는 일이란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사실감 있게 블로그를 운영하며 계약 업체들의 홍보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전 포스팅 글과 관련하여 남겨진 쪽지함에는 자신이 쓴 가짜 상품평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지에 대해 걱정과 염려가 담긴 한 아이 엄마의 쪽지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열심히만 했던 일과 그 일에 따른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게 된 경진은 존중하던 상사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실망하게 된다. 



<드림팀>


선화는 과거 첫 직장에서 자신의 사수였던 임은정의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약속 장소로 나간다. 그녀로부터 사회생활과 직장인이 행하는 처세술 같은 걸 배웠지만, 이와 동시에 선화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던 지난 날을 떠올리게 된다. 퇴사 후 새출발을 하기 위해 사과하러 왔다는 그녀의 말에 선화는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뒤돌아서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나와 루미는 신혼부부에게 제공되는 대출을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한 채 동거 중이다.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전적이 있지만, 지금은 '물나들이'라는 고향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버지에게 드릴 전기장판을 사들고 간 나와 루미.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불안한 예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대출을 받기 위해서 한 혼인신고가 아닌지, 늙고 병들게 되면 버려지는 게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을.



<얕은 잠>


오래 만나온 미려와 정운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정운이 권한 서핑에 도전하게 된다. 수영을 못하는 미려는 고민했지만, 정운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에게 맞추어 애써 서핑 보드에 올라타려는 연습을 하게 된다. 서툴게 올라탔던 미려는 물살에 휩쓸려 낯선 곳에 이르게 되고, 겨우 정운을 찾아 돌아온 서핑샵에서는 정운이 남겨놓은 호텔 주소 쪽지만 남겨져 있다. 낯선 타지에서 두려움을 느끼던 도전에 무사히 해냈던 미려는 익숙한 누군가의 곁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감정 연습>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상미는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평범한 일상 속 비일상적인 농담과 비가 새는 사무실을 치우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늦은 새벽 잠들려고 하던 찰나, 상미가 사는 빌라에서 구조 신고가 발생되고, 이에 단순한 화재가 아님을 짐작하게 된 상미는 어느 순간 무심하다 못해 기계처럼 무감각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과 키스>


나는 좋아하는 상대 H로부터 그가 관심있게 보는 웹툰 작가 고현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업계 모임에서 만난 고현진을 보며 H가 보일 태도를 상상하며 혼자서 그녀의 이미지를 그려보게 된다. 당황스럽게도 질투가 아닌 강렬한 이끌림으로 현진에게 연락하게 된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한 달에 한 번, 낯선 장소에서의 시간. 어느날 자신의 집을 잠시 대여해주겠다던 사람의 집에서 현진과 함께 머무르게 되었을 때 묘한 긴장감이 흘렀던 두 사람은 결국, 정해진 결말처럼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




SNS에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만들었던 계정은 누군가의 잘난 삶과 비교되어 초라한 처지에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는 바로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주변 사람들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나보다는 나은, 훌륭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루한 나는 과연, 계속해서 삶을 연명하는 게 옳은 건가 싶어 하루 빨리 종결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인 현실이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될 정도로 삭막한 현실을 보라. 숨막히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도 허무하게 문턱 앞에서 좌절하게 되고, 고학력, 다수의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이라면, 일단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라면 참고 또 참아야 되는 현실에서 이제 '행복'이란 너무나도 아득한 신기루 같은 것이다. 작은 것 하나 마저 만족스러운 게 없다면 피폐해져 가는 멘탈을 바로 잡기 힘들기 때문에, 그만큼의 틈을 통해 위안을 얻기 위해 소소하게나마 행복해지려 하는 것이다. 



이제 인생의 결실은 결혼과 가족을 형성하는 게 아니고 연장된 수명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감내해야 할 시간과 노후에 대한 염려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한 몸부림만 남았을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이렇듯 어느 구석이든 피로가 쌓이지 않는 데가 없다. 열정을 찾는 기성세대('꼰대'라 지칭되는)에게는 한없이 나약해보일 것이고, 선택할 여지 없이 그나마 나은 걸 고르려다 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김세희 작가님의 『가만한 나날』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갔다. 사회생활과 연인사이 관계성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 이기적인 마음, 굴복해버린 태도 모두 현대인을 투영한 작품 같다. 



각 업계의 상식이라는 듯 계속 일하고 싶으면 참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도 하다. 얽히고설킨 관계망에서 엄한 소리 나돌까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다. 신뢰와 불신은 한끗 차이처럼 누군가는 어긋나기도 또 인정받기도 하고, 그저 일이라서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한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유없이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하기도 한다. 



가족구성원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해 짐이 된 것 같고, 사회에 나와보니 자존감 도둑들이 판을 친다. 꿈을 동경하여 일을 그만두면서도 불안함을 지울 수 없고, 어느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것처럼 무심해지고 냉담해신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무심코 당장 내일 출근할 걸 더 걱정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다를까.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고 홀로 남겨질까 두렵기도 하며, 싫어하는 모습을 안 보이기 위해 애써 참아도 보고, 자신도 모르는 모호한 감정에 휩싸여 휘둘려지기도 하고, 낯선 이끌림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담백하고 섬세한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장황하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그렇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여운을 남긴다. 때론 요즘 통하는 유머같은 말들로, 때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로 어제 내가 겪었던 지옥같은 직장생활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오늘 나에게 친구가 털어놓은 연애 고민이 될 수도 있는. 친숙하면서도 현 세태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들의 구성이다. 술술 읽히다가 갑자기 턱턱 목이 막혀오는 건 고구마같은 현실에 사이다 같은 한 방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이전에 '처음'이란 말에는 설렘과 긴장이 함께 공존했다면, 지금의 '처음'에는 두려움의 무게가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 무얼해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과 실패의 기억만 남게 되진 않았을까. 어른이 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느 정도 먹고 살 줄 알았는데, 여전히 버겁기만 한다면 더욱이 말이다. 세상은 분명 나아지고 발전하고 있는데 왜 여전히 힘든 날들은 계속 되는 것일까. 




김세희 작가님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 앞으로 더 기대된다. 믿고 읽는 최은영 작가님과 또 다른 이유로 믿고 읽게 될 것 같다. 우중충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뒷맛이 아주 씁쓸한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쨌든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세상엔 참으로 많아서 읽고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나를 위한 위안으로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해본다.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책자 속에 담긴 세상은 크고, 찰떡 같이 딱 맞아 떨어지는 표지 디자인도 한몫 하고 있으니. 겉과 속이 알차게 가득 찬, 이 선물같은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무겁고 깊은 세계만을 추구한다는 편견으로 한국소설에 벽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헬로 아메리카』











**




작품 속 시대배경은 이러하다. 1990년 초반 에너지 고갈에 대한 문제로 인해 미합중국의 붕괴 이후 생긴 인구급증 문제,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대규모 기후 제어를 시도하게 되고, 이러한 계기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의 기후는 격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선은 시대적 배경을 배제할 수 없음을 뜻한다. 지금은 다르게 볼 수 있는 측면이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요소들에 대하여. 에너지 고갈의 문제점을 논할 때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를 특징적으로 거론하는 걸 보면 특히 그러하다. 지금은 그 개념과 보는 관점도 달라졌지만, 이를 원인으로 보고 결과를 분석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법이 될 것 같다.)



강대한 산업국의 몰락,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한 미국이란 나라의 시민들은 안전한 농촌으로, 대서양을 건너 이주하기 이른다. 2030년에 이르자 미국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었고, 정부와 국체가 모두 소멸되어 버린다. 



한때는 강력하고 비옥했던 땅이자 찬란하게 빛났으나,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엔 허황된 금빛 모래사막의 세계로 변해버린,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떠나는 아폴로호. 선장인 스타이너와 기술자 맥네어, 정치장교 오를롭스키와 원정대의 주목적인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기 위해 올라 탄 앤 서머스 교수와 리치 박사, 그리고 출생의 비밀과 친부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밀항한 젊은 청년 웨인까지. 



이렇듯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각 인물의 시선이 다른 인물로 향할 때 시점이 변환되어 스스로 자신의 욕망에 대해 서술하는 처음과 달리 이후에는 주로 웨인의 시점으로 모든 상황이 전개된다. 폐허가 된 도시의 차기 대통령이 되길 원하는, 허무맹랑한 꿈을 진실로 믿고 출생의 자부심을 가지는 청년 웨인의 시선으로.



황량한 모래 사막으로 변해버린 뉴욕 거리와 헛된 환상과 오해들의 민낯 앞에, 이들의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은 탐사대가 대사막을 건너가면서부터 비롯된다.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도시 위에 펼쳐지는 탐사대의 여정의 첫 시작은 다소 산뜻하게(?) 표현되는 듯 했으나, 이내 그 풍경도 치열한 욕망 뒤에 생존 본능이 앞선 정신착란적 세계의 장면 묘사로 이어진다. 



도망간 선원들을 대신해 물 배급등 탐사대의 중요 보급품을 맡게 된 웨인은 마이웨이로 자신의 길을 가는 스타이너 선장과 자주 부딪히게 된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적응해가려 했지만 끝내 낙오된 신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까지. 그리고 신기루로 그려지는 여러 양상들. 점점 그 혼란한 세계에서 갈피를 잡기 쉽지 않고, 너무나도 허망한 이야기 전개에 언제 진짜 정체를 드러낼지 인내하고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관료, 우주비행사, 갱단, 게이, 이혼자 등 인디언 부족으로 지칭되는 공동체들이 등장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부로 보이는 과학자 플레밍 박사도 등장하고, 찰스 맨슨이 대통령으로서 군림하는 세계로의 진입에도 거침이 없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가 1981년임을 감안한다면 작가가 상상한 미래 세계와 현재와 어떤 점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좋을지, 이것 또한 훌륭한 독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지독히도 인물을 한계까지 밀어붙이지만, 끝까지 중심은 잃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 다. 미치광이의 머릿속을 들여본 듯한 느낌마저 준다. 



허상의 세계이지만, 그 상상력이 가진 힘이 강력하고 꽤나 현실적이기도 하면서도 핀트가 어긋나는 측면도 있다. 마치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서사의 힘에 하나씩 이야기의 벽을 무너뜨리며 돌진하기에 무심코 따라가게 되지만, 그리하여 눈앞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가, 하고 질문만 덩그러니 남겨진다. 



웨인의 꿈처럼, 희대의 살인마가 대통령으로서 묘사되는 세상에서 미치광이를 물리치고 차기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내 새로운 현실 속 꿈을 그린다. 과연, 허황된 세계 속 환상일지라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의지와 힘이 있다면 이는 곧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토록 치열한 욕망의 실현을 말이다. 마치 이기적이고 정복하고자 하는 지배자적 욕구를 실현함에 있어서 필요충분 조건같은. 



어지러운 소용돌이 틈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발을 내딛고자 하니 현기증이 난다.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의 구현을 이처럼 실존했던 인물을 호명하고, 가상인물과 함께 한 공간에서 존재하게 하며 세밀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필력이 가히 대단하다. 그만큼 서사가 가진 힘도 강력하다. 이에 독자는 중심을 잘 잡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난 당시 미국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그저 이야기로만 읽으려고 하니 한계가 빨리 왔던 것 같다. 다 부족한 독자 탓이다.



편견이란 이렇게 무서운 게, SF에 대한 알레르기 같은 거부반응으로 몇 번이나 책장을 열었다가 덮었건만, 어느 순간 술술 읽히더니 과연 내가 읽고 있는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긴 했으나 결국 손안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 허망하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활기있고 발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신비하지만 그로스테스크하고 파괴적면서도 새로이 재탄생되는 이 세계 속에서 해체된 문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무엇인가.


20세기 후반에 근원을 둔 미국 신화의 탐사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던가.


그리하여 넷플렉스 영화화를 앞둔 이 작품이 영상매체로써 구현되어 화면을 통해 접하게 된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는 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



수직 케이블이 상당수 끊어진 채 녹청으로 뒤덮여 은은한 구릿빛을 머금은 거대한 건조물은 마치 무심한 바다를 향해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그대로 자리에 몸을 누인 하프처럼 보였다. 

10쪽



언제나 평원의 주민이나 우주비행사의 혈통이 아니라는 사실에 남몰래 좌절하며 살아온, 피닉스와 패서디나의 내과 의사들의 후손인 자신의 힘으로, 이제 자신의 나라로 돌아왔으니 다시 말을 몰 때가 되었다. 한쪽 발은 대지의 등자를 딛고, 다른 한쪽 발은 우주를 향한 운에 맡긴 채로.   47쪽



라스베이거스에서 들어온 마지막 보고에 따르면 세계 도박의 수도였던 도시는 폭풍우가 만든 호수에 반쯤 잠겨 버렸으며, 룰렛은 모두 멎었고, 호텔의 꺼져 가는 불빛이 물에 잠긴 사막의 초록빛 수면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미국의 실패와 수치를 모두 담아내는 가혹한 거울처럼. 75쪽



웨인도 이내 깨닫게 되었다. 미 대륙 횡단 계획을 세운다는 핑계를 대며, 그들은 제각기 자기네 두개골을 한 바퀴 두르는 훨씬 긴 사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115쪽



이번 탐사의 진짜 목적에 대해 리치와 대화를 나누려 시도해 봤다.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특별한 '아메리카'를 찾아내기 위한 시도였다. 맥네어가 죽기 몇 주 전에 아폴로호의 갑판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을 말이다.  148쪽




웨인은 자신감 있게 페달을 밟으면서 청명한 하늘 속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가볍지만 배는 더 불붙기 휘운 아세테이트 날개를 단 열성적인 이카로스처럼. 자신의 차림새를 차분히 살핀 다음-어쨌든 이제 조금만 날아가면 미합중국 대통령의 거처에 도착하는 셈이었으니까-그는 동체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한때 데저트인 컨트리클럽의 골프 코스였던 호수를 향해 하강했다. 252-253쪽



"알다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이니 말이다. 그 질병은 '타인'이라는 이름이지. 머지않아 이곳에 도달할 게야.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원정대를 이루고, 이 땅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열의에 가득차서……"  

281쪽



하지만 왜 이런 식으로 무력으로 대응하는 걸까? 대통령이 법과 도덕의 이름으로 권위를 세우고 싶다면, 또한 새로운 아메리카의 최고 통치권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면 괴짜 군벌처럼 구는 것은 완벽하게 잘못된 대처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289쪽




맨슨과 미키 마우스와 메릴린 먼로는 모두 과거의 아메리카에,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증발해 버릴 예정인 고대 도박꾼들의 도시에 속한 존재일 뿐이다. 새로운 꿈을, 진짜 미래에 어울리는 꿈을 꿀 때가 되었다. 선라이트 플라이어 편대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꿈을.   364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