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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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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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기억의 작가’ ‘페라라의 작가’로 불리는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숨은 거장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의 1958년작. 단편집 『성벽 안에서―페라라의 다섯 이야기』, 장편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바사니의 경장편 소설이다. 


『금테 안경』을 두고 이탈리아 작가 엘사 모란테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의 하나”라 했고,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아마도 바사니의 최고작일 것”이라 극찬했으며, 안드레아 카밀레리는 2000년 바사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페라라의 위대한 작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았다. 또한 이탈로 칼비노는 이 작품을 읽은 직후 프랑스 세유Seuil 출판사의 프랑수아 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사니를 “요사이 등장한 이탈리아 작가 가운데 가장 수준 높은 작가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했다.  (출처: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작품 속 주인공은 페라라의 성공한 의사 아토스 파디가티다. 온화한 성품의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의사이자, 풍족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신사이다. 페라라 시민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으며 잘 살아가던 이 신사에게 사람들은 문득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훌륭한 성품의 인물이 왜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생활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말은 많이 모일수록 점차 사실화가 되는 바 소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예로, 파디가티의 성향이 동성애자라며 수군거리게 되었고, 어느새 납득하게 되었으며, 곧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시대적으로 구속받는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물론 당사자는 그 어느 하나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 선량한 신사에게 모욕을 주고 농락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매력적이지만 오만한 젊은 청년은 고통과 상처만 주는 존재이다.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양 착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에 매혹되는 어리석은 존재가 또 인간이기도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연인이라고 지칭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얽매이고 한줄기 희망도 품었다가 친숙한 사람들 앞에서조차 욕보이게 되고, 종국엔 비참하게 버림받는 인물, 파디가티는 초반에 묘사된 모습과 달리 줄곧 당황하고 상처받고 휩쓸려 끝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남기게 된다.



이런 파디가티에 대해 말하고 있는 화자인 ‘나’는 이 중년 신사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고 곧 친구가 된다. 관찰자이자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하던 ‘나’ 역시 페라라에 사는 시민이자, 볼로냐 대학을 다니던 학생이었고, 또 유대인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과거의 아픈 역사가 있기에 언제고 불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던 나는 반유대주의적 인종법 시행을 앞둔 1930년대 어두운 시대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절망에 잠긴다. 무솔리니 파시즘 체제가 들어선 1920년대 이후, 체제의 위기의식 없이 안일한 동조를 하며 살아가던 유대인 공동체는 갑작스러운 인종법 시행 발표 관련하여 배신과 당혹에 휩싸인다. 반유대주의라는 반복되는 역사의 불안함에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는 나와 그리고 홀로 남게 된 쓸쓸한 중년 신사 파디가티,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떠돌이 개 한 마리.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 공간은  페라라와 볼로냐, 리초네, 다시 페라라로 이동하는데 서사를 전개하는데 각각의 전환점이 되어준다. 특히 해변 휴양지 리초네에서는 쌓여있던 갈등과 긴장감이 표출되어진다.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이 느끼는 고독감과 외로움은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갈수록 더 짙어지는데, 과연 그들이 그 안에 속해 있었을 때에도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 속 이 두 인물은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세계 속에서 위선과 경멸에 휩싸인 시선과 시대상에 맞물려 폭발하는 시점을 마주하고, 이내 버려지고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모든 서사는 직접적인 사건들로 존재하지만 표현방식은 직유든 비유든, 에둘러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더 유려하고 비극적인 인상을 남기는 듯 하다. 어두운 밤거리, 고독한 두 인물의 배회랄까, 그리고 그 마지막은 매우 쓰기만 하다. 



머릿수로 결정되는 무리의 가치관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자신들이 믿는 게 옳다는 신념으로 확신하는 태도,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외면하는 태도 말이다. ‘그들’과는 엄연히 다르고, 더 우월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 모든 게 평화롭게 수용하는 세계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이렇게 삭막하게 위태로운데 작품 속 시대에는 얼마나 더 숨 막히고 참혹했을지 가히 짐작도 가질 않는다. 


바사니의 작품을 처음 접해보는데, 그렇게나 많은 작가들이 하나같이 좋은 문체라고 칭송하는 데는 이러한 태도가 뒷받침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모순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요소와 그가 느꼈을 심리적 요소가 부합되어 특유의 문체가 완성되었을 것 같다. 차분하고 담담하면서도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극과 모순된 태도에서 아름다운 문체가 발현되니 역시 문학은 행복한 삶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과 아픔이 있고, 좌절과 절망이 있기에 이를 위로하고 위안을 주기 위해 글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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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등진 그의 모자는 날벌레 무리에 둘러싸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드높은 가지 위의 거대한 새처럼 걸터앉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단호한 목소리로 한 점 한 점 득점 수를 외치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평한 심판이라는 자신의 임무에 몰두한 채 그 위에 머물렀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하루하루 밀려오는 지독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91쪽 

 


자신을 멸시하는 연인으로 인한 그의 고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백하자만 그의 마음을 가늠하는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연민보다 혐오감이었다.   97쪽


 

매우 가까운 장래에 그들, 이교도**들은 칠팔십 년 전에야 마침내 우리가 벗어났던 참담한 중세 구역의 구불구불한 좁은 길에다 또다시 우리를 떼거리로 몰아넣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겁먹은 많은 짐승들처럼 철책 뒤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고, 거기서 절대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111-112쪽


**Goi, 유대인 입장에서 비유대인, 이교도를 가리킬 때 쓰는 말. 히브리어로 ‘백성’이라는 뜻으로, 보통은 Goy로 쓴다.


 

(…) “이처럼 자신의 본성을 받아들여야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도 다분히 동물성이 존재하는데, 과연 인간이 복종할 수 있을까? 동물이라는 것을, 단지 한 마리의 동물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123쪽


 

지난 두 달 동안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 총체적이며 결정적이었다.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142쪽




** 덧붙이며

매우 늦은 후기이지만 고마운 이웃 연꽃폴라리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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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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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용과 지하철』




타고난 이야기꾼인 마보융의 위력은 이미 국내 첫 출간되었던 『장안 24시』로 증명된 바 있다. 역사소설을 비롯한 미스터리, SF판타지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데다,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더불어 구성이 촘촘하기 때문이다. 그가 구축한 작품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빨리들여 가는 듯한 강력한 흡인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가진 힘이 강력하다. 가독성 좋으면서 작품성까지 갖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걸 가뿐히 해내고 있으니 타고났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의 신작이 나왔다니 당연히 기대가 됐다. 과연, 이번엔 판타지적인 요소가 주를 이루고 주인공은 어린 소년인데다, 이야기 속  배경은 익숙한 장안성이라니 한층 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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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이정의 아들 니타는 순수한 마음과 타고난 대담함과 더불어 의협심과 모험심이 가진 소년(가히 주인공이 가질 만한 성격 요소를 모두 갖추었음)이다. 오랜만에 가족간의 재회를 기대하며 장안성으로 향하는 길, '얼룡'이라는 용 형상의 검은 기운에 공격을 받게 된다. 기막힌 타이밍으로 니타가 탄 마차는 천책부 공군 덕에 무사히 생명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게 되지만. 위기의 순간 추락하던 니타를 구해준 천재 비행교위 심문약 덕에 하늘을 비행하는 짜릿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그렇게 무사히 아버지와 재회를 하게 된 소년은 미로처럼 끝없이 펼쳐진 장안성이란 낯선 도시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보호자를 자처한 옥환공주를 통해  지하룡을 처음 타 본 소년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편리함과 달리 살아있는 용을 도구로만 이용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 소년의 눈엔 오히려 본래 가졌어야 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감정없는 냉담한 눈으로 지하에 갇혀 사람과 짐을 싣고 나르는 그들의 생활이 가엾기만 하다. (이는 물론 필연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게 된 동시에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겪어본 것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연찮게 지하룡들의 거처인 선로 관제소에 숨어들게 되고,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워둔 달콤한 과자와 주전부리들 덕에 식탐 많고 정 많은 한 용의 용주를 얻어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실수로 떨어뜨린 사탕액이 묻은 용의 차가운 눈빛에 대한 사연을 듣고 그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좌절을 겪게 되고. 소년의 순수한 진심이 전달되자, 많은 지하룡들의 요구로 그들에게 손수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열살배기 어린 소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소년은 지하룡 막대사탕, 식탐이, 천둥, 매화반점과의 우정을 통해 지하룡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더 가까이 경험하게 된다. 


장안에서 매년 열리는 용문절에는 수많은 잉어들이 간절한 바람으로 힘겹고 고통스럽게 호구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드높은 용문을 통과하여 용이 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운이 좋게 통과하여 무사히 용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좌절하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서도 겨우겨우 용이 되어 비상할 찰나, 천책부 공군과 백운관 도사들의 공격으로 주술과 쇠사술에 묶여 지하에 묶인 신세가 되고만 용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역린(용의 아래턱에서 3척쯤 내려온 곳에 위치한 특별한 비늘). 영혼도 없이 오직 깊은 분노와 원한만 담긴 역린이 변해 얼룡이 되는 것이었으니, 이는 곧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한편 니타의 아버지 이정과 대척점을 이루는 백운관의 수장인 청풍 도장은 황제의 전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 점차 강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얼룡에 대해 대비하는 데에 의견을 달리 하는 이정과 청풍 도장의 기싸움에서 권력다툼의 조짐이 보이나 싶었는데, 다행히 더 심화되는 양상은 아니었다. 어른들의 다툼과는 상관없이 니타는 자신을 보호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죽음의 문턱에 선 막대사탕을 구해내기 위해 온힘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 니타가 이뤄낸 기적이 하나씩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멀미에 힘들어하던 어린 소년은 첫 인상과 달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비범하게 행동하며, 이야기의 힘을 더해준다. 


소년과 용 막대사탕의 우정을 읽어가며  한순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가, 긴장감에 마음을 졸이게도 하였으며, 모두가 공존하여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기도 했다. 이들의 우정이 영원하길 간절히 바라며, 흐뭇한 웃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던 작품이다. 



"날아! 비상은 용들의 숙명이야!"

이 말은 붉고 강렬한 전류처럼 모든 용의 신경을 자극해 전율하게 만들었다. 이 치기 어린 목소리에 갑자기 많은 용들이 사납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 용들이 뿜어내는 질풍노도와 같은 포효가 한데 모여 강한 기류가 형성됐다. 마치 비범한 진룡이 탄생할 때처럼 바람이 일고 구름이 피어오르며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다. 


 제12장 대얼룡  中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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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이 소설 내엔 권력의 다툼 속 존재하는 이기적인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는 구조였기에 편하게 읽을 수 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불현듯 닥친 위기를 무난히 잘 헤쳐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힘이 강력하면 없던 집중력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는데, 바로 이 소설이 그러했다. 긴장이  고조되어 제발, 제발하는 마음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안도하는 상황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영상매체 제작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봤던 것 같은데 이미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선명한 묘사가 이어지니, 보는 즐거움까지 더한 듯 하다. 소년 니타의 순수한 마음과 용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름답게 펼쳐치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니 감히 치유소설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를 짐작하여 살펴보면,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각심과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운좋게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쪽으로만 편중된 독서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그 세계에만 갇혀 있었음을 고백해본다. 중국소설도 '마보융'이라는 작가를 통해 그 매력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용과 지하철』에 실린 그의 다른 단편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와닿지 않고, 별 매력도 잘 느끼지 못하였지만. 


작품의 여운이 남아 그 다음을 자꾸만 그려보게 됐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 막대사탕과 니타의 이야기를 좀더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싶고, 혹은 틈만 나면 투닥거리기 바빴던 옥환 공주와 심문약의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었으면, 완벽한 마무리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는 작품이었기에 소소한 아쉬움을 덧붙여보았다. 하지만 역시 믿고 읽는 마보융, 다음 작품도 너무 기다려진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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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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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됩니다. 황정은 작가님 소설집!! 제발 선착순 안에 들어서 사인본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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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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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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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에는 시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읽었다. 읽기 어렵다는 편견도 있었고, 세상 살기 팍팍하니 단순하건 복잡하건 이야기 속에 몰두하고 싶었고, 숨어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이름으로 인해 다시금 시를 읽어 보았다. 사실 잘 읽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얼마 전 시인의 강연을 들었을 때, 곧 시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시기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피 흘리는 시적 자아를 보며 마음 아팠지만, 역시 나희덕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어떤 글을 통해 서정이 사라진 시대라는 평을 본 적 있다. 사회가 변해갈수록 문단 내 분위기도 글 쓰는 작법도, 추구하는 세계도 자연히 변화하기 때문에, 긴 산문시가 유행했던 시기가 지나면 다시 짧은 시가 등장하게 되는 것처럼. 시 속 주체도 점점 해체되고 분열되기 시작했으며, 전복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이입됐고, 때론 알 수 없는 허공에 머무르기도 했다. 


시적 화자라는 표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그 존재가 유령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던 시도 보았던 것 같다. 파편적으로 흩어진 시들을 읽는 게 어렵게만 느껴졌고, 다가서기 어려워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시인의 말했던 것처럼 이는 어쩔 수 없는 발화였고, 생존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혼란했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믿기지 않은 사건 사고가 연일 터지는 현실 속에서 말더음이처럼 더듬거리면서도, 발 딛고 서 있기 위해 조심스레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희덕 시인의 신직시집 『파일명 서정시』는 그런 측면에서 기존에 표현했던 방식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섬세하지만, 좀더 거칠고 뿔뿔이 흩어져 파편화됐으며, 날 것의 그대로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시인의 내공과 깊은 내면의 세계로부터 자연히 표현되었기에, 막연한 거부감이 들지 않게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이다. 



비극의 상처, 인간다운 것이란


표제작인 <파일명 서정시>는 냉전기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째를 감시하며 작성한 자료집을 소재로 차용한 것이다. 시대를 퇴보했던 지난 정부의 만행으로 인해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는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시인 역시 그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이에 질문을 던져본다. 서정을 노래하는 게 어떻게 불온한 게 될 수 있나, 그것도 지금 이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말이다. 라이너 쿤째가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시인 역시 시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맞물리듯 구성된 이 시는 다른 시대 속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마주보고 서 있는 라이너 쿤째와 시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료집에 기록되어 있을 법한 라이너 쿤째에 관한 것들과 시인이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나열된 요소들이 그러하다.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18쪽, <파일명 서정시> 중에서


이와 더불어 역사 속 비극과 현실 속 재난과도 같은 비극,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고, 어디에서든 유령처럼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위안부 소녀들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재(人災) 세월호로 인해 어이없이 갇혀버린 아이들까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비극의 상처로 인해 다친 영혼들에 그저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 더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또한 인간다운 게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사실 지구상 가장 잔혹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싶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츠가 72개의 사물을 두고 스스로 대상화 하여 관객에게 정해진 안에 사물들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한 퍼포먼스 <Rhythm 0>. 그리고 그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든 대상이 된 예술가는 온전히 그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사람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습성, 폭력성을 비롯한 비참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역사 속에서도 있었고, 현실에서도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잔혹 행위에 대해 할말을 잃게 된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인간다운 게 무엇인가. 


색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검은색 위에 더 짙은 검은색이 내려앉을 때/검은색이 비로소 한줄기 빛이'(69쪽) 되는 것처럼,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은 어떤 것인지, 착취하고 때때로 절망하게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모순적인 존재인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 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41-42쪽,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에서 


들린 발꿈치로

한번도 온전히 제 땅을 밟고 서보지 못한 발꿈치로

44쪽, <들린 발꿈치로> 중에서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바다 저 깊은 곳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말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50-51쪽, <문턱 저편의 말> 중에서


마음을 소등한 자에게만 보이는 

희미한 빛은

끝내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68쪽, <마크 로스코> 중에서



가려진 이름들, 여성


얼마 전 기사에서 노벨물리학상 역사상 여성연구자 수상이 55년만이자, 세 번째라는 소식을 보았다. 시대가 변화하고 여성의 언어에 대한 목소리가 들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성별에 따른 경계로 나누는 게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존재들에 대해 조명하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성으로 대체됐던 여성의 언어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고, 그러한 변화가 반갑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요원하다. 상대적으로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기에 잘 말할 수는 없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에서 뜨악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인지하게 되는 순간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여성의 언어를 이야기할 때, 시인의 소재로 차용한 <슬픈 모유>라는 영화는 시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충격적이면서도 슬픔과 분노가 함께 일었다. 영화는 페루의 수도 리마 근교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파우스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전의 참혹한 시기에 테러범들에게 강간을 당한 임신부들이 아이를 낳으면 모유를 통해 어머니의 공포가 아이에게 전염되어 영혼없이 태어나게 된다는 게 바로 '슬픈 모유'병인데, 파우스타는 자신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인물이다. 혼자서는 길을 잘 걷지도 못하고, 벽에 바짝 걸어야 하며, 강간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질 속에 감자를 넣고 다닌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고향에 묻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파우스타의 모습 또한 그리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과 행위들이 도사리고 있다. 때론 이용당하여 오염된 여론으로 또다시 상처받게 되기도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 듯 하다 두 세 걸음 다시 밀려나기도 한다. 역지사지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포가 무수히 많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한 번쯤은 헤아려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결국은 모두가 잘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마담 뀌리가 처음으로 추출해낸

0.1그램의 라듐처럼


희고 빛나는 것들

그러나 검게 산회되기 쉬운 것들

25쪽, <라듐처럼> 중에서


우리는 저마다 기울어지는 난파선이니

깜박이는 불빛으로 다른 난파선을 비추는 눈동자이니

가라앉은 손을 잡는 또 하나의 손이니


어서 들어오세요

우리의 피로 빚어진 붉은 텐트 속으로

33쪽, <붉은 텐트> 중에서


엄마라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나는 태어났어요

감자 덩굴에 매달린 작은 감자알처럼


노래로 치욕을 견뎌낸 여인

그녀가 낳은 핏덩이는

세상에 던져진 채 간산히 살아남았지요

81쪽, <슬픈 모유> 중에서


이제 누구의 아내도 아닌

늙은 소녀


그녀의 주름 속에서 튀어오른 물고기들은 이내

익숙한 고통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84쪽, <주름들> 중에서



죽음, 그리고 노래하는 것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생처럼 죽음도 언제 어떻게 올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개의 씨앗에서/삶과 죽음은 두개의 떡잎처럼 돋아'(80쪽)났기에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과 같다.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히 찾아오는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 모두 살아있었기에 이뤄진 것들이다. 하지만 난 늘 남겨진 자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고하고 어이없는 희생부터 스스로 선택한 죽음마저 그 후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이기적이게도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삶의 의미도 알 수 없고, 무기력한 마음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그렇게 멀리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내일 당장 뭐 먹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욕망과 욕구는 생존 여부를 앞서는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정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반면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살아갈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확실한 한 가지는 삶과 죽음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과도 같다는 것이다.


시인은 죽음을 다양한 모습으로 소환했다. 죽음은 쓸쓸하고 무력한 것이지만 그 끝엔 언제나 노래가 남아있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시인만의 새로운 서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노래가 가지는 힘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거나, 한 줄기 희망을 염원하기도 한다. 또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도 한다. 시인이 호명한 탄센은 고대 인도 가수이자, 설화 속 인물인데 목소리의 힘만으로 자연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는 간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불의 노래를 부르게 되고, 뜨거워진 강물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지만, 그의 딸이 부른 비의 노래를 통해 점차 불길이 잦아들어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잿더미 속 남겨진 노랫소리에 '삶'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살아있기에 부질없을지라도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커브를 돌 때마다

휘청, 죽음 쪽으로 쏟아지려는 것들이 있다

53쪽, <이 도시의 트럭들> 중에서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숨은 것이다

잦아들던 숨소리와 함께


숨은 숨이다

74쪽, <숨은 숨> 중에서



그러다가도 죽음, 이라는 말 근처에서

마음은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피지 않은 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침묵에 기대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기에

입술도 가만히 그 말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94쪽, <마지막 산책> 중에서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12쪽, <심장을 켜는 사람> 중에서


나이-톰보-톰보, 그곳은 사막에 있지

알타이족은 영혼이 사막을 건너간다고 믿었지

사막에 옛 노래가 울려퍼지면

그제야 죽음이 임한 걸 알게 된다지

112쪽, <나이-톰보-톰보>중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노래의 힘으로 죽음의 사막을 거넜던

알타이 샤먼들처럼

114-115쪽,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중에서



**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얼음조각 상처는 서른세개 동사들 사이에서 부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흘리게 하면서도 다시 태어나기를 종용한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이걸 '변화'로 읽어보았다. '서정'의 다른 얼굴로 표현되고 있는 이번 시집은 때론 낯설고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 면을 가둑 채운 ‘둠’이라는 글자는 마치 하나의 감정처럼, 어둠 속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듯이, 이건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면에 쌓인 상처들에 고통스러웠지만, 곧 딱지가 입고 새 살이 돋아나며 익힌 변화들.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러일으킨 발화이다. 세상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고, ‘삶과 죽음은 한 개의 씨앗에서 돋아’나기에, ‘한 열매가 대지로 돌아간 그날에’언젠가 모두가 죽음을 맞게 된다. 더 이상 서로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반복된 실수는 점차 사라져야 할 것이다. 결국 부딪히게 되면서도 포용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다하여 배척되어선 안 될 일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내 삭막해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감돌 게 될 것이다. 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처럼.








(이 리뷰는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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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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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령』






**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작품은 그 본질과 더불어 존재론적인 질문도 함께 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건 혈연 즉, 가족이라는 관계성에 자리하고 있다. 악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인물이 영원성의 종결을 결심했을 때, 재회한 '가족'으로 인해 다시금 생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급 인사들과 현직 국회의원을 살해한 범인, 고요한 자세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곧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1심에서 형을 받아 살고 있는 남자. 수감번호 474번으로 불리는 남자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만한 게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남자이다. 행위의 목적을 묻는 여론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행한 범죄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목적이나 원한도 없다며 무심한 태도를 보이지만, 몸에 생기는 작은 상처에는 민감하게 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곧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성 질환의 일종인 선청성 무통각증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의문이 해소된다.


수감자 474번 말고도 담당 교도관인 윤을 비롯된 다른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윤이라는 인물은 474번 남자와는 다른 결의 ‘악’의 성질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관망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 상황인즉 타인의 고통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윤을 비롯된 다른 인물들 역시 각각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있어서 겉보기에만 좋은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위선적인 태도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한 일면으로 다른 교도관들과는 달리 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여 놓고도 용서를 구하거나 변명을 하지 않는 남자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리듯 호기심이 가진다. 남자가 가진 배경이나 본질,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러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다른 그 누구보다 더. 

  

누가 더 악한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악은 어떻게 탄생되고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주력한 목적 의식이라면 곁가지로 등장하는 문제는 바로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 인지 못하고 있었지만, 알아보니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폐지된 것이 아니었고, 다만 수년간 집행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하는 게 바로 이 작품의 뛰어난 특징이 아닐까 싶다.

  

남자는 그렇게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신해경이라는 인물과의 만남 후에 자신의 사형 집행을 촉구하기 이른다. 여기서 윤의 역할이 크게 작용되는데, 두 사람 사이의 엉킨 오해와 상처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도 순수한 호기심에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남자는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보지만, 이미 세상의 관심과 여론은 죄질에 따른 법집행에 대해 뜨겁게 불붙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폭주하듯이 또 다른 사건이 발생되고, 결국 뒷맛 씁쓸한 결말 만을 남기게 된다.

  

신해경과 남자와의 관계성, 신해경을 자신의 누나이자 친구이자 엄마라고 불렀던,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누나에 대해 원망과 좌절을 품고 있었던 남자의 근원에 대해. 왜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할 때, 신해경의 목소리로 발화하는데 너무 빈번하게 발생된 현실의 사건들로 인해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게 참으로 씁쓸했다.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남자, 신해준의 삶보다도 더 비참했던 신해경의 삶이 모성으로만 직결되기엔 그 주체성 상실이 마음 아프게,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단한 느낌의 어조가 잔잔한 호흡으로 이어졌고, 버석거리는 느낌의 문장들의 끝엔 물기가 어린 듯 했다.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담긴 이야기에 비해 읽는 속도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의미로)걸리는 부분들이 많아서, 읽다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 작품이 더 큰 여운을 남기는 듯 하다. 

  


그리하여 악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이는 윤을 사악하다 했고 어떤 이는 윤을 무섭다고 했지만 대부분 윤을 깔끔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좋아했다. 39쪽

  

  

엄지발가락 옆에 네 개의 까만 발가락이 흐물흐물 흔들리고 있었다. 어둠으로 만들어진, 그러나 만질 수는 없는 모종의 형상. 그것들은 가벼운 연기 같고, 투명한 그림자 같고, 끔직한 악령 같았다.     46쪽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두려움과 공포가 깃들면 나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59쪽

  


시간은 하루 이틀 지나지 않고 기다림과 외로움으로 흘렀다. 어느 날 회색으로 변한 게딱지 위로 눈처럼 하얀 서리가 덮여 있었다. 마침내 받아들였다, 버려졌다는 것을.    81-82쪽

  

  

겁쟁이들은 저로 인해 강해졌고 원한이 많았던 자들은 저로 인해 원한을 풀었습니다. 그는 그 대가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관들이 저를 유령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존재를 숨겨야 존재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습니다. '쁘리즈락', 그곳에서 저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여기 말로 '유령'이죠.     127쪽

  


러시아 사람들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겨울의 세계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몸도 마음도 말투와 음성까지 조금씩 얼음이 섞여 있습니다. 얼음 바다를 보신 적 없으시겠죠. 겨울이 오면 그들은 바다 위에 서 있습니다. 걷고 뛰고 뒹굴기도 하죠.   129쪽

  


그는 계속 미움과 그리움이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중얼거렸다. 나중엔 너무도 작은 소리로 들리지 않게 소곤거려 방 안엔 움, 이라는 희미한 울림과 떨림만 가득했다. 움. 움. 움. 132쪽

  


부서졌던 시간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일그러진 그림. 기괴하고 조립된 얼굴. 한쪽은 웃고 있고 한쪽은 울고 있습니다. 떠나가고 버려지고. 두 가지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고 싶고 죽이고 싶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133쪽



투명한 물약 한 방울에도 피와 근육이 망가지고 녹아버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하찮은가.   153쪽


  

실수였지만 대부분의 실수가 그렇듯 돌이킬 수 없었다. 사수는 죽지 않는 몸을 갖고 있었기에 고통 또한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게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고통을 품은 불사의 몸. 그는 영원한 고통을 참다못해 자신의 죽지 않은 본성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175-176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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