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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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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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이모 토울스는 미국 보스턴 출신으로 예일대학교 졸업 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석사논문으로 썼던 프로젝트 단편소설로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금융업으로 진로를 결정하여 투자전문가로 20년 동안 일하였다고 한다. 일하는 동안에도 종종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고,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첫 작품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시작은 다소 늦지만 그래서인지 더 신중한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작품 하나 하나가 세공된 보석 같은 느낌이다. 


작가의 살아온 배경이 어떠한지 알 수 없으나, 처음 접했던 『모스크바의 신사』 도 그러했고, 이번 작품도 귀족적, 상류계층에 대한 실재적인 묘사가 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인물 또한 실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강점이 있다. 대단한 자료조사와 더불어 본인이 겪고 접했던 부분들이 들어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인물이 사는 집 속 소품 하나, 옷 재질 하나 세심한 손길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당연스럽게 분량은 어마어마하게 나올 수밖에 없으며, 덕분에 인물과 배경에 대한 정보나 묘사가 늘어나 더 생동감 있게 인물을 표현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대단한 장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고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주는 듯한 어조로 말하며,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문장도 있었다. 자신의 세계 안에서 여러 번 담금질 하고 또 정밀하게 세공한 후에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완성시킨데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글을 쓰는 작가들 모두 각기 다루는 주제적인 측면들이 다르지만 결국엔 창작하는 이로 하여금 그와 가까운 것부터 다루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은 다수의 평론가들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를 많이 언급하였는데 왜 그런 언급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 결이 어떻게 다른지 잘 설명하지 못해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만.

이는 추후 피츠제럴드 작품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1966년, 중년의 나이가 된 케이트가 남편 밸과 함께 참석한 뉴욕 사진전시회에서 옛 연인이자 인연이기도 했던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발견하고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불빛과 재즈, 열정의 음악으로 가득한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되는 플래시백 효과처럼, 사진 한 장을 통해 격동과 혼란의 시대 1930년대를 회상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1938년 뉴욕, 여기 세 남녀가 있다. 동일인물이 여러 이름으로 호명되는데, 자주 불리우는 이름으로 말하자면 케이트, 팅커, 이브가 되겠다. 주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민자의 딸이자 노동 계층인 케이티(캐서린)이다. 열아홉이 된 그 해부터 법률사무소에서 비서(속기)로 성실히 일하고 있으며, 하숙하는 곳에서 만난 룸메이트 이브(이블린)와도 소울메이트처럼 잘 지내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젊고 매력적인, 장래가 유망한 은행가 팅커 그레이가 나타나고, 이들 사이에는 사랑과 우정의 얼굴을 한 채 미세한 균열이 일게 된다.


세 사람은 우정을 빙자한 만남으로 그동안 감춰오기만 했던 대담하거나 시시껄렁한 꿈에 대한 생각과 말들로 웃고 떠들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상류사회로의 진출을 위해 지켜야 할 규칙으로 인해 겉으로는 예의있고 선을 지키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억눌려 있던 팅커는 소로의 <월든>을 무인도에 가져갈 물건으로 꼽는 케이트에게서 호감과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파란의 소용돌이 중심에 선 인물 앤 브로딘이 있다. 그의 대모로 소개된 앤 브로딘은 남성 사업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하며 흔들림 없이 자아를 지켜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세 사람 사이에는 어느 순간 사소한 자리 다툼이나, 미묘한 신경전 같은 질투가 싹트기도 한다. '셋'이라는 불완전한 숫자에 언제든 한 명은 떨어져나가 정리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은 그렇게 불현듯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케이티와 팅커의 미묘한 기류를 감지한 이브는 그들 사이에 자신이 끼여들기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는지, 두 사람이 우연히라도 따로 만났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게 위태로운 상태에서 세 사람이 탄 차는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으로 인해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조수석에 앉았던 이브는 충격으로 깨진 유리창 밖으로 튕겨나가게 되는 바람에 얼굴이 짓이겨져 큰 흉터가 남게 된다. 운전석에 앉았던 팅커는 이 불행한 사고로 인해 생긴 이브의 상처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그를 부양하고 곁을 지키려 한다. 사랑이라는 전제를 가진 남녀 관계라기 보다 함께 큰 일을 겪고 난 후 생긴 끈끈한 전우애처럼, 의리만 남은 이상한 관계 속에서 끝끝내 행복한 결말을 오지 않는다. 


이들의 위태로운 관계는 헐리우드 드림을 꿈꿨던 이브가 사고 이전의 비범했던 면모를 되찾으며 떠나는데서 마무리된다. 비록 얼굴에는 큰 흉터와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를 하게 되었지만 용기가 있는 인물이었으므로, 떠날 수가 있었다.



한편 두 사람 사이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던 케이티는 여전히 열심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 사이 다른 인연을 하나 둘씩 맺게 된다. 팅커로 인해 이브와 케이티 모두 사교계 인사와의 만남과 파티를 통해 사교계 진출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관련한 관계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때론 거짓과 오해를 여지로 두며 부유한 귀족계층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이브가 꿈을 쫓는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 케이티는 똑같이 꿈꾸는 열망은 있으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노동은 필수적인 것이었고, 먹고 사는데에 더 중점을 두면서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 위한 연기와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이는 보기 좋게 들어맞아 어떻게서든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가 낯설고 새로운 인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지적인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에 퍽 매력적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람을 대할 때면 상대방이 원하는 의중을 잘 파악하고 이를 적절하고 과하지 않게 표현하여 입밖으로 내뱉기 때문에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욕망은 결코 잔잔하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승진을 앞두고, 전망없는 출판사지만, 원했던 곳에 들어가기 위해 대담한 연기를 했던 것처럼. 그리하여 소개로 들어간 출판사에서 편집자 역할을 가장한 비서일을 하면서 자신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게 강단있고 멋지게 느껴졌다. 이는 그가 사람의 감정과 관계성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는 인물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그도 팅커에게만큼은 속수무책인 태도를 보인다. 팅커에게 끌리고 있지만 애써 참고 인내하였으며, 이내 두 사람이 함께 하고자 했을 때 다시금 닥친 위기에 격분하였고, 차분함과 이성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팅커의 형인 행크는 돈이 궁하지만 자신의 그림을, 예술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지녔던 윌러스는 케이트와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책임감에 더 가까이 다가섰으며, 별다른 목표나 목적은 없지만 천진난만했던 명문대생 디키는 순수한 애정과 마음으로 케이트의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이며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케이티의 여러 인연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강렬한 이끌림이었으나 안타까움만 남게 했던 팅커보다, 편안했고 꾸밈없이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던 윌러스가 기억에 남았다. 첫 인상은 다소 퉁명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수줍음도 많았으며 다시 재회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인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케이트는 그에게 사격을 배우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게 되기도 하였으며, 두 사람 사이 흐르는 묘한 긴장감이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며 펼쳐질 앞날을 기대하게 했다. 물론 읽는 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에선 웬일인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속 다아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냉담한 태도와 겉모습에 오해가 있었지만, 리지에게는 그 누구보다 진실된 사람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처럼. 케이티에게 윌러스가 그런 인물 같았다. 수줍어하는 태도에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고, 별다른 호감도 보이지 않았기에 금방 단절될 관계로 보였으나, 다시 재회하게 되었을 때 케이티는 그 어느때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충동적이며, 혼란했던 화려한 배경 속에 파묻혀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자 했던 여러 인물들이 당시 시대적 상황을 대신해서 표현해주고 있다. 신분으로 나뉘는 차별과 인종 차별도 여전히 존재했음을 신문 속 사교계 인사란이 별도로 있는데서, '검둥이'라며 일상적으로 표현한데서, 잘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오랜 집필 기간을 거쳤다고 하는데 정말 그 시대를 대변해주는 1930년대의 정수를 보는 듯한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욕망과 그로 인해 지켜야 할 규칙들로 결국은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 인물도 있었으며, 그런 욕망을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는 길을 찾는 선택으로 행동하는 인물도 있었다. 무엇이 됐든 결국은 다시 희망을 찾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안도하였다. 가독성이 좋아 읽는 즐거움도 아주 컸고, 당시 유행했던 음악, 그리고 예술작품에 대한 견해, 자주 등장했던 디킨스와 헤밍웨이의 작품은 언제고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언제나 그랬듯이 생각만..) 그래서 대중성과 문학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에 기꺼이 동의한다. 이토록 훌륭한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부럽고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셈세하고 아름다운 세계속에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만나보게 되어 더할 나위없이 기쁜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작품도 당연히 기대가 되지만, 이렇게 신분사회에 대한 주제로 나아갈 거라면 작가가 그리는 또다른 세계 또한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도 든다. 당연히 상류계층은 제외하고 말이다. 어찌됐든 이 바람은 조심히 한켠에 남겨두고. 오늘은 Billie Holiday의 Autumn In New York을 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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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그런 변화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1950년대에 미국은 세상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서 주머니에 든 동전까지 챙겼다. 유럽은 가난한 친척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가문의 문장만 남았을 뿐, 식탁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존재.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비슷비슷한 나라들은 우리의 학교 교실 벽을 장식한 지도 속에서 햇빛을 받는 도롱뇽처럼 막 잽싸게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참이었다. 10쪽




요람처럼 아늑하게 흔들리는 지하철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조심스레 꾸며놓은 표정이 슬그머니 벗겨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걱정거리와 꿈 사이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초자아가 녹아내린다. 13쪽



이건 자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을 고를 때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은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골탕 먹일 의욕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66쪽



따라서 상대가 좋은 질문을 던졌을 때 최선의 대응책은 주저하거나 억양에 변화를 주지 말고 간단히 대답하는 것이다. 77쪽



나는 손을 빼내서 그의 매끄러운 뺨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모든 것을 참아내라는, 인내에 관한 훌륭한 조언에서 위안을 얻었다. 128쪽



대화 중인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일보다 책을 읽는 한 사람을 방해하는 일을 더 꺼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기묘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설사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멍청한 로맨스소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133쪽



증오에 물든 사람은 상상력과 용기를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시간당 50센트를 버는 사람은 부자에게 감탄하고 가난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면서, 시간당 임금이 자기보다 1센트 많거나 1센트 적은 사람에게 온갖 독설을 퍼붓는다. 혁명이 10년마다 한 번씩 세상을 휩쓸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193쪽




아버지는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아무리 풀이 죽고 기운이 빠져도, 자신이 언제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해준 조언이었음을 깨달았다. 

209쪽



우리 사이의 로맨틱한 상호작용은 진짜 게임이 아니라, 수정된 버전이었다. 두 친구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도 보내고 조금 실전연습도 할 겸 해서 만들어낸 수정판. 299쪽




하지만『월든』에서 지금까지 항상 내 곁에 머무르는 구절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소로는 진리가 멀리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 멀고 먼 별 뒤에, 아담이 태어나기 이전과 심판의 날 이후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 모든 시대와 장소와 일들이 모두 지금 이곳에 있다.”‘지금 이곳’에 이토록 찬사를 보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만의 별을 따라가라는 권고와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말도 별을 따라가라는 말만큼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도달하기가 훨씬 쉽다. 372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이 더 많아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필요한 것이 원하는 것을 능가하는 사람들이에요.” 414쪽



“우리가 자신과 완벽히 맞는 사람하고만 사랑에 바진다면, 애당초 사랑을 둘러싸고 그런 소동이 벌어지지도 않을 거야.”477쪽



옛 친구를 이어 잊으리, 어이 다시 생각지 않으리.*


하지만 가끔은 옛 친구를 잊어버리고 다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인생의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몇 년마다 한 번씩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던져버리며 빙빙 돌아가는 원심분리기와 같다. 그러다가 이 원심분리기가 멈추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삶이 들이미는 수많은 새로운 걱정거리에 둘러싸인다. 507쪽


* 노래<올드랭사인>의 가사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여행보다는 허니문 브리지와 더 가깝다. (…)

게임을 하면서 카드를 하나 뽑으면 그 카드를 그냥 갖고 다음 카드를 버릴 건지, 아니면 먼저 뽑은 카드를 버리고 그다음 카드를 가질 건지 곧바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탁자 위에는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카드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내린 결정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517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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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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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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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 미스터리 중에서도 애정하는 해미시 맥베스 순경시리즈가 근 일년만에 신작이 출간됐다. 트위터에서 접한 현대문학 편집자님의 데스크 사진에서 『각본가의 죽음』 이 꽂혀 있는 걸 보며 설레어 검색해보기도 했다. 코지 미스터리는 정통 추리물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사건의 크기와 무게 등과는 상관없이 흥미로운 인물들과 관계성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현실이 지루하고 피로할 때는 이런 작품들 속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그저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와 위안을 주기에 찾게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 플롯 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인물간 애정전선이 아니겠는가.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같이 수다떨듯 읽어나갈 수 있으니, 이만큼 재밌는 구도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에피소드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솔직히 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일단은 반갑다. 다음 편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더 기다려야 하지만, 다음이 있음을 감사하기만 하다.

                                                                                                                                                                                                                                           

이번 『각본가의 죽음』 은 스코틀랜드 고지에서 은퇴 생활을 하는 70대 탐정소설 작가 퍼트리샤 마틴브로이드에게 그의 작품인 『만조의 사건』을 드라마로 제작하자는 제안이 들어오며 시작된다. 그러나 작품을 더 쓰지 못했던 그가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다시금 새 작품 집필의 꿈과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게 된 기회가 생긴데에 대한 부푼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을 때 소위 방송국 놈들의 작당으로 전혀 다른 색으로 바뀌어간다. 



소설 속 지적인 귀족 탐정 레이디 해리엇 비어는 중년여성이었으나, 드라마에서는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자유연애주의자이자 히피 귀족인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계약서에 이미 서명 완료한 작가는 더이상 극에 개입할 수 없도록, 온갖 유혹의 말들로 구술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어진 갈등 속에서 방송사에 신뢰로 인해 지대한 영향을 가진 각본가 제이미가 온갖 밉상, 진상짓과 갑질로 인해 제작 과정중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제이미를 죽인 범인으로 주인공역 배우인 퍼넬로피의 남편 조시가 지목되면서 사건의 국면 전환을 이루는 듯 했으나, 자신을 억압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이 인물은 갑작스럽게 고약한 심보를 보이기 시작하고, 곧 두 번째 살인사건 피해자가 되고 만다.  해미시의 활약으로 돌고돌아 결국 범인은 밝혀지게 되지만, 알게 모르게 찝찝함이 남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시리즈의 공통적 특성으로 여전히 모두의 노여움과 미움을 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인물이 등장하며, 해미시와의 애정전선으로 엮이는 매력적인 여성도 있고, 해미시의 애정이 듬뿍 담긴 로흐두 마을의 풍경 묘사 또한 있었다. 다만 프리실라의 부재로 그와의 투닥거리는 케미를 볼 수 없는게 좀 아쉬웠다. 런던에 체류중인 프리실라는 이야기 진행에 있어 전혀 등장하지 않았고 잠깐 통화로만 그 존재감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이번 에피소드 내내 바람 맞게 된, 짠한 해미시에게 왜 프리실라 같은 인물이 짝으로 설정되어 같이 등장하였는지,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새삼 실감하였다. 이상하게 읽어나갈수록 프리실라가 없는 해미시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지 사람 특유의 고약하고 심술궂은 유머와 위트도 있었고, 허술하고 직관적인 수사방식과 떠보기식 취조도 있었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슬럼프에 빠진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로 해미시는 생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로 소문날 수밖에 없는 어설픈 이 남자의 미남자로 표현된 외관이나, 재치있는 성격도 빛을 바랜 느낌이 들었다. 프리실라 외에 다른 여성이 등장하여 그와 엮일 때도 느껴지는 소소한 긴장감과 재미가 있었는데 그게 모두 상실된 느낌이었다. 오히려 목사 부인으로 자신의 개성을 억압당하며 살아와야 했던 아일린이라는 인물이 아마추어 영화 제작 등에 도전하며 독립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의 꿈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데 위안과 발판이 되어준 그의 우정이 깨진게 조금 안타까울 정도로.



이렇듯 해미시가 애초에 야망이 없는 인물로 설정되었기에 가지는 매력도 있지만, 이제는 스트래스배인 본부로 파견을 나가든, 진급을 하든 성장을 하는 모습도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비슷한 설정으로 시리즈가 나열되려면 상황이 전환되는 시점도 필요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마을에서만 사건이 일어나기엔 공간적 한계가 있을 뿐더러 결국은 인근 마을이나 외지인의 방문으로만 사건이 발생되어야 하는데, 비슷한 플롯 나열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지지부진한 연애전선은 긴장감 없이 그저 널부러져 있다는 인상만 주기 때문이다. 



직관적이지만 사람의 내면을 날카롭게 꿰뚫어볼 줄 알았던 해미시가 이번엔 영 맥을 못 추는 느낌이 들었다. 경질당한 블레어 경감 대신 잠깐 등장한 러브레이스 경감에게 지적을 당하여 풀이 죽은 채로 눈치를 보는 모습에, 블레어 경감에게 심술궂게 대처하던 해미시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이쯤되면 해미시와 블레어 경감 사이 지독한 관계성이 되레 또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그가 가진 능력에 한에 상사로써 신뢰와 호의를 보이는, 멀쩡한 인물로 보이는 데이비엇 총경이 상사로 있을때 앞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경찰직에 대한 스스로의 적성과 자질을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 걸 보아 다음편 에피소드에서 해미시는 좀더 생기 있고, 더 심술궂은 태도로 프리실라와 투닥거리면서, 어슬렁 마을을 배회하며 사건을 해결해줄거라 믿는다. 



사견으로 최근 우연히 접한 예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의 기후와 풍경을 보게 되었다. 한번쯤 찾아 보기도 했어야 했는데, 이번엔 운명처럼 접한 그 영상물을 통해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기후와 가파르고 광활한 지대의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지금껏 읽어왔던 해미시 맥베스 순경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을 다시금 읽어보면 또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앞으로는 가상마을인 로흐두이지만 그 배경에 대한 묘사와 특유의 분위기를 좀더 잘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아직까진 읽을 수 있을 기회가 더 많을테니 역시 다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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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야말로 지구상의 쓰레기로 간주되는 인간들이 아니던가.   37쪽



처음에는 아일린도 그에게 맞섰지만, 남편은 갈수록 난폭하고 공격적으로 변해 갔다. 결국 그녀의 개성은 천천히 그의 개성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분노한 그가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또다시 직면하느니, 굴복하고 포기하는 게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220쪽



"남편들이야 늘 화가 나 있는걸요. 그게 그 사람들 천성이에요. 그리고 우리 여자들 천성은 남자들이 그러는 거에 콧방귀도 안 뀌는 거고요."

아일린의 뇌 속 어딘가에서 반란의 작은 불꽃이 번뜩였다. 아일사는 늘 "우리 여자들"이라고 이야기해서 외로운 목사 부인이 남편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자유연대의 일원이라고 느끼게 했다.   223쪽



해안가를 따라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저녁 빛에 고요한 로흐두가 이전과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에 일종의 경외감이 들었다. 어선들은 통통거리며 항구에서 협만 쪽으로 빠져나가고, 아이들은 조약돌이 깔린 해변에서 뛰어놀았으며, 산세는 맑은 공기 속에 솟아올라 있었고, 사람들은 늦게까지 여는 파텔 씨의 잡화점에 드나들었다.    241쪽



대체 해미시 맥베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352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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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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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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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 미국적인 것들이란?



아디치에의 네 번째 작품 『아메리카나』의 큰 틀은 단순하게 보자면 연애소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애소설의 얼굴을 한 인종차별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야기 속 화자는 이페멜루와 오빈제로 현재와 과거의 시점에서 교차되며 서사가 진행된다. 소울메이트 같은 두 사람이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사랑이 빠지고 미래를 함께 꿈꿨지만 상황에 따라 멀어졌다 다시 재회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곪아터진 문제가 곳곳에 발생하여 대학은 파업하여 문 닫는 날이 지속되었고, 이에 이페멜루는 주변의 도움과 권유에 따라 SAT 시험을 보고 75% 장학금을 받기로 한 것에 감사하며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 즉 아메리칸드림을 꾸기 시작한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이야기 같았으나, 미국에서의 삶과 문화를 동경하던 오빈제는 결국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돌아와 나이지리아의 거물이 되기에 이른다.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헌신적인 종교활동에 맹신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버지. 군사 정부의 거물로 장군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내의 정부가 된 우주 고모까지. 이페멜루의 주변 환경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등생이었지만 딱히 꿈이나 목표가 뚜렷하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력과 힘을 가진 남자에게 기생하는 우주 고모의 삶의 형태를 혐오하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일어서보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페멜루는 어떤 측면에서는 타인의 티끌과 같은 흠을 아주 크게 보고, 자신의 흠은 모른 체하는 그저 그런 약은 인물로 보일 수 있으나,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데는 단순히 외관에 대한 묘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지적에 수용하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나 생각, 고민 등을 해본 적이 있나보면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저 다른 이가 겪었던 일화들에게 대해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감하고 같이 감정이입한 약한 분노만 있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다양하겠지만, 어떨 땐 나의 삶의 형태나 관심사에 따른 것이기에 순수 한국인, 즉 한국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경험과 이해는 직접 경험한 것과 알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로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겪어본 적이 없으니 와 닿지도 않고 관심이 가지도 않는 것이다.



어떤 창작물에서든 무조건 주인공(화자)에 이입하여 보는 사람인 나 역시 이페멜루가 겪는 타국에서의 소외감, 차별과 고단함에 같이 분노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유색인종이 받는 차별보다 유색인종 여자가 겪는 차별까지 더해진 걸 보며 더 답답해졌다.



이페멜루가 십년 이상 미국에서의 삶을 유지하며 이룬 것들만 보더라도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회 보장 번호를 임의로 사용하여 생활했던 시절보다 잘생기고 낙천적인 부유한 백인 남자친구의 전화통화 하나로 해결되는 일이 더 큰 기회가 되었다. 반면 오빈제 역시 어머니의 도움으로 영국에서의 비자를 얻어 잠시 머무르게 되었지만 다른 이의 국민 보험 번호를 통해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아파트에서 룸메이트와의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등록금과 월세를 내는데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무수한 일자리 면접을 봤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마지막 벼랑 끝에서 할 수 없어 선택한 어느 테니스 코치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이란 이페멜루 스스로를 갉아먹고 상처 입히는 일이었고,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수치심에 안식처와도 같은 오빈제와의 연락도 끊게 되었다.



오빈제 역시 처음엔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고, 위장결혼을 하며 시민권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었고, 부유한 거물이 되기까지 주변의 투자와 도움이 있어야 했지만, 두 인물 모두 나이지리아에 돌아와 가지게 된 생활수준을 보면 차이가 아주 컸다. 물론 이페멜루가 자신이 살고 싶었던 곳에 집을 얻었고, 그동안 쌓은 이력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 잡지사 일자리도 구했으며, 이년치 집세를 미리 낼 수 있을 만큼 재정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야기 속 여자들은 왜 늘 남자의 재력을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페멜루가 자신의 친구를 염려하며 지적한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젊고 매력적인 여성은 대개 부유한 거물들의 애인일 것이라는 암시는 불쾌하고도 씁쓸한 현실이었다. 지적인 인물로 묘사된 대학 교수 블레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 위기에 처한 경비원을 위한 시위활동을 하는데에 이페멜루가 다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경비원은 그에게 성추행, 성희롱을 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페멜루가 인종에 대한 문제를 생활 깊숙이 뼈저리게 느끼고 이를 표현하게 되며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대해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후원금과 광고 요청, 인터뷰, 강연까지 활동의 저력을 넓혀가며 잠시 동안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간 강연에서 진지하게 인종에 대한 문제를 말할 때면 찾아오는 침묵은 그런 인종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포지션, 즉 포즈만을 원했던 위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실망스럽지만 겪어보지 않는 문제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열성적으로 외칠 만큼 트인 사람이란 얼마나 될 것인가.



흑인 대통령의 당선에 대한 열망, 설렘, 기대 등에 대한 언급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벅찬 일이었을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저 조용히 차분히 읽어나갈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서평에 잘 알지도 못한 정치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는 친일파인데다, 한국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곤 전혀 없이, 암울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허울만 좋은,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된 인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데 여기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미국계 아프리카인, 아프리카계 비미국인 등 또다시 나눠 각자의 입장에서 은연중에 행해지는 차별에 대해 뭔지 모를 회의감이 들었다. ASA(아프리카인 학생 협회)과 BSU(흑인 학생회). 미국에서 태어난 사촌 디케는 어느 모임에 들 수 있는 것일까 자문하는 이페멜루를 보며 태어난 배경에서도 계급이 나눠지는 것에 대한 씁쓸함 때문이었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서울공화국이 아닐까?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은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더 살기 힘들 테니 말이다. 형이상학적인 집값에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스펙이라는 말에 너무 공감이 간다.



다시 돌아와서 이들은 결국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딱 맞는 반쪽이기에 재회가 반가웠지만, 오빈제는 이미 번듯하게 이룬 가정이 있었다. 물론 자신이 휘청거릴 시기, 갑작스럽게 얻게 된 부가 부담스럽고 낯설게 느껴져 이를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그때 만나게 된 코시였을지라도. 그들에겐 사랑스러운 딸 부치가 있었다.


서로가 애틋하고 강렬히 원하는 관계성이라도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관계이므로 끝은 언제나 엇갈리고 깨지게 될 것이라는 예감과 다르게 서로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페멜루의 타국에서의 생활로 참담하고 혼란스럽고 외롭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펼쳐진 1권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스스로에 잘 알게 된 때의 두 사람의 생활을 다룬 2권이 더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과한 이입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다.



인용된 블로그 「인종 단상 혹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비미국인 흑인의 별난 생각」 글은 실제로 작가가 운영했던 블로그 글로 읽어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차별에 대한 말과 행동들의 예시가 나와 있다. 그 부분만 읽어봐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생활 가까이 느끼는 인종차별에 대한 일화만 보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차별’ 이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 성별 상관없이 모두가 사람으로 태어나 삶을 영위하는데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신분이라는 형태만 사라졌을 뿐 계급사회의 성격은 여전하다. 그게 아니라면 갑과 을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재산의 급에 따라 생활수준은 왜 차이가 나는 것인가. 단순화하여 생각해보면 그러하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사회’ 라고 칭하는 요즘엔 ‘미래’ 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면 모두에게 똑같은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와 사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함부로 대하고 차별할 권리란 없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을 잘못 악용하여 선동질하는 무리에 휩쓸리며 부유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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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떻게 자기가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을 그리워하는 게 가능할까? 블레인은 그녀가 줄 수 없는 것을 필요로 했고, 그녀는 그가 줄 수 없는 것을 필요로 했으며 일어날 수도 있었던 미래의 상실을 슬퍼했다. 19쪽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를. 43쪽



오빈제는 나중에 알게 된다. 거물들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할 뿐이라는 것을. 47쪽



약간 부유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 앞에서, 부유한 자들은 굉장히 부유한 자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돈을 갖는다는 것은 돈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됐다. 49쪽



그 밖에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곤 바싹 마른 취업난의 황무지로 굴러 들어가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희망에 굶주려 있었고, 자동차들은 땀 흘리며 기나긴 주유소 줄에 며칠씩 서 있어야 했고, 연금 수급자들은 연금을 지급하라는 늘어진 현수막을 들고 있었고, 대학 교수들은 파업 재개를 알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82-83쪽



그녀는 이미 신붓감 심사를 위한 의례를 따르고 있었다. 세상이 아니라 그에게 순종을 약속하는 미소를 머금고, 그의 손에서 포크가 떨어졌을 때 몸을 던져 받아 냈으며, 그에게 맥주를 더 따라 주었다. 197쪽



왜냐하면 이제 그들에게 고국은 이곳도 저곳도 아닌 흐릿한 추상적 공간이 되었고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쪽



그들은 서로에게‘곧’이란 말을 자주 했는데‘곧’은 그들의 계획에 뭔가 현실적인 무게를 실어 주었다. 201쪽



세상은 거즈에 싸여 있었다. 그녀는 사물의 형태를 볼 수 있었지만 또렷이는, 절대 또렷이는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오빈제에게 자신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지만 모르는 것들, 자신의 영역으로 흡수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한 세세한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222쪽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움에서 비롯된 조롱, 공허한 장소가 다시 충만해지는 것을 보고 싶은 비통한 열망에서 비롯된 조롱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이페멜루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236쪽



이페멜루는 훗날 알게 될 것이다. 킴벌리의 눈에 빈민들은 죄가 없다는 것을. 가난은 빛나는 것이었다. 가난이 빈민들을 성스럽게 만들어 줬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을 사악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성인은 외국인 빈민들이었다. 254쪽



이페멜루는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들의 자선심에는 그녀가 동조할 수도 없고,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치스러움이 있었다.‘자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흥청망청 자선을 베푸는 행동은 아마 자신에게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듯 했다. 286쪽



그녀는 고마운 가운데서도 약간 분했다. 커트가 전화 몇 통으로 세상을 재배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뭔가를 쓱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341쪽



<2>



고된 외국 생활로 인해 신뢰할 수 없고 심지어는 험악한 사람으로 변한 친구나 친척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질기디질긴 희망과 자신만은 예외라고 믿고 싶은 절박함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만, 자신처럼 의리 있는 친구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만 일어났다고 믿게 만든 것일까? 43쪽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에 사로잡히는지, 무엇에 수치심을 느끼는지 무엇에 끌리는지를 알고 싶었지만 소설 몇 편을 읽고 나서 실망했다. 중요한 것, 심각한 것, 급박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아이러니한 무의미함으로 용해되어 사라졌다. 57쪽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무서운 깨달음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견고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손대는 것마다 전부 무(無)로 변한다는 깨달음이었다. 105쪽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단단한 돌에서 잘 익은 토마토가 튀어나올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그녀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와 같은 어지러운 감각을 느꼈다. 그녀는 새롭게 태어난 자신 속으로, 낯설면서도 낯익은 존재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257쪽






(이 리뷰는 출판사 민음사의 '아디치에 소설읽기'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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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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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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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출간된 최영미 시인의 시집이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거기엔 참다 못해 터뜨린 고백에 되돌아온 소송과 고소장을 받아들게 된 시인의 생활 속에 파고든 싸움의 흔적에 지쳤던, 시를 놓쳤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치매를 앓고 있는 병든 어머니의 간병의 시간들이 새겨져 있었으며, 뜨겁고 차가웠던 연애, 사랑의 말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내가 애정하는 모든 시집이 그러했지만 일상속 언어가 특히 다수 자리하고 있으니, 더 마음에 파동을 일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최영미 시인이 「괴물」 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단내 암암리에 감춰졌던 추악한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보이게 했을 때, 미처 잘 알지 못하였다. 부끄럽지만 한 번에 그를 잘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 시인은 누구였던가 되짚어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떠올리게 되며, 순간의 감탄사가 나왔던 것 같다. 이만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 이름의 무게를 심상치 않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두의 존경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원로작가는 매년 거론되는 그 대단한 상에 대한 수상여부로 호명되는 사람이었으므로.


용기내어 고백함에 깊이 경이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고, 문단내 실태에 대해 내심 실망도 하였지만. 글쎄, 존경하는 시인이자 한창 문학을 공부할 때 나의 교수님으로부터 문단에서 '여류 시인'으로 불리며, 어떠한 처우를 받아왔는지 한 번쯤 언급해주신 덕분에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래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실로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지금쯤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하고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모성으로 대체되었던 여성의 자리가 주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외칠 수 있게 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자신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였고, 확실히 그 내공은 가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수식어가 따르지 않아도, 행간의 폭이 좁은 듯 보여도 깊게 느껴지고, 에둘러 가지 않아도 탄성과 생기가 있다. 근데 왜 이렇게 아프게만 느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의 말처럼, 삶은 늘 그렇듯 '계산이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고(「밥을 지으며」),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내가 먼저 시들지 않'으려고 하지만(「꽃들이 먼저 알아」), 사는게 피곤해서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시가 자꾸만 도망간다(「시작메모 中」).


때론 '지겨운 이 땅을 떠나지 못했고(「오래된」),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제발 그냥 내버려'(「내버려둬」)주길 바랬으나, 세상은 오지랖 넓게도 관여하곤 했다. 이에 '엉망진창인 세상을 정리할 순 없지만/쉼표와 마침표의 질서를 사랑하고'(「수건을 접으며」) 용기내어 내었던 얕은 목소리가 점차 한데 모여 큰 목소리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

여성의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를 써야겠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야, 이 삐뚤어진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머뭇거리던 목소리들이 밖으로 나와

하나의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로 이어지고

행성이 되어 벽을 무너뜨린다



두려움을 넘어

내가 우리가 되는 기적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서로의 가슴이 별이 되리라




48-50쪽, 「여성의 이름으로」중에서




시인은 또 소송에 치여,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며 다른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생활 속에서도 '내가 아는 똥은 더럽지 않다'(「간병일기」)며, 어머니의 배변활동에 잠시 기뻐할 수 있는게 젊었을 적에는 모르던 기쁨이라고도 말한다.


도망가버린 시를 잡지 못하여 아쉬웠지만, 그의 시집에는 그의 언어로만 가득하다. 바위로 깨뜨린 계란, 세상속에서도 숱하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굳건히 두 발을 내딛고 서있는 모습이 위태롭지만 다시 일어서 굳건히 외치리란 믿음이 생긴다. 얽히고설킨 관계에 있어 주저함을 보인 것에 어찌할 수 없었지만 씁쓸한 현실을 실감한다. 시집을 내고 싶어 출판사에 연락해보았지만 조심스러운 태도만 남겨졌다. 결국 스스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시집을 발간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시인 앞에 놓여진 것이다. 이에 시인의 피 대신 사업자의 피로 채우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 하지만 고생스러움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씩씩하고, 힘차게 나아가는 태도가 더욱 좋았다. 


모든 걸 놓아버릴 수도 있고, 놓고 싶을 때도 있었을텐데, 끝까지 양손 모두 간절히 붙잡고 여기까지 와 이 시집을 펴내준 것에 대해. 


그리하여 이 시집에 실린 여러 시들에 동요하였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무래도 그 당시 많은 이들의 만류에 미처 싣지 못했던 시인의 등단소감이다. 거침없고 솔직하며 활력 넘치지만 씁쓸한 뒷맛을 기록한. 이 굵직한, 울림있는 소감이 그 어떤 수려한 문장과 다짐보다 더 잘 와닿았다. 


또한, '인생은 낙원이야/삶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낙원'(「낙원」)이라 이를지니,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살아갈 날들 속에 또 어떤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될 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계속 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고생을 더 해야겠다던 시인의 다짐이 무색하지 않게, 그만의 힘이 가득한 시를 앞으로도 만나보게 될 것이다.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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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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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라색 히비스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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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순적인 동물이라고들 한다. 바깥 사회에서, 혹은 주변의 이웃들에게는 물론 어디서든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자 사회 발전에 헌신하며 베풀 줄 아는, 독재 치하의 환경에서도 올곧은 신념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지 부러워하며 경외할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가정 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무자비한 독재자와 같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화자는 열여섯 살 소녀 캄빌리이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상당한 재력을 가진 인물이며, 진보 성향의 언론사 《스탠더드》를 통해 민중의 목소리를 전하는 메신저이자, 자신이 가진 줄 나눌 줄 아는 사람이자,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독실한 신앙심으로 종교계에서도 믿음으로 헌신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소녀가 누리는 여유롭고 안락한 환경에 감사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캄빌리 역시 아버지의 신념과 믿음 그대로 물려받은 형태로 강요받은 규칙들에 대해 감히 저항하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의 신뢰와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가톨릭 교리와 행동양식에는 독재와 폭력으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뜨거운 차 한 잔을 가족 모두 돌아가며 한 입씩 마시기를 하는 것에서도 매번 혀가 데여도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벨트 버클을 풀어 채찍처럼 휘두르고, 뜨거운 물을 발등에 붓고, 손가락을 뒤틀어버리며, 두꺼운 미사 경본을 집에 던지는 폭력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면 당연한 수순처럼 벨트를 풀고 가차 없이 휘두르면서, 이내 멈추고 방금의 행동을 참회하듯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자식과 아내를 끌어안는 모순된 행동에 합리화가 고작 상대에게 그 잘못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한대도 이 소녀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지속되었다. 



죄악이 아님에도 죄악이라 불리는 것들에는 의지가 깃든 것들이었다.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캄빌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은 좁고 단단했으며, 어떠한 틈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은수카에 있는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세계 속에서 처음으로 자산의 의지로 '저항'을 하게 된 오빠 자자의 행동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단단하게 둘러싸여져 있던 그들만의 세계 속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게 된다. 일등이 아니면 모두 실패한 것이고, 규칙에 어긋난 행동은 죄악에 가까우니 벌을 받아야 했으며, 이는 임신한 아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연약한 어머니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자신과 자식을 지키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어느새 길들여져 있었다. 폭력으로 지배됐던 사람들에겐 이를 벗어날 용기와 생각조차 가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기에 행한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폭력은 그 어떤 이유에서건 용인될 수 없는 것이고, 행해져선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도 목표도 오직 아버지께 순종하며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캄빌리는 웃는 법을 모르는 소녀이다. 정해진 일과표에 따르지 않으면 벌이 있기에 친구들과 같이 하교할 수 없었고, 기사 케빈이 데리러 오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가기 위해 매번 뜀박질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사업체인 음료 공장의 신메뉴가 나올 때면 맛을 전혀 알 수 없어도 맛있는 척 연기를 해야 했으며, 어떤 상황이든 신의 가호를 청하는 말을 해야만 했다. 이를 먼저 말하지 못한 것을, 그리하여 아버지께 위안과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 데에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아버지가 전통을 중요시하시는 자신의 아버지(파파은누쿠)를 이교도로 칭하며 인정하지 않고 마치 병균을 대하듯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행했던 캄빌리는 공부 이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도 없었지만, 이페오마 고모와 그의 자식들인 아마카, 오비오리, 치마와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배워나가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소녀가 받지 않아도 될 상처에 울며 소리치게 될 줄도, 의견을 말하게 될 줄도 알게 되었으며,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할 줄도 알게 되었다. 파파은누쿠, 할아버지의 믿음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믿음과 다르다 하여 결코 이교도라 괄시하는 것이 옳은 게 아니라는 것도.



심한 매질로 쓰러진 그녀 앞에 울고 있는 어머니를 힘껏 밀어 넘어뜨리고 싶다고 생각한 캄빌리에게서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대개 폭력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식들의 경우 가해자인 아버지보다 자신을 감싸주고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에게 더 원망을 품는다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무자비한 폭력과 남자와 여자로 신분이 나뉜 것처럼, 재력이 있는 남자에게는 아내가 하나일 필요 없다는 낡은 세속에 따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임신을 생각하게 된 사람이라면. 과연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때론 그렇게 내기 어려운 용기가 더 무서운 행동을 실천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에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만 했다. 편안한 생활과 누릴 수 있는 모든 환경이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던 이 가족들이, 또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캄빌리에게 거부감이 들었다. 한구석엔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부모님께 순종하였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공부하였으며, 자신의 선택과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대해 떠올리게 되어 불편함이 일었다. 여기에 더한 폭력이라니. 하혈하는 어머니를 본 후로,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가 붉은 피로 보였던 캄빌리, 그렇게 차곡차곡 쌓였을 상처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 존재하여 그에게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이내 변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담았던 사람에 대해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고, 절망했지만 심신에 자리 잡은 상처에 새살이 돋을 때쯤 캄빌리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주 웃게 되었고, 목소리를 낼 줄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극적인 결말 앞에서 결코 해피엔딩을 말할 순 없지만, 그 안에서도 변화는 그만큼 값진 것이다.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버지로부터 아마디 신부로 옮겨간 것뿐이라도. 


애초에 자아가 형성되었어야 할 어린 시절에 자신을 보호받지 못하고 억압된 환경에서만 자라났기에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주체성을 찾기 위해 더 수많은 노력을 하려고 해도 몸에 박힌 습관처럼 잘 깨부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돌아보면 너무나도 놀랍다. 수적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을 터인데. 한 사람이 가진 권력과 힘이 그렇게 크게 작용될 수 있는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힘 있는 인물이 권력을 잡았다. 남자와 여자 굳이 나누라고 하면 신체적인 부분에서는 당연히 좀 더 우위에 서게 되는 남자가 가졌을 힘과 권력을. 오늘날 젠더에 대한 질문과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아디치에의 강연을 통해 보았듯 그 역시 과거에는 공격할 거리로 페미니스트라며 지칭되었지만 그 말의 함의를 살펴보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종종 말해왔던 '불편'에 대해 누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당연히 걱정하며 염려하며 살아가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떨쳐낼 수 있도록, 그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싶다고 외치고 말하는 것뿐이다. 아디치에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 자신을 위해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신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단, 자신이 입고 싶어 예쁜 옷을 찾고 꾸민다는 선언에 대해. 어디에 더 비중 둘 것 없이, 똑같은 위치에서 동등한 기회를 가졌다면 더 많은 걸 이루고 행동하였을 많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외치는 것이다. 



어느 단편적인 이야기 하나로 가지게 되는 편견이 가지는 무게. 그리고 이를 반복적으로 접하고 강조하게 되면 그건 사실이 아니어도 진실이 되어버린다는 것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됐다. 자신이 가졌던 생각과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반성하고 깨달은 사실을 되새겼던 아디치에의 태도가 대단했다. 재치 있는 유머와 또렷한 목소리로 전하는 그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이 듣고 알아갔으면, 그리고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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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수카에서 시작됐다. 이페오마 고모의 은수카 집 베란다 앞에 있는 작은 정원이 침묵을 밀어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조율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27쪽 



쿠데타는 쿠데타를 낳아. 아버지가 유혈이 낭자했던 1960년대 쿠데타 얘기를 하며 말했다. 37쪽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혁신된 민주주의지. 혁신된 민주주의. 이 말은, 그 말을 하는 아버지의 말투 때문에 중요하게 들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원래 아버지가 하는 말은 대부분 중요하게 들렸다. 38쪽 




두 눈이 텅 빈 것이, 마치 자기 인생의 파편이 든 더럽고 찢어진 캔버스 가방을 질질 끌며 시내 길가의 쓰레기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미친 사람들의 눈 같았다. 49쪽



아버지는 오빠나 내가 성 다대오를 향한 열세 번째 간구에서 졸기 시작한다고 느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다.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용서받아야 하는지를. 51쪽



하지만 나는 2등을 했다. 실패로 더럽혀졌다. 54쪽



"누니에 음, 때로는 결혼이 끝나면서 인생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어요." 99쪽



고모는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웃었다. 그 가족 전부가 그랬다. 막내 치마까지도. 111쪽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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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 앞에서 빛나는 아디치에의 존재감에 대하여-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1600869527




(이 리뷰는 출판사 민음사의 '아디치에 소설읽기'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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