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다 -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온통 시로 얼룩졌다
진은영 지음, 손엔 사진 / 예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일상의 시시함, 詩詩한 일상으로,




시시詩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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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에서 2016년에 걸쳐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아침을 여는 시' 가운데 92편을 골라 엮은 책입니다. 시와 더불어 시인의 자신의 독법으로 간단히 덧붙인 글이 바로 옆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총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는데, 매 순간순간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늘 작가의 사유방식과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궁금증이 입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자들이고, 이는 이 세계에서 단독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터득한 노하우를 얻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됩니다.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성장을 지나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생활하는 그 모든 것들은 일종의 상식과 규범 속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받아들이며 지켜가게 살게 됩니다. 그속에서 편견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느끼는 것들이 너무 획일화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의문을 품어야 할 순간들도 그러려니 하며 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들도 늘 보는 좁은 시야 속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질 못하고 막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갇혀 있는 듯한 판단 속에서 말이죠.


때문에 가끔 막혀 있는 것들에 틈을 만들어줄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감각이 많이 무뎌졌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떠한 순간이 견디기 힘들 때 회피해버리는 유형입니다. 충동적이며 해야 할 일을 종종 미루고 힘들어하곤 하죠. 아프지 않고 상처받기 싫어서 자꾸만 쌓았던 방어기제들이 뭉쳐 벽을 이루고 그 견고함이 어느새 자리잡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저는 시인들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어떤 시인은 물고기의 눈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2차원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 눈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대로 보고 쓴 것들을 통해 나름의 자극을 얻기를 바라고 더불어 무뎌진 감각이 깨어나주길 바라봅니다. 저 또한 저만의 눈으로 보고, 또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


책 속에 담긴 시들은 한국시인들의 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시인들의 시도 같이 실려 있습니다.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낯선 이름들이 보이니 또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짧은 생을 마칠 때 시를 남겨두고 떠난 젊은 시인의 비명과도 같은 시도 있고, 한없이 낙관적인 시선이 보이는 시도 있습니다. 낯선 이름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시인은 기유빅이라는 시인이네요. 아픈 사정을 가지고 자라와서일까요. 왠지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인이 각 시들에 대해 덧붙인 글은 시를 분석하고 그 의미망을 찾는 글이 아닙니다. 어쩌면 사견에 가까운 글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와 더불어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도 있고, 그 시인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때론 철학을 공부한 시인이라서 그런지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자주 말이죠.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요. 시인은 자신의 독법이 아닌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독법이 있길 바랍니다. 시인이 읽어내었다고 해서 정답이 아닌 것처럼. 시는 각자 읽고 느끼는 방식대로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여백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잉여의 부분은 읽는 이가 채워가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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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2장 나만의 인생 이 부분입니다. 1장의 이별의 순간에서 재밌는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별이라고 하면 떠올릴 주된 테마인 사랑말고도 자신과의 이별, 하루가 넘어감으로써의 순간의 이별, 끝난 우정에 대한 이별...다양한 이별의 순간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얘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면 이상하게 이별이 떠올랐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단지 같은 반이고 같은 과였기 때문에 친구라는 명목으로 묶어지는 관계들에서 어긋난 순간이 올 때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믿음이 깨진 듯하게 느껴지고 배신당한 기분마저 듭니다. 실제로 내가 선택하여 맺어진 관계도, 그러한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드문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알아왔기에 우리 우정은 깊고 소중하다 착각했었죠. 그런 우정이 진짜라고 믿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실상을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알고 지낸 시간이 짧아도 누구보다 날 잘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는 앞으로도 소중한 우정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물론 이건 저의 성향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돌고 돌았지만, 제가 주목했던 '나만의 인생'이란 파트에는 유독 한국 시인들의 시가 많이 배치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단순히 성공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려해서일까요. 물론 이것도 행복해지기 위해서지만요. 살아가는데 의문이 드는 순간이 참 많은데 이것마저 묵살되는 현실이 너무 서글퍼집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어느 순간 도무지 일어설 힘이 없을 만큼 사는게 지치고 고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학이 무슨 소용이냐는 사람들도 많고 사치품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당장의 아픔을 해소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나를 들여볼 때, 나에 대해 아직도 너무 궁금한 것들이 많을 때 맨처음 말했듯이 다른 눈이 필요할 때, 순간의 숨통이 트이길 바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핸디북처럼 작은 책 속에 다양한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 어느 순간이고 펼쳐볼 수도 있지요. 시인의 취향으로 선정된 시들이겠지만 그것 또한 고심하여 고르고 골라 실린 시들이겠지요. 순간을 담은 사진들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앞서 읽고 밑줄 그었던 부분이 다음 페이지 한 구절 인용되어 사진과 함께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보는 눈이 같아서였을까요.


'감성'에 어느새 '오글거린다'는 말이 덧붙여진 요즘이지요. 말 한마디, 어조 하나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감성을 사치라 여기지 말고, 오글거리다는 평으로 밟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표현하고 해소하기도 하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 또한 문득 들었습니다....






( 이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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