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윌리엄 맥스웰 지음, 최용준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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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허공에서" 찾아낸 것은, 가족이란 그 무엇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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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늘 뜻밖에 찾아오는 것이고, 위로로써 건네지는 말들이 때론 무자비한 폭력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란 관계 자체가 참 오묘하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는데요. 

분명 매일같이 생활하는, 나와 피를 나눈 관계의 사람들인데도 어느 순간 너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는 거죠. 가족의 관계성에 면밀히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가끔은 서로 너무 안맞아 지치다가도, 어느 순간 그 곁에서 안식을 얻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족'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무언가를 내포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윌리엄 맥스웰의 장편소설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에서는 각 세 사람의 관점에서 어머니이자, 아내인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이 여인은 죽음의 문턱까지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죠. 마치 남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려는 것처럼 말이죠.



소설은 버니와 로버트 제임스 시점으로 전개가 됩니다. 같은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간에서의 심리를 단순히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속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는 이가 달라질 뿐입니다. 즉,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자는 척 하는 아이 버니, 유행성 독감에 걸린 버니 곁에 가지 못하도록 어머니를 지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다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로버트, 첫 만남에서부터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이끌려 그녀의 방식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부자 관계에 너무 서툴기만 한, 아직도 옆자리의 누군가를 느끼는 제임스. 휘청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 인물군상들. 아이린, 소피, 카를 등 주변 인물 또한 허투루 지나치지 않습니다. 

 

 각 인물들이 하는 행동이나 가치관 등에 관한 묘사는 모두 층위가 다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그런지 그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라서가 아니라,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장인의 기술처럼 견고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그들의 이야기가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의 삶과 같은, 보통의 가족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다만 그려지는 인물들이 조금더 다른 특성을 가졌을 뿐입니다. 세상에 대해 좀더 예민하다고나 할까요. 번역 특유의 문체가 거슬리거나 하는 문제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그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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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맥스웰은 앨리스 먼로가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부록으로 실린 그녀의 감탄으로 점철된 글도 함께 읽어보면 그 매력을 한층 더 깊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맥스웰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훑어가면서 언급하는 부분이 꽤 정성스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말미, 엘리자베스의 장례식에서 제임스가 로버트에게 하는 말은 생의 의지를 다지는 선언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든 인물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별이 있고, 상실에 고통스럽고 결코 잊을 수 없을지라도, 남은 자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일상의 습관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누군가 떠난 후에도 계속 그를 호명하게 되는데요. 이를테면 누군가가 썼던 방이면 그 사람을 잃고 나서도 한동안, 새로 다른 이가 살기 전까진 거기는 그 사람의 방으로 불리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의 가족도 그러했겠죠. 때문에, 조금씩 예감했고, 서서히 떠나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방의 모든 선과 면은 어머니를 향해 굽어졌기에 깔개 무늬를 볼 때도 버니는 자연스레 어머니의 신발코와 관계 지어 보았다. 어떤 면에서 버니는 어머니의 존재에 나뭇잎이나 꽃보다 훨씬 더 의존했다. 버니의 물건들이 그 물건인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기사와 십자군으로, 혹은 비행기로, 혹은 행렬하는 코끼리로 변하기도 하는 것은 어머니의 존재 덕분이었다. /23쪽

이윽고 어머니가 말했다. "여자 뒤통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전날 로버트를 아무도 없는 데로 데려가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쓰던 예쁜 유리잔이나 꽃병은 모두 깨뜨리겠다고 약속해달라고 했어. 내가 죽은 뒤에 다른 여자가 내 물건을 쓰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
버니는 눈을 번쩍 떴다. 다음 순간, 자신이 자는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다시 눈을 감았다가 도로 떴다. 이번엔 좀 더 조심스럽게 떴다. 창들이 흔들거렸다. 버니는 녹색 옥수수밭에 있었다. /65쪽

……로버트의 잘린 다리 밑동이 아파오기 시작하자 가족은 전문의에게 장거리 전화를 건다. 전문의가 와 깁스 길이를 재고 나서 밑동이 아픈 증상은 정상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리라. 무릎이 생기고 있으니 아픈 게 당연한다고, 한 달이면 새 무릎이 생길 거라고 할 것이다.
(……)
이 대목이랑 저 대목은 좀 더 다듬어야겠어. 로버트가 생각했다. 마취에서 깨어나 손으로 이불 위를 더듬어보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정도면 됐다. 최소한 짬을 내 다시 생각해볼 때까지는. /131-132쪽

어머니는 반대쪽 둑에서 로버트를 향해 괜스레 웃어 보였다. 로버트 눈에는 어머니가 하늘과 시내, 그리고 이따금 여남은 장식 한꺼번에 떨어져 둑 아래로 들어갔다가 다시 떠오르는 노란 나뭇잎을 향해서도 웃는 듯이 보였다. /183쪽

제임스는 생각했다. 어떤 가족이든 다 이런 식이야. 영원히 잊히는 건 절대 없지.
/233쪽

제임스는 살아 있었고, 그게 문제였다. 자기 삶에 갇혀 숨 쉬고 있었고 거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을 알았고, 조랑말 마차가 타고 제임스를 따라왔다. 제임스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따라왔다.
제임스는 기뻤다. 엄청나게 흥분했다. 손과 무릎이 떨렸다. 그는 좁은 골목길을 달렸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계속 달렸다. 호리호리한 말과 등불 달린 마차가 앞길을 막아설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등불은 그 아래의 남자 얼굴을 비췄다. 끈기 있어 보이는, 뭔가에 열중한 야윈 얼굴이었다. /248-249쪽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는 젊은 가족의 삶, 그리고 그 가족의 삶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재는 맥스웰의 소설들에 계속해 등장하기에 자전적인 내용으로 보이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완전히 그의 과거와 같지는 않으리라. 각 이야기에는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주변에 새로운 사건이 있다거나 중심부 근처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거나 새로운 각도, 발견들이 있다.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 우리가 그러하듯 자라고 변화하지만 절대 사라져버리지 않는 이야기들과 똑같이 말이다. /부록_맥스웰-앨리스 먼로,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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