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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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본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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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 미스터리 중에서도 애정하는 해미시 맥베스 순경시리즈가 근 일년만에 신작이 출간됐다. 트위터에서 접한 현대문학 편집자님의 데스크 사진에서 『각본가의 죽음』 이 꽂혀 있는 걸 보며 설레어 검색해보기도 했다. 코지 미스터리는 정통 추리물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사건의 크기와 무게 등과는 상관없이 흥미로운 인물들과 관계성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현실이 지루하고 피로할 때는 이런 작품들 속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그저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와 위안을 주기에 찾게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 플롯 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인물간 애정전선이 아니겠는가.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같이 수다떨듯 읽어나갈 수 있으니, 이만큼 재밌는 구도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에피소드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솔직히 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일단은 반갑다. 다음 편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더 기다려야 하지만, 다음이 있음을 감사하기만 하다.

                                                                                                                                                                                                                                           

이번 『각본가의 죽음』 은 스코틀랜드 고지에서 은퇴 생활을 하는 70대 탐정소설 작가 퍼트리샤 마틴브로이드에게 그의 작품인 『만조의 사건』을 드라마로 제작하자는 제안이 들어오며 시작된다. 그러나 작품을 더 쓰지 못했던 그가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다시금 새 작품 집필의 꿈과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게 된 기회가 생긴데에 대한 부푼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을 때 소위 방송국 놈들의 작당으로 전혀 다른 색으로 바뀌어간다. 



소설 속 지적인 귀족 탐정 레이디 해리엇 비어는 중년여성이었으나, 드라마에서는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자유연애주의자이자 히피 귀족인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계약서에 이미 서명 완료한 작가는 더이상 극에 개입할 수 없도록, 온갖 유혹의 말들로 구술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어진 갈등 속에서 방송사에 신뢰로 인해 지대한 영향을 가진 각본가 제이미가 온갖 밉상, 진상짓과 갑질로 인해 제작 과정중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제이미를 죽인 범인으로 주인공역 배우인 퍼넬로피의 남편 조시가 지목되면서 사건의 국면 전환을 이루는 듯 했으나, 자신을 억압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이 인물은 갑작스럽게 고약한 심보를 보이기 시작하고, 곧 두 번째 살인사건 피해자가 되고 만다.  해미시의 활약으로 돌고돌아 결국 범인은 밝혀지게 되지만, 알게 모르게 찝찝함이 남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시리즈의 공통적 특성으로 여전히 모두의 노여움과 미움을 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인물이 등장하며, 해미시와의 애정전선으로 엮이는 매력적인 여성도 있고, 해미시의 애정이 듬뿍 담긴 로흐두 마을의 풍경 묘사 또한 있었다. 다만 프리실라의 부재로 그와의 투닥거리는 케미를 볼 수 없는게 좀 아쉬웠다. 런던에 체류중인 프리실라는 이야기 진행에 있어 전혀 등장하지 않았고 잠깐 통화로만 그 존재감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이번 에피소드 내내 바람 맞게 된, 짠한 해미시에게 왜 프리실라 같은 인물이 짝으로 설정되어 같이 등장하였는지,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새삼 실감하였다. 이상하게 읽어나갈수록 프리실라가 없는 해미시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지 사람 특유의 고약하고 심술궂은 유머와 위트도 있었고, 허술하고 직관적인 수사방식과 떠보기식 취조도 있었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슬럼프에 빠진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로 해미시는 생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로 소문날 수밖에 없는 어설픈 이 남자의 미남자로 표현된 외관이나, 재치있는 성격도 빛을 바랜 느낌이 들었다. 프리실라 외에 다른 여성이 등장하여 그와 엮일 때도 느껴지는 소소한 긴장감과 재미가 있었는데 그게 모두 상실된 느낌이었다. 오히려 목사 부인으로 자신의 개성을 억압당하며 살아와야 했던 아일린이라는 인물이 아마추어 영화 제작 등에 도전하며 독립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의 꿈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데 위안과 발판이 되어준 그의 우정이 깨진게 조금 안타까울 정도로.



이렇듯 해미시가 애초에 야망이 없는 인물로 설정되었기에 가지는 매력도 있지만, 이제는 스트래스배인 본부로 파견을 나가든, 진급을 하든 성장을 하는 모습도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비슷한 설정으로 시리즈가 나열되려면 상황이 전환되는 시점도 필요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마을에서만 사건이 일어나기엔 공간적 한계가 있을 뿐더러 결국은 인근 마을이나 외지인의 방문으로만 사건이 발생되어야 하는데, 비슷한 플롯 나열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지지부진한 연애전선은 긴장감 없이 그저 널부러져 있다는 인상만 주기 때문이다. 



직관적이지만 사람의 내면을 날카롭게 꿰뚫어볼 줄 알았던 해미시가 이번엔 영 맥을 못 추는 느낌이 들었다. 경질당한 블레어 경감 대신 잠깐 등장한 러브레이스 경감에게 지적을 당하여 풀이 죽은 채로 눈치를 보는 모습에, 블레어 경감에게 심술궂게 대처하던 해미시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이쯤되면 해미시와 블레어 경감 사이 지독한 관계성이 되레 또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그가 가진 능력에 한에 상사로써 신뢰와 호의를 보이는, 멀쩡한 인물로 보이는 데이비엇 총경이 상사로 있을때 앞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경찰직에 대한 스스로의 적성과 자질을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 걸 보아 다음편 에피소드에서 해미시는 좀더 생기 있고, 더 심술궂은 태도로 프리실라와 투닥거리면서, 어슬렁 마을을 배회하며 사건을 해결해줄거라 믿는다. 



사견으로 최근 우연히 접한 예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의 기후와 풍경을 보게 되었다. 한번쯤 찾아 보기도 했어야 했는데, 이번엔 운명처럼 접한 그 영상물을 통해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기후와 가파르고 광활한 지대의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지금껏 읽어왔던 해미시 맥베스 순경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을 다시금 읽어보면 또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앞으로는 가상마을인 로흐두이지만 그 배경에 대한 묘사와 특유의 분위기를 좀더 잘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아직까진 읽을 수 있을 기회가 더 많을테니 역시 다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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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야말로 지구상의 쓰레기로 간주되는 인간들이 아니던가.   37쪽



처음에는 아일린도 그에게 맞섰지만, 남편은 갈수록 난폭하고 공격적으로 변해 갔다. 결국 그녀의 개성은 천천히 그의 개성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분노한 그가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또다시 직면하느니, 굴복하고 포기하는 게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220쪽



"남편들이야 늘 화가 나 있는걸요. 그게 그 사람들 천성이에요. 그리고 우리 여자들 천성은 남자들이 그러는 거에 콧방귀도 안 뀌는 거고요."

아일린의 뇌 속 어딘가에서 반란의 작은 불꽃이 번뜩였다. 아일사는 늘 "우리 여자들"이라고 이야기해서 외로운 목사 부인이 남편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자유연대의 일원이라고 느끼게 했다.   223쪽



해안가를 따라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저녁 빛에 고요한 로흐두가 이전과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에 일종의 경외감이 들었다. 어선들은 통통거리며 항구에서 협만 쪽으로 빠져나가고, 아이들은 조약돌이 깔린 해변에서 뛰어놀았으며, 산세는 맑은 공기 속에 솟아올라 있었고, 사람들은 늦게까지 여는 파텔 씨의 잡화점에 드나들었다.    241쪽



대체 해미시 맥베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352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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