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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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번 핸슨』




"Anybody Have a Map?" from the DEAR EVAN HANSEN Original Broadway Cast Recording

(뮤지컬이 소설로 재탄생되다니, 기대되는 작품
 『디어 에번 핸슨』)








(굿즈 선물도 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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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디어 에번 핸슨』 은 동명의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사회 불안 장애를 앓고 있는 한 소년이 한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온갖 오해와 혼란의 중심에서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뭉클한 메시지까지 전달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텍스트가 영상이나 무대로 구현된 사례가 많았으나, 이 작품은 그와는 반대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컨텐츠에서 읽고 상상하는 것으로 전환되어 생소하고 매력적이다. 이미 흥행한 작품이라면 단연 재미와 감동을 겸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또 운좋게도 유유브에 검색하면 훌륭한 무대 영상과 특별 영상, 사운드 트랙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함께 텍스트를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한 번 쭉 읽어본 뒤, 뮤지컬의 구간별 사운드와 연결하여 들으면서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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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고등학생 에번 핸슨/에반 한센.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지금은 어머니 하이디와 같이 살고 있는 에번. 낮엔 병원에서 간호사로 밤엔 로스쿨 학생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하이디는 에번을 잘 챙겨주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에번을 걱정하고 있다. 심리 치료를 받으며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어야만 진정이 됐던 에번은 여름방학 동안 공원관리원으로 일했던 곳에서 팔이 부러지는 추락사고를 겪게 된다. 깁스를 찬 에번에게 하이디는 친구들의 메시지와 낙서를 받아보며 친밀감을 갖길 바래보고, 내색하지 않지만 고운 심성을 가진 에번은 하이디의 말대로 친구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조심스러운 시도를 이어간다. 

 한편 치료의 일환으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를 해야만 하는 에번은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형식적인 내용의 편지만 썼다가, 아무도 없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담은, 마치 유서와 같은 편지를 쓰게 된다. 투명인간 같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이 사라져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담긴. 

그러나 혼자 있다고 생각했던 컴퓨터실엔 교내 문제아로 낙인 찍힌 코너가 있었고, 웬일인지 에번의 빈 깁스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는 코너. 오전에 그와 부딪혔던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 뜻밖의 행동을 이어간다. 에번이 자신의 동생 조이를 짝사랑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편지 내용에 조이의 이름이 보이자 화를 내며 가져가버린다. 

불안했던 3일이 지나고 갑작스러운 교장선생님의 호출에 가보니 에번의 앞엔 코너 부모님(래리, 신시아)이 와 계셨고, 당황스러운 소식을 전해온다. 며칠 전 코너가 자살을 하였고 그가 자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다는 말에 에번은 자신의 편지를 가져간 코너를 떠올리고 오해를 풀고자 하지만, 그의 깁스에 새겨진 코너의 이름을 보고 안도하는 그들을 보며 믿고 싶어하는 대로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무심한 아버지와 바쁜 어머니 사이에서 외로웠던 에번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계기로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집이 가까운 이유로 그나마 친구인 것 같은 제러드와 코너와 주고 받았다는 가짜 메일을 만들고, 매사 적극적인 엘레나의 교내 활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코너 프로젝트'의 영향력도 점차 커져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토록 원했던 조이와의 관계도 가까워지고 더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일상이 편안한 에번에게는 코너의 환상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역시 커져만 간다. 무엇보다 코너와 가깝지 않았지만 거짓말로 그와의 친밀성을 꾸미다 보니 정말 가까운 듯 느끼게 되어 진심어린 마음을 전한 추모식 연설은 널리 퍼져나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 이른다. 한순간의 유명세와 많은 친구를 얻게 된 에번. 

코너와의 추억의 장소로 말했던 게 우연히도 맞아 떨어진 어느 농장, 그리고 그 농장을 다시 재개장 하기 위한 모금. 어머니 하이디와의 대화 단절이 지속되어 가고 모든 일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듯,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쳐온다. 가짜 메일을 의심하는 엘레나, 자신의 아들이 다른 집에서 더 친숙하게 지내고 있었고, 대학 학비마저 지원해주겠다는 의견을 듣게 된 하이디는 에번과 크게 다투게 되고, 오해를 덮기 위해 전달한 편지는 코너의 유서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사람들의 공격적인 관심에 다툼과 혼란이 이어지는 코너의 가족들 앞에 결국 진실을 고백하고 모든 걸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 에번은 앞이 캄캄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한다.

가족은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늘 해왔던 생각이지만 누구보다 가깝지만 누구보다 먼 존재같은.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기에 때론 남에게는 잘 보였던 모습을 감추려고 애쓰는 듯한 양상. 화목한 가정을 바랬던 신시아와 바른 길로 가길 원했던 래리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며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애매모호한 흔적으로만 남기고, 소중한 친구를 지키기 위해 했던 거짓말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된 코너처럼. 모든 게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어딘가 한 구석 상처 하나 없이 맑은 가족은 대체로 흔치 않을 것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슬픔에 잠식된 코너네 가족을 위한 거짓말은 어쩌면 각자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방황하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개선과 그저 방치했다는 죄책감, 오빠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했고 자신을 싫어했을 거라는 오해와 함께 남겨진 미안한 마음. 모든 복합적인 마음들에 한 줄기 희망이자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번의 말처럼 다행스럽게도 코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였고, 진심을 나눌만한 친구가 있었으며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 진실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그 결이 아주 다르다라곤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코너 역시 스스로 간절했을 것이다. 그만큼 모든 게 불완전하고 서툴렀다. 



"You Will Be Found" | DEAR EVAN HANSEN



에번의 추모식 연설이 다수의 마음 속에 가닿을 수 있었던 건 그 역시 코너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어떤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면 서로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는 게 더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코너의 시도는 원하는 대로 이뤄졌고, 에번은 실패에 그쳤는데, 이 실패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는지...그 마음을 감히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왜 글로써 다시 재탄생하게 되었는지 읽어나갈수록 선명히 와닿는 기분이었다. 직접 보는 것으로 다 전달할 수 없었던 섬세한 면면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다. 두 가지 형식 모두 너무나도 매력적이므로 이 모두를 감상하기를 추천해본다. 


성장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그래도 이야기 속 주인공은 행복했으면 하는 해피엔딩 지지자이기 때문에, 현실은 비루하지만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좌절하며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동력을 닮고 싶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들로 보자면 결국은 좋아한다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SNS라는 새로운 매체를 차용한 것도 현실성 있고 좋았다.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은 금방 확 불타오르기도 하고 또 금세 팍 식어버리기도 한다. 일회일비 하지 말자고 하지만 쉽지 않은. 아마 대개 누구든 관종끼는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는 게 마냥 싫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듯한 관심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때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의 걱정과 염려를 받고도 싶고, 때론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주어 위로를 받고 싶은 것처럼.

 때론 나와 같은 상황에서 무사히 잘 살아가고 있는 이에게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겐  『디어 에번 핸슨』 이 그런 힘을 주는 좋은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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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달라진 것 아무것도 없는 듯 다닐 테지만 나는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16쪽

이 편지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때도 있다. 원래 목적은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시키는 건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쪽

환상은 언제나 근사하지만 들이닥친 현실이 나를 땅바닥으로 밀칠 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38쪽


내 팔에 적힌 그의 이름. 내가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눈을 뜬다. "그것이 그가 제게 준 선물입니다……혼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것 말입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렇다. 나는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게 그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선물이죠. 다만……."
이게 가장 끔찍한 부분이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우리도 그 선물을 그에게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32쪽

나는 땅으로 추락한다. 나는 절대 하늘 위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추악하고 무거운 진실이 나를 계속 잡아당기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265쪽

나는 알맞은 대가를 치를 수 있길 기다렸다. 가끔은 두 손에 머리를 묻고 이미 지난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애원했다. 코너가 내 편지를 어떻게 할지 전전긍긍하던 때와 비슷했지만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심했다. 위험부담이 훨씬 컸다. 405쪽


깁스를 떼도 내 살갖에 남은 그의 이름이 보이는 듯 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를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을. 411쪽


세상에는 우리처럼 외로운 영혼이 너무나 많다. 우리 모두가 여길 건설하는 데 일조했다. 여기가 자라는 걸 지켜볼 사람들. 우리가 떠나보낸 사람들. 우리는 함께 행진한다. 함께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모든 것의 중심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우리 자신에게 가까워지려고. 서로에게 가까워지려고. 진정한 무언가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422쪽 


"Only Us" | DEAR EVAN HANSEN


"Disappear" from DEAR EVAN HANSEN performed
by Taylor Trensch and Alex Boniello | DEAR EVAN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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