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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꽃을 받으면 일주일이 행복한 여자,

꽃을 받으면 이 꽃이 아닌 다른 기회 비용이 떠오르는 여자, 


이분법적 분류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연인을 이 분류법에 적용해 본다면 자신의 연인이 대략 어떤 스타일일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소녀 감성이 남아있는 로맨틱한 여자인지 5일 후면 시들 꽃보다 1년 후에도 남아있을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여자인지. (그래도 대부분의 여자는 꽃을 받으면 행복해하긴 한다.)


나는 명백한 전자이기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하나 둘 외우고 있을까 말까한 '꽃말'에 대한 호기심도 크게 작용했다. 


빅토리아는 고아 소녀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이고 염세주의로 똘똘 뭉친 사고뭉치 구제불능 문제아. 그녀는 자신의 입양 가족 선정 책임자인 메러디스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에도 아랑곳 없이 반항의 칼날을 거두지 않는 날선 아이다. 어렵게 성사된 입양 과정에서 수없이 되돌아왔고, 학교에서도 내 놓은 아이, 고아원에서는 철저히 소외된 아이다. 

이런 그녀지만 입양 연령 마지노선인 10살을 1년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회가 왔다. 


유년 시절의 소외된 양육 경험과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독신녀가 된 엘리자베스 아줌마의 딸로서 살아갈 기회. 하지만, 빅토리아는 늘 그랬듯 독기로 대항한다. 이런 그녀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는 드문 깡을 지닌 엘리자베스는 당황함 보다는 오히려 제어 능력과 그녀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맞선다. 변치 않는 단호함과 그녀를 넘어서는 독기로 빅토리아를 간단히 제압한 후에 어린 소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꽃말로 대화를 시도하는 엘리자베스. 

이 때부터 풀어진 그녀의 경계심은 '꽃말'을 계기로 엘리자베스와 서서히 소통하기 시작하고 유일한 관심사로 발전한다. 그렇게 1년의 과정을 거쳐 처음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안정에 관한 욕구'가 생겨난 빅토리아. 하지만, 입양이 결정되는 법원 출두 날 예상치 못한 엘리자베스의 변심으로 그녀의 꿈과 사람에 대한 믿음은 철저하게 깨져 버린다. 


이 후 다시 염세주의로 회귀한 빅토리아는 꽃에 대한 애정만을 지닌 채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 그로부터 8년 후, 더이상 보호될 수 없는 독립의 나이 18세를 맞이하게 되고 그녀는 희망도 계획도 없이 거리로 내몰린다. 


이야기는 이렇게 한 소녀의 순탄지 않은 삶의 굴곡을 천천히 따라간다. 10살 때의 일과 18살 현재의 삶이 교차되며 왜 그녀가 현재에 이르렀는지의 과정이 하나씩 베일을 벗어나가는 플롯이 전개되는 것. 뻔한 듯 하면서도 예상할 수 없는 은근한 '감질남'이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그녀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매개체인 꽃은 모든 그녀의 삶의 뿌리다. 처음 누군가와 소통하기 시작한 계기이고 거리로 내 앉았을 때의 안온한 안식처이며 커리어의 시작점이자 사랑의 발화점이자 완성점으로 이어지니.. 


꽃과 꽃말은 그녀의 진짜 언어이고 숨겨진 속마음이며 삶의 궤적이다. 엘리자베스 집에서의 식사 때 자신을 맞은 별꽃(환영)으로 시작된 역사는 그녀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은 메러디스에게는 작약(분노)를, 자신과 비슷한 인생 역정을 겪게 될 보호소 동료 친구들에게는 마지막 선물로 달리아(품위)를 방문 밑에 슬며시 밀어 넣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사랑 그랜트에게는 당신이 나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은 엉겅퀴(인간에 대한 불신)이라며 단언하고, 다가오는 그의 마음은 철쭉(조심하라)으로 경고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이 엉겅퀴(인간에 대한 불신), 바질(증오), 작약(분노), 라벤더(불신)였던 그녀는 꽃집 블룸에 취직하게 되면서 점차 변화한다.   

처음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꽃말로 누군가의 얼굴에 4년 만에 환한 웃음이 피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깨달은 그녀의 터닝 포인트인 셈. 


꽃과 사랑으로 변화하는 그녀의 삶은 어찌보면 뻔한 해피엔딩 스토리지만 책장을 다 덮고 나면 뭉클하고 묵직하게 피어오르는 감동이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입양아를 키운 엄마라는 약력은 입양아의 분노와 어린 아이의 속내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게 만든 원동력인 것 같고 책장을 다 덮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빅토리아의 이름이 '꽃말'이 비밀 언어였던 빅토리아 시대에서 따왔음을 '아하!'하고 깨닫게 된다. 그녀가 영감을 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꽃말은 빅토리아 존스의 꽃말사전으로 뒤에 첨부되어 있는데 이는 그랜트와 함께 완성한 빅토리아 존스의 최종 꽃말사전이자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몰두했던 자료의 응집체이기도 하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꽃 한 송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행복으로 물들게 할 수 있는 지...! 

이 책은 사랑의 결핍과 인간에 관한 불신으로 가득했던 빅토리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았는지에 관한 '행복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책을 훑어 보게 되면서 처음에는 미처 발견치 못한 숨은 의미를 알아냈다. 바로, 글의 목차이기도 한 엉겅퀴, 흰장미, 이끼, 헤이즐의 꽃말을 빅토리아 존스의 꽃말사전에서 찾게 보게 된 것이다. 

찾아보고 나니, 비로소 스토리의 큰 흐름이 완성되었다.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랄까? ^^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지나친 스포일러는 자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꽃의 꽃말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분홍색 장미는 우아함이고 

카라는 겸손이었으며 

배꽃은 안락이었다.


왠지 모를 묘한 기쁨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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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글로 한 편의 수채화같은 영상을 그려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던 <물의 가족>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이다.

 

그의 에세이에서 잠깐 접했던 작가의식이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이 책 <소설가의 각오>를 읽으면

 

그가 일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작가의식을 반복적으로, 치열하게 느낄 수 있다.

 

어찌하여 그는 그토록 생생하게 이미지의 세계를 그려내는 지에 대한 이유, 통신과의 샐러

 

리맨에서 작가로 변신하게 된 과정(그는 별스럽지 않게 여기지만, 호주머니에 넣은 송곳이 언젠가

 

는 툭 튀어나오듯 결국 맞닥뜨리게 된 소설가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허위와 권위 의식 따위를 경

 

멸하는 작가관 등 오늘날 마루야마 겐지를 있게 한 그의 내밀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을 쓰는 나, 이것이 나다.' 라고 자신을 정의하는 작가,

 

유명세와 권위에 기댄 안이함과 느슨함은 털끝만치도 용납하지 않는 그 기개와 심지가 참 강직한

 

사람이다.  독자는 이내 소설가의 각오는 그 자체가 그의 생활이자 철학임을 알 수 있다. 소설을 쓰

 

기 위해 최적화 시킨 그의 하루, 한 달, 1년의 싸이클은 참으로 치열하다할만큼 타협이란 없다.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을 접하고 있는 대여섯 시간이지, 작가가 칠 개월 동안 들인 공력은

 

애당초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는 현실적이고 냉철하다. 그렇기에

 

그 자신을 더욱 매섭게 채찍질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가 신랄하게 문학에 관련된 대부분의 것-문예지와 편집자, 독자-에게 냉소적이기만한

 

것은 아니다. 글쟁이라면 누구나 글을 읽는 사람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것처럼 그 또한 자신의

 

글을 대하는 반응에 무심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포착할 수 있다. 그가 신뢰하는 편

 

집자에게서 "아주 재미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구원을 받은 듯한 기분과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작가이니 말이다.

 

마루야마 겐지를 좋아하는 독자나 글로 먹고 사는 글쟁이에게는 이 산문집은 은둔형 작가의 속내

 

와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런 기분을 안겨줄 것이다. 물론, 불편한 구석도 있다.

 

자신감을 넘어 독선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듯한 직설 화법이 그것인데 일본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형편없어서 잘 읽지 않는다는 점이나 유명세나 문학상을 향한 신랄한 풍자, 경멸 등은

 

'과연 정말일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까.(너무 신랄해서 우리 상황에 대입시켜 보는

 

순기능도 있다.)

 

이런 점만 차치한다면 그의 팬들에게는 '음.. 역시 남다른 작가였어'라는 기대치에 맞는 부응을,

 

글 자체가 삶인 작가 지망생이나 글로 밥 먹고 사는 치들에게는 흐트러질 뻔한 초심과 열정을

 

곧추세우고 자꾸 느슨해지려하는 치열함을 상기시키기에 알맞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지닌 소설가의 각오라 압축 할 만한 문장을 전한다.

 

'나는 소설가의 사상이란 좌(左)니 우(右)니 하는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만 집중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소설로 이 세계에 들어왔으니 소설 하나에만 열중하겠다,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오직 내가 지향하는 소설을 쓰리라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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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열 살 꼬마로 돌아가 그 세상 속에 흠뻑~!빠지게 만들었던.. 지금 우리들,어른이라 불리며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의 세상을 힐끗 돌아볼 때 흠칫 하고 놀란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나도 저랬나?'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때 그시절엔 분명 우리 눈에 비친 세상-신기하고 모든 것이 커보이기만 했었던 세상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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