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몇 점 - 황동규 산문집
황동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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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즐거운 편지>로 유명한 황동규 시인의 네 번째 산문집이다. 


주로 2000년 대의 산문들을 엮었지만, 글 속에는 더 오랜 세월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소한 일상이 세월을 두고 켜켜이 쌓였다. 시인의 평소 생각과 함께 여행과 책, 문학에서 일어난 주제가 주를 이룬다. 


가장 와닿는 부분은, 20~30대의 젊은이에게서는 잘 느낄 수 없는 세월이 가져다주는 통찰의 일면들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모와의 에피소드에서는 사람과의 교감은 단순히 청력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횟수와 질이 결정한다는 깨달음을, 유학생활을 다룬 장에서는 '외로움'의 감정을 긍정적인 '홀로움'으로 체화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홀로움'이란 저자만의 단어가 새롭다. 외로움은 슬픔이 뚝뚝 묻어나지만, 홀로움은 건강하게 자립한 모습이 연상되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추억은 결국 고통과 괴로움을 감내한 후에야 찾아오는 거른 기억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우리는 나쁜 기억은 빨리 잊을 때가 많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지나고보면 '그 정도로 힘들었었나?' 하는 둔감해진 기억만 남는다. 결국, 내 기억의 저장소에 남은 추억은 나의 필터가 만들어낸 결코 순연하지 않은 기억인 셈이다. 

 

세월 속에서 나의 감수성이 변해 버린 것을 고백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것에 둔감해지고 천진함은 사라진다. 아기는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도 까르륵 웃고, 어린 아이는 달리는 기차나 고추잠자리의 날갯짓에도 가슴에서 우러나온 탄성을 지른다.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잃어가는 것들이 그의 시선에 담겼다. 


우리의 삶에서 과연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통찰의 시선이 깨우침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나이테가 꽤 많이 생긴 다음에야 보이는 것은 아닐까'하는 슬픈 물음도 따라온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이기에 그 통찰을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담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축복인 것도 같다. 통찰의 시기를 앞당겨 주는 고마운 글이기도 하니까. 


앞만 보고 사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면, 이 책을 들여놓아도 좋다. 내가 갈 길을 먼저 걸어낸 자가 전하는 관록의 무게가 어지러이 부유하는 나를 가라앉혀줄 수도 있으니, 좀 더 너른 시선을 더해줄 수도 있으니.  







황동규 산문집, 삶의 통찰, 관록의 시선, 부유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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