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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의 차이 중 가장 뚜렷한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은 대개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게 화분이라면 필요 없는 누런 이파리나, 그게 꽃이라면 시들거나 모양이 약간 이상한 꽃 이파리들을 달고 있다는 거다. 반대로 죽어 있는 것들, 그러니까 모조품들은 완벽하게 싱싱하고, 완벽하게 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대개 모조품 식물은 얼핏 보면 완벽하지만, 가까이 보면 생명의 기운은 없는 껍데기와 같은 느낌이요, 진짜 식물은 어떤 놈은 잎 모양이 어설프고, 어떤 놈은 가지가 예쁘게 뻗었다. 모두가 완벽한 사람을 고르기는 어렵다. 이들은 언젠가 죽게 될 운명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의 생을 살아낸다. 마치 사람과 같이..
공지영은 이 글을 쓰는 동안 글쓰기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유머와 여유를 찾아가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과연 무겁지 않은 일상 속에 쏙쏙 뽑아 올린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녀라고 언제나 사회적 의무감으로 진중하고 울림 있는 글만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오히려 <지리산 행복 학교>같은 글이 그녀 특유의 유머와 돌직구식 인생관이 녹아 있어서 좋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도 그렇다. 어디서든 슥슥 페이지를 넘기기에 부담 없어 좋고, 가벼운 이야기 속에 언뜻 언뜻 그녀가 인생에서 체득한 교훈이 튀어 나와 좋다.
친구들과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남녀의 이기적인 심리가 등장하고, 한국인의 고착화된 습관이 드러난다. 그리고 언제나 그녀를 성장하게 하는 삶의 기쁨이자 통제불능의 아이들과의 생활사도 빠지지 않는다. 또 사회와 정치인 비판도 약하게(?) 녹아 있다.
그리고 상처와 고난에 대처하는 법이 곳곳에서 명언처럼 불쑥 등장해 멈칫 하게 만든다. 그녀의 지리산 친구 중 한 분이 말한 명언 '밖에서 보면 길이 없어 보여도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다 길이 있다'는 말에선 부정적으로만 생각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절망적인 상황에선 이 말이 위안이 된다.
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중략)
어쨌든 이들이 내게 준 교훈이 하나 있는데 절대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착한 사람, 더 유쾌한 사람, 그녀보다 더 통달한 사람들이 등장해 가슴 속을 뻥 틔워준다. 일례로 "이혼 횟수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어서 다시 사랑을 해야 한다는 거야... 겁쟁이들은 결코 사랑을 얻지 못해. 무엇이 그리 겁날 게 있어? 까짓것 상처밖에 더 받겠느냐고. 그리고 인생에 상처도 없으면 뭐 재미로 사냐 말이야." 고 일갈했던 화통한 화가 언니가 그랬다.
상처에 끙끙대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보다 더한 상처를 끌어안고 산 스승같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질 테니까. 내 상처가 가볍게 느껴지는 유머와 통찰력을 만날 수 있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