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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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 번째로 집어든 책인 ​<빛의 호위>​.

제목에 이끌려, 띠지의 문구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에 이끌려 창비 서평 이벤트에 참여해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읽게 된 한국 작가의 책이라 반가웠고, 총 9개의 단편이 모아져 있는 단편집, 소설집이라서 더 반가웠던 책. 사실 조해진 작가를 처음 접한 책인데, 이 책을 읽고나니 저자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했다는 그의 이번 소설집은 벌써 세 번째!라고 하는데, 각각의 단편들이 묵직함 울림과 여운을 줬기에, 그 내용들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 읽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빛의 호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로 수록되어있었던 단편.

홀로코스트를 겪고도 그녀의 연인이었던 장을 통해, 그가 건네 준 악보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은 알마 마이어, 그리고 반장이었던 어릴 적 그가 건네 준 카메라를 통해 살아갈 힘을, 빛의 호위를 얻은 어릴 적 권은.

헬게 한슨의 '사람, 사람들'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알마 마이어의 슬픔이 절절하게 와 닿았던.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 (중략) 나는 그가 했던 방식으로 그의 역사를 기념해주고 싶어요."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 번역의 시작

어릴 적 뉴욕으로 떠나 3년 만에 사라진 영수씨(=아버지)와 아르헨티나에서 뉴욕으로 밀입국한, 무턱대고 뉴욕에 간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안젤라.

언어는 다르지만 통하는, 언어를 초월하는 교감능력이 있었던 안젤라. 그녀의 은유 화법과 영수씨가 남긴 그림들, 이게 바로 번역의 시작일까 ;)

 

■ 사물과의 작별
재일조선인이었던 서군이 맡긴 일본어 원고뭉치, 자신이 잘 못 전달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거라는 자책과 이미 서군에겐 정혼자가 있었기에 닿지도 않았던 상황으로 하염없이 마음에 품고 품었던 고모. 알츠하이머에 걸려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된 고모..

그래도 뒷 부분에선 아주 잠깐이나마 이어진 것 같아서 그나마.. 위로가 된 ;)

 

■ 동쪽 伯의 숲

박정희 대통령 시대,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졌던 1967년의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 한 남자와 한 여자. 안수 리와 한나의 이야기.

그리고 한나가 떠난 뒤 안수 리를 찾는 한나의 손자 발터와 그의 친구 희수. 편지글인 게 뭔가 더 ​집중도 잘 되고 공감도 더 갔던 것 같고 :)

 

형광등을 오래 보고 있으면 빛 알갱이가 산란하는 게 보인단 말이오. 그 빛은 흩어지고 모이면서 나비나 새가 되어 날아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오직 한 사람의 얼굴도 되지. 끝내 그 얼굴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견딜 수 있었던 거겠지요.

 

■ 산책자의 행복

철학과 강사였지만 어머니 병원비 등으로 인해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기초수급자가 되어 편의점 야간알바를 하며 지내는 홍미영(라오슈).

그녀의 제자였던 중국 유학생 메이린.

강사로 재직할 땐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했었지만 막상 자기가 겪으니 전혀 그렇게 안 되는,

개에게 쫓기고 나서야 살고 싶다고 말하며 무너지는 라오슈의 모습엔 안타깝긴 했지만 조금은 어린애 같은 모습이 들었던.

그래도 자신은 살아 있다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메이린의 이메일들을 보면 라오슈도 결국 살아갈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 잘가, 언니

태어날 떄부터 몸이 약했던 나, 정아. 그리고 그런 나로 인해 자신의 꿈까지 포기하길 강요당하고, 결국 꿈을 포기하고 대학을 마치고 도피하듯, 사랑하지도 않는 상대와 결혼해 도피하듯 미국으로 떠나 가족에게 말도 없이 이혼하고,

그 곳에서 서른 살의 나이에 강도의 총에 맞아 덧없이 죽게 된 언니 정희.

언니가 있던 미국으로 떠나 그 곳에서 언니를 알았던 인도계 미국인을 만나 결혼하고 정착해 살다

지인 J가 보내 준 차학경의 '딕테'를 보고 그 안에 있던, 차학경의 여동생이 요절한(서른 한 살에 뉴욕에서 건물 관리인에게 살해당한) 언니에게 쓴

한 통의 편지를 읽으며 언니를 떠올리는 내용이 슬픔에 젖어있지만 담담한 느낌이랄까,

빛의 호위의 노먼 마이어 내용은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걸 보니 허구같은데, 차학경의 내용은 실화라 더 마음이 아팠던..

이 저자는 참 이런 내용들을 잘 알고 잘 만드는 구나, 소설에 잘 녹여내는구나 싶었었다 :)

 

어떤 문장은 주문인 듯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하나의 문장에 실려 기억의 기억, 기억 속의 또다른 기억들 그 한 가운데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에 대한 기억이라면, 저는 늘 이렇게 한박자 먼저 투항하고 맙니다.

 

■ 시간의 거절

재미교포 화가 제인과 기자였지만 노조 파업 운동을 하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 석희와의 만남.

제인은 석희의 사진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 내면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고, 석희도 제인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았던 :)

석희는 잔에 남은 소주를 들이켜며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어떤 말은 마음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문주

여섯 살, 철로에서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문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결국 프랑스 가족에게 입양되어 나나라는 이름을 갖고 독일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다

서영의 이메일, '당신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 를 받고 한국으로 오게 된, 자신의 - 문주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

 

■ 작은 사람들의 노래

심각한 아동학대가 있었던 보육원에서 자라온 균, 균이 일하던 공사판에서 균에게 잘 대해줬던 송, 그러나 현장에서 추락사로 죽게 된 송. 그리고 균이 후원하던 필리핀 소녀 앨리, 자신에게 아빠라고 하며 한국에 가고싶다 이야기 했었던 앨리. 그러다 저수지에 빠져 의식불명이 된 앨리. 알고보니 자신 말고도 다른 후원자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균.

사랑받고 싶어했고 사랑을 주고 싶어했으나 결국 뜻대로 안 되고 꼬여가는,

사실은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한 없이 외로워지는.. 균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총 아홉 편의 단편들인데 -

이들의 공통점은 전부 배경이 외국이라거나, 또는 외국인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각 주인공의 내면이 잘 묘사된다는 점,

전부는 아니지만 몇 개의 단편에서는 '빛'이라는 소재가 꽤 등장한다는 점이랄까 :)

대부분이 절망적으로 시작하지만 그래도 끝은 ㄴ,나름의 해피엔딩..까진 아니더라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되는 게 많았던.

소설들을 읽어낙다며 표현들이 참 좋았고 내면 묘사가 참 좋았던. 하지만 좀 무거운 내용과 슬픔이 많기에 약간은 버겁기도 했었던.

다 읽고보니 책 뒷 표지가 뭔가 폴라로이드 사진같기도 하고ㅋㅋㅋ :) 음, <빛의 호위>의 카메라는 후지 필름 카메라였는데... 싶어서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

여튼, 오랜만에 괜찮은 소설을 읽어서, 괜찮은 작가를 만난 것 같아서 기뻤다 :))

내가 재밌다고 하니 엄마도 읽고 싶다고 하셨는데, 엄만 어떻게 읽으실 지 궁금한 책 :)

 

▶▶ 재밌게 읽은 단편 순서

빛의 호위 - 잘가, 언니 - 동쪽 伯의 숲 - 번역의 시작 - 문주 - 사물과의 작별 - 산책자의 행복 - 시간의 거절 - 작은 사람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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