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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189. 일본소설/침묵 박물관/오가와 요코. ★★★★☆. 20201005-07. p344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의 신작 침묵 박물관. 표지가 너무너무 예쁘다! 소설 속 마을의 알공예품!
사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인지 <박사가 사랑한 수식> 내용은 가물가물 희미하지만
재밌게 읽었다, 라는 느낌만은 남아 있기에 요 책도 읽어보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내가 만드려는 건 자네 같은 애송이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장대하고,
이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박물관이야." (p13)
한 노파가 세운다는 박물관의 기사로 일하기 위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가게 된 '나'. 그런데 박물관이 그냥 박물관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이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저택의 정원사지만 이것저것 못 하는 게 없이 만능인 '정원사'와 노파의 양녀인 '소녀'와 함께 노파가 열한 살부터 수집해 온 유품을 하나하나 분류, 정리하고 노파가 원하는 박물관을 설계, 공사하며 그 사이 세상을 떠난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수집해나간다.
한 편, 50년 동안 단 한 건의 살인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마을에 폭탄 테러와 3건의 연쇄살인이 발생하는데.. '나'는 노파의 의뢰대로 무사히 박물관 문을 열 수 있을까?
일본 저자가 쓴 책이기에 일본이 배경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었는데 딱히 지명도 나오지 않고
특이하게도 주인공들 이름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그냥 나(=기사), 노파, 소녀, 정원사, 침묵의 전도사, 가정부
뭐 이런 식으로만 되어있어서 일본 느낌도 안 나고 유럽 같은? 아님 몽환적인? 느낌을 줬달까.
허나 각 인물들이 꽤나 입체적이라서 이름이 없어도, 나이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도
그냥저냥 이미지가 잘 떠올라서 읽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었던 책.
유품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이라는 주제도 참신한데 그냥 단순히 유족들이 넘겨준 유품이 아니라 수집하는 '내'가 직접, 죽은 이를 제일 잘 상징하는 무언가를 몰래 수집해왔던...... 것이라는 반전, 형과의 추억이 가득 담긴 현미경과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인 '안네의 일기'를 소중히 여기는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서서히 적응해나가며 박물관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그냥 잔잔하게만 이어질 것 같았던 이야기에 갑자기 폭탄 테러와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 믿었던 이에게 뒷통수를 후려 맞는 반전미가 넘쳤던.
허나 너무나 열린 결말에... 오잉? 이건 뭔데 그럼? 읭?이건 무슨 일이야? 뭐야뭐야 얘 좋은 놈이야 나쁜 놈이야?! 헝, 왜 수취인불명이야? 설마 아니지? 설마 내가 생각한 게 맞는 거야?라는 무수한 궁금증만을 남기고 마무리가 되어 살짝 아쉬웠던. 그래도 읽는 내내 푹 빠져 재밌게 읽었던 책이었다 :)
"물론 나에게도 부모는 있었어. 첫사랑도 있었을 테고, 결혼도 했을지 몰라.
하지만 잊어버리면 아무것도 없었던 것과 같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여기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여기 있어. 분명한 건 그것뿐이야. 그 간극을 메워주는 건 유품뿐이고. 그걸로 충분해." (p291)
만약 내가 노파의 마을 사람이고.... 내가 죽는다면, 기사는 나를 기억할 유품으로 무엇을 고를까? 내 존재를 나타낼 그 무언가가 어떤 걸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