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속 길 잃은 이방인이 되어



  우스운 생각이지만, 책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내가 바로 노벨상이다!'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통에, 나의 정신이 글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생생히 전해오는 감각에 얼마나 많은 감탄사를 내뱉었던지….
사실 나같은 문외한이 '노벨문학상'에 관해 감히 '서평'을 하다니 머뭇거려져, 이 책은 서평을 쓰지 않으려했다.
그런데 이 좋은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아, 내 나쁜 머릿속의 기억이 낡고 헤지는게 두려워져서 결국엔 감상만이라도 남기고자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Book quote


그러다가 어느 땐가 우리는 최근에 새로 포장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뜨거운 햇볕을 받아 아스팔트가 녹아서 갈라 터져 있었다. 발이 그 속에 푹푹 빠져들어 갔고, 콜타르가 벌어지며 그 번쩍거리는 속살이 드러났다. 영구차 위로 보이는 마부의 삶아서 굳힌 가죽 모자는 마치 바로 그 검은 진흙 반죽으로 이겨서 만든 것만 같았다. 푸르고 흰 하늘과 갈라진 아스팔트의 끈적거리는 검은색, 걸친 상복들의 흐릿한 검은색, 니스 칠한 영구차의 검은색 등 단조롭기만 한 색깔들 가운데서 나는 정신이 좀 어리둥절해졌다. 햇빛, 가죽 냄새, 영구차의 말똥 냄새, 니스 칠 냄새, 향냄새, 잠을 자지 못한 하룻밤의 피로, 그러한 모든 것이 나의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 책을 읽다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 고약한 냄새가 내 코 앞까지 스며들고, 내 정수리에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햇살에 눈을 뜰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다 책에서 눈을 떼고 현실로 돌아오면, 아직은 차가운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은 향내나는 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책 한 권에 이리도 마법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이더라…….
아마도, 이 것이 '문학노벨상'의 위력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뫼르소의 세밀한 감정묘사는 왜 이렇게 끈덕지게 나에게 들러붙는 것일까.
그토록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처럼 인생을 방황하고 있는 이방인이기 때문일까.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뫼르소의 생각들은 마치 껌처럼 녹아내려 무심코 지나던 내 신발 밑창의 틈새를 파고들어 뿌리내렸다. 
길바닥을 걸으면서도 그 감정들은 계속 녹아내려, 아스팔트와 신발을 더 가깝게 밀착시키려는 노력을 하나보다.
태양은 점점 강렬해지고, 미처 가려지지 못해 햇볕을 그대로 받아내던 피부는 붉게 변하다 못해 따가운 통증이 느껴진다.
발걸음은 힘에 겨워 점점 느려지고, 결국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기가 더 어려워졌다.
갑작스레 신발을 벗어 던지고 재빨리 도망치듯 달려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힌 나는,
신발끈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데…
그  드넓던, 시커먼 아스팔트가 그 새 모두 녹아내렸나 보다.
뫼르소의 감정이 뒤섞인 거대한 껌 덩어리가, 그 타르 덩어리가, 끈적히 녹아 섞여 지구를 뒤덮어 버렸다.
내 발목은 그 끈끈하고 검게 녹아내린 뫼르소의 생각 속으로 잠겨버린 것이다.
  책을 덮을 즈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이처럼 발끝부터 천천히 나를 집어 삼킨다.
'내 안에는 뫼르소가 산다. 결국 나는 이방인이다.'

  어릴 때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 맨 발로 서서 뜨거운 태양을 온 몸에 적시던 기억이 난다.
은 아주 천천히 눈치채지 못 하는 사이 나를 삼키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정강이의 절반쯤은 이미 지구 속에 박혀 있는 채였다.
지구 밖으로 기어 나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옷이나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갯벌의 살갗에 드러누워 온 몸으로 태양을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발목을 잡던 지구의 손길을 뿌리쳐 내면,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어린 기억 속 하늘과 땅을 가르는 지평선을 반짝이게 하던 태양, 모든 것을 불태울 것만 같이 녹아내리던 태양, 그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이 작은 책에서 가득히 뿜어져 나왔다.
너무 몰입된 탓일까?
무기력한 표정의 뫼르소가 눈 앞에 나타났다.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얼굴을, 닦을 생각도 않은 채 흐릿한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의 천천히 올려진 손 안의 묵직한 권총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권총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를 향한 내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그의 이마 위 땀방울이 점점 더 커진다.
그 커다랗게 자라난 땀 한방울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눈두덩이를 덮치는 순간….
나는 끝장이 나겠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자라나는 땀방울을 노려보는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나를 피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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