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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는 파리 여행으로 부재 중 - 젊은 언니의 유쾌발랄 프랑스 정복기
김원희 지음, 명난희 그림 / 봄빛서원 / 2017년 3월
평점 :

삶의 지혜를 엿보게 되는 여행기

60대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가 비록 뛰어난 아티스트(?)이기에, 단명을 걱정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되어서의 모습을 나는 꿈꾼다.
적당히 몰입할 일거리를 갖고, 언제든 연락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훌쩍 떠나서 여행을 갈 수 있는 그런 위치의 나이길….
그리고 홀연히 여행을 가기 어려워지는 문턱에 이르렀을 때는, 추억할 거리들이 많아서 언제든 기억을 꺼내볼 수 있는 부자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 책은 그런 내가 꿈꾸는 미래들에게 '용기'를 가져다 주는 첫 번째 발걸음과도 같았다.

Book quotes
티켓 구입하는 곳도, 입장하는 곳도 개미 줄같이 늘어져 있다. 친구는 티켓을 구입하는 곳에, 나는 입장하는 곳에 가서 줄을 섰다. 입장하는 줄은 그래도 조금씩 줄어들고 늘어나고를 반복하는데, 티켓을 구입하러 간 친구는 3시간 만에 나타났다. 한여름 땡볕에서 3시간 줄을 서 있으니 구경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p.60)
※ 필히 뮤지엄 패스는 한국에서 구매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짚으며 "이것(This) 하나(One) 그리고 플리즈"라고 주문했다. 그랬더니 "마실 것은?" 하고 묻는다. 우리는 아무 스스럼없이 "콜라" 했다. 피자에는 역시 콜라가 제일이다. 그랬더니 다시 "마실 것은?" 하고 묻는다.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콜라 플리즈" 했다. 그래도 그냥 서 있다. 그때서야 아하~~ "콕" 했다. 그러니 주문을 받아간다.
친구 왈, "야~아들은 '콜라'도 모르네. 비행기에서 승무원은 알던데." 맞다. 중국 남방항공 스튜어디스는 그래도 '콜라'는 알아들었다. (p.68)
※ ㅋㅋㅋ 아, 내 친구가 미국의 카페에서 '핫초코' 라고 말했는데 점원이 못 알아 들어서 둘이 한참을 마주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 말로는 '못 알아 듣는 척' 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진짜 못 알아듣는 것 같은데? ㅋㅋㅋ
낯선 여행객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준 친절에 너무 감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던 한국의 전통 문양이 있는 지갑을 선물로 주었더니 기쁘게 받는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실례인 듯해서 참았다. 여행객을 기쁘게 한 추억으로 남는다. (p.106)
※ 아! 이런 작은 선물을 사 가서, 여행시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참 좋은 일 같다.
전통시장에 가서 과일을 좀 샀다. 우리 먹을 것과 함께 우리가 가고 난 뒤 학생이 먹을 과일도 샀다. 짐을 챙기고 캐리어를 끌고 역으로 가는데 길을 따라 나선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고맙다. 객지에 나와 고생하며 공부하느라 자기 집을 여행객에게 내줘야만 하는 생활고가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나는 몰래 몇 장의 유로를 꺼내 그녀의 손에 살며시 쥐여 줬다. 놀라서 마구 사양을 한다. (p.145)
※ 이런 부분에서 나는 이 여행기가 기존의 여행기와 다름을 느꼈다. 유학생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할머니 여행자라니! ㅎㅎ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더 간 것 같은데(정확히는 모르겠다) 작은 공원이 보이는 정거장 앞에서 기사 아저씨가 버스에서 내리더니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제법 한참을 공원 안쪽까지 들어가더니 이 길로 쭉 가라고 안내해 준다. 친절한 안내에 '쌩큐, 쌩큐'가 저절로 나온다. 운행 중인 버스를 정거장에 세워두고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다니, 한국에서는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감사한 마음에 '쌩큐'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온 나이 든 할머니 여행객이라 친절을 베풀어 주지 않았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프랑스인들에게서 비슷한 친절을 여러 번 받았다. 사람들의 성향이 대체로 친절하고 느긋한 편이다. 참 살기 좋은 동네다. (p.187)
※ 프랑스에서 동양인 차별과 무시가 아주 심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행자에겐 관대한 것인가? ㅎㅎ 아니면 사람마다 다른 것 뿐일까? 뭐, 일단 우리나라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볼 수 없으니, 전 세계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나는 70대 중반, 저 할머니 나이가 되어 있을 때 어느 멋진 나라의 거리를 걷고 있을까? (p.275)
※ 이렇게 미래를 궁금해 하는 마음, 누구나 꿈을 꾸며 살고 있다. 비단 10대이던 30대이던 60대이던 언제나 꿈꾸는 미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가 꿈이 없을거라고 생각하는가. 다음번엔 할머니께 어떤 꿈이 있으시냐고 여쭤야겠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할머니랑 할아버지 손잡고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가야겠다.
어쩌면 여행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떠난다는 것은 이유와 핑계일 뿐, 소소한 순간의 느낌과 행복이 그리워서 떠나는 게 아닐까 싶다. (p.295)
※ 이 문장을 읽고 마음에 뎅-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도 하루하루 나의 일상 속에서 삶의 여행을 가는 듯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내가 10대 였을 때, 우리 할머니가 60대 였을 때.
우리는 롯데월드 바이킹을 함께 탔다.
내가 20대 였을 때, 우리 할머니가 70대 였을 때.
우리는 한강 유람선을 함께 탔다.
이제는 우리 함께 손잡고 비행기를 타야 할 차례인 것 같다. ㅎㅎ
아, 정말 '할머니 제가 돈 벌어 호강시켜 드릴게요.' 소리만 30년을 한 것 같다. ㅠ
대체 언제쯤 효손이 될른지….
예전부터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더 멋진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더욱 근사하고, 더욱 멀리, 정말로 진기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정말로 소박한 것이었다.
'소소한 순간의 느낌과 행복이 그리워서' 떠나게 되는 것이 여행이라면…,
나는 올 봄엔 두 분의 손을 잡고 꽃구경을 가고,
올 여름엔 바닷가 근처로 놀러 가서 석양을 등지고 멋진 요리를 먹고,
올 가을엔 화창한 하늘 아래 은행나무 숲을 함께 거닐며,
올 겨울엔 눈 내리는 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키워주신 두 분이 건강하신 날에, 함께 더 많은 추억을 나누기를.
나와 하루라도 더 행복하시기를.
훗날 두 분을 더는 볼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조부모님과 함께 한 날들을 떠올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음이 일렁거려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아고. 이따 다시 걸어. 지끔 할매 양념 무쳐." 뚜뚜뚜 -
사실 할머니는 경상도분이셔서 용건을 빨리 말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울 할머니 'ㅆ' 발음 안 되신다는 ㅋ)
전화 너머로 시끄러운 주변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뭔가 동네 할머니들하고 모여서 음식을 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께서 전화를 홀랑 끊어버리셔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ㅠ
이번엔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여보슈. 응. 라나여? 응. 뭐여 거 밭은 갈었냐아? 응. 그려어. 거기는 안즉도 춥냐아? 인쟈 여기는 다 내부렀어. 응. 그려. 꽃귀경? 여기 지천에 널린게 꽃인디 뭐허러 거까지 가냐아. 허허. 기여? 오냐아. 응. 좋지 뭐. 응. 그려. 고생햐. 응. 끊는다."
뭔가 한참을 대화하고 끊은 것 같지만, 사실 내용은 별개 없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의 서울 유학(?)으로, 이제는 서울말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강원도 촌사람(?)이 되었지만. ㅋㅋㅋ
어쨌거나 충청도의 대화는 늘 별 것 없어도 길게 통화를 늘어놓기 마련이다. ㅎ
나와 할아버지의 오늘 대화는 꽃놀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셋이서 올 봄에는 꼭 태안 튤립축제 가자고 약속 잡아뒀다.
아무래도 올 해에는 그 어느때보다 정말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지금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 소소한 순간을 즐기는 여행들을 떠올리며,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이라고 회상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