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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묘한 웃음 코드에 매료되다.
만일 내가 일본어를 배웠다면 당장에 원서를 사서 읽고플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어려서부터 짱구, 코난, 아따맘마등을 봐오며 나름 알아듣는 일본말들이 몇 개 있는데, 이 참에 일본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한문은 싫다. 그냥 회화만 배우고픈 마음.) 책에 매료되었다.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데 7월에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게 되면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간단한 책의 내용을 말하자면 '발랄한 성격의 친구들이 가득한 인기녀' 여학생의 비밀을 '친구는 커녕 하루에 같은 반 친구들과 대화하는 일조차 거의 없는 음침한 책덕후' 남학생이 알아버리면서 시작된다.
여학생의 비밀을 다름아닌 '췌장암'.
다른 친구들은 모르는 그 비밀을 안게 된 남학생은 이름이 계속 '?????'로 등장하더니, 소설 마지막에 가서야 이름을 알려준다.ㅎ
솔직히 이름이 계속 등장하지 않으니까, 마치 내가 그 남학생이 된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소설에 몰입해서 읽다보면, 왜인지 슬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입 끝에 미소가 걸리는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막 펑펑 울면서 읽을 책은 절대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뿐 사뿐' 벚꽃잎처럼 내려앉는 기분의 소설이었다.
마음이 사락 사락 해지는 소설.
따스한 봄 햇살에 떨어지는 벚꽃 아래에서 펼쳐들길 추천한다.


Book quotes
"둘 다 똑같이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돼. 멍하고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선생님하고 똑같은 나이가 되는 수가 있어."
"우와하핫, 그럴 리는 없어요!"
그녀와 선생님은 즐거운 듯 서로 웃어가며 얘기했지만 나는 웃지 않고 만쥬를 한 입 먹고 보리차를 마셨다.
그녀가 말한 대로, 그럴 리는 없었다. (p.17)
※ 이런 식으로 굉장히 유쾌하게 언급해 버리고 만다. 슬프지 않게 진행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번 일요일에 시간 있어?"
"아, 미안. 예쁜 여자친구와 데이트 약속이 있어. 그냥 두면 걔가 금세 히스테릭해져서 힘들거든."
"거짓말이시죠?" (p.22)
※ 아, 정말…. 나도 이 개그 적어뒀다 써먹을거다.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내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했다. 심장의 박동에 맞춰 발을 내딛다 보니 덧없는 목숨을 억지로 흔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속이 울렁거렸다.
저녁 바람이 불어 아직 살아있는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p.23)
"막창, 새끼보, 대창, 벌집양, 양, 염통, 울대, 오드레기, 허파, 천엽, 스위트브레드……."
"아, 잠깐, 잠깐, 잠깐, 지금 뭘 주문하는 거야?"
※ 음…. 내 선호 순서는 대창>막창>천엽>염통>허파>양…. 음, 오드레기는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스위트브레드는 뭔지 모르겠고, 역시 생간이 있다면 사각사각한 간이 무조건 1순위!
"화장은 싫다니까. 죽은 뒤에 불에 구워지는 건 좀 그렇잖아?"
"그게 고기 구우면서 할 얘기야?"
"이 세상에서 진짜로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 다들 먹어준다거나 하는 건 좀 어렵겠지?"
"고기 먹으면서 사체 처리 얘기는 하지 말자."
"췌장은 네가 먹어도 좋아."
"내 얘기 듣고 있어?"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 (p.37)
※ 실제 식인을 하는 행위가 몸 안에 영혼을 넣는 의식이었다고 나도 들었다. 질병에 걸린 사람을 먹으니, 멀쩡하던 사람들도 질병에 걸려 식인종이 멸종되었다는 설이 사실일까?
그나저나, 그 고깃집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ㅠ 먹고 싶다고 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다음에는 특히 유의하는 것밖에 없었다. (p.65)
※ 나도 실수했을 때 이런 마인드를 가져야겠다.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도 목욕해야지? 거품 욕조, 진짜 좋아."
"그럴까? 행여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도 마. 나, 욕실에서는 인간 가죽을 벗어놓기로 했으니까."
"햇볕에 새까맣게 탔나?"
"응, 그렇다고 해두자." (p.127)
※ 왜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중에 못생긴 추녀가 허물을 벗고 목욕하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나는 언제쯤 허물을 벗으려나?
…허물 벗으면 분명 예쁜 사람이 나올거야.
내 마음은 그녀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네가…….
나는 실은 네가 되고 싶었어.
타인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로 하고 보니 내 속마음과 딱 맞아떨어져 속속 스며드는 것을 깨달았다. 저절로 입가가 쭉 올라갔다.(p.)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제목 왜이래? 무섭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참으로 흉측한 책이로다.' 했었다.
헌데 책 표지 그림은 막 벚꽃 휘날리고 참 예쁘다.
'표지는 예쁘게, 제목은 흉측하게, 새로나온 노이즈 마케팅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일본판 원제도 표지도 같은 것이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 제목이 의미하는 뜻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 다르니 '이렇게 흉측한 말이 아름답고 따스하게 느껴지게 만들다니 무척 대단한 작가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괜히 책에 심취해서 지인들에게 '너의 눈깔을 먹고 싶어.', '너의 도가니를 먹고 싶어.', '너의 십이지장을 먹고 싶어.' 등의 문자를 보내서 비난을 샀다. 하, 무지한 사람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굳이 예를 들자면, 책 속에서 약간의 비밀 언어로 발달되는 느낌적인 느낌?
('The Fault in Our Stars'의 Okay같은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고본의 코팅되지 않은 표지의 촉감이 손끝에서 느껴질 때, 살랑이는 봄바람을 느끼며 이 책의 다음장을 팔랑거릴 때.
'아…, 지금 벚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책을 읽고 나면 별 것 아닌 하루가 소중해지고, 은은하게 스미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지인이 '어쩜 그렇게 책 제목도 너같냐.'라는 둥의 몹쓸 말을 들었지만, 애초 뿌리부터 순하고 착한 나니까 아량을 베풀어 주먹질을 삼갔다.
혹여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선택하길 꺼리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귀에 속삭이고 싶다.
'병맛 코드 꿀잼'
나는 태생이 고귀한 탓에, 큰 소리로 웃게되는 개그보단 뱃속에서부터 깊이있게 웃음이 우러나와 입 밖으로 피식피식 새어나오며 웃게 되는 개그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병맛 코드' 랄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코드에 웃는 것은 역시 덕후같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일본 만화영화나 게임을 심각하게 본 적은 없지만, 그 '덕후'를 양성하는 일본 문화의 힘을 어렴풋 느끼게 된 소설이었다.
(아마 나는 금방 덕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정승같이 번 돈을 인형이나 캐릭터 상품을 사는데 개같이 탕진하겠지.
지금도 충분히 픽사 제품으로 도배하며 살고 있어서 걱정이다.)
아…. 오늘은 예전에 감명받았던 시가 떠올라, 그 시를 한 편 써볼까 한다.
내 기분
강달막
옆집 할망구가
가방들고 학교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 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 줄 알고
버스도 안 물어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이 시를 읽고 나서, 문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스미노 요루의 사진을 찾으면서 일본어 까막눈으로 힘겨운 구글링을 하다보니, 더욱 절실해졌다.
내 기필코 언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우주 정복을 위해서 인간들의 언어와 외계어를 끊임없이 연구해야겠다고 느낀다.
자, 우주를 향해 더욱 정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