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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평점 :

이방인의 시선으로 읽는 '이방인'

처음 이 책을 마주한 나는 당혹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독자인 나는 '나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뫼르소의 '타인' 실화를 좇는 대학 기자가 되어야 했고,(사실 나는 또다른 '무싸'가 되고 싶달까.) '이방인'에서 단 한번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아랍인'의 동생 '하룬'은 기자(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던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토해내는 화자이자 술에 취한 노인에 불과했다.
이방인 내용을 떠올리며 기대하기는 어려운, 그 두서없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는 이 책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방인'이 단순히 난해한 문학작품으로만 여겨지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 또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지의 역사를 안고 있기에, '뫼르소, 살인 사건' 속 하룬에게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책 속의 상황들을 하나둘 이해하게 되면서 나 또한 작열하는 태양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그림자 속에서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 사건'은 탄생한다.
오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프랑스인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하고,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알제리의 아랍인 하룬은 그로 인해 죽어살던 인생을 벗어나 복수로 화답한다.
그 끝날 듯 끝나지 않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그 넋두리가, '이방인'의 그림자가 어땠느냐면…….
지루하다가도, 반짝하고 섬광이 일다가도, 이방인을 떠올리게도 하는 것이었다.
카멜 다우드는 '이방인'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나의(이방인의) 시선을 알아 챈 것인지, '뫼르소, 살인 사건'을 통해 그 수면 아래 깔려 보이지 않던 부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이방인'을 읽는 것 뿐이 아니라, 진정한 이방인이 될 수 있었다.

Book quotes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 (p.7)
※ 책의 첫 문장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첫 문장을 응용한 시작이랄까.
사람들이 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글로 쓰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그건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남의 눈에는 띄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진정한 핵심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서지. (p.16)
※ 아마도 '카멜 다우드'가 이 책을 쓰는 의도가 아닐까.
어떤 언어를 마시고 언어를 말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언어가 우리를 소유하게 되지. (p.16)
※ 영화 'Arrival'에서 이안이 루이스에게 어떤 이론에 관해 말하는 대사가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몰두하게 되면 실제로는 뇌 회로가 재구성된대요.'
'What if you immerse yourself into a foreign language...
You can actually rewire your brain.'
아마도 작가는 프랑스어를 배우며 그런 과정을 정말 겪었던 것이 아닐까.
한 프랑스 남자가 황량한 바닷가에 누워 있던 아랍 남자 한 명을 죽여. 1942년 여름, 오후 2시의 일이야. 총알이 다섯 발 발사되지. 연이어 재판이 열리고 살인자는 자기 어머니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않고 어머니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하게 얘기했다는 죄로 사형에 처해져. 단순히 보자면 살인이 일어난 건 태양 때문이거나 아니면 순전한 한가함 때문이지. 뫼르소는 어떤 창녀에게 앙심을 품은 레몽이라는 포주의 부탁으로 협박 편지를 한 통 써주게 되는데, 그 일이 점차 꼬이면서 결국 살인으로 끝난 거야. 아랍인이 창녀를 위해 복수하려 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죽인 거지. 아니 어쩌면 그가 감히 건방지게 낮잠을 자려 했다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p.79)
※ 이방인을 이렇게 특정 인물의 시각으로 요약한 것을 읽으니 재미있다.
나는 식민자들에게 협력한 적은 없었고 그건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어. 그렇다고 또 무자히드도 아니었지. 그렇듯 양쪽 사이, 한 가운데에 머물러 있는 내 태도가 사람들에겐 무척 불편하게 여겨졌을 거야. (p.148)
※ 이 사이가 바로 이방인이 위치한 자리인 것 같다.
나도 역시 구경꾼들이 많았으면 좋겠네. 또 그들의 증오가 맹렬했으면 좋겠고. (p.199)
※ 책의 마무리 마저도 '이방인'을 떠올리게 한다.

무싸,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싸가 된다.
마치 '이방인'에서 '아랍인'이라고만 등장한 형의 진짜 이름 '무싸'를 모든 이에게 부여함으로써, 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하듯이 책 속엔 온통 무싸들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리엄이 '무싸 울드 엘 아싸스'라는 형의 이름을 말할 때, 하룬은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느끼지 않는가.
형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죽음으로 살았고, 형을 죽인 자로 인해 그는 통상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형의 이름을 말한 사람을 사랑한다.
결국 이 책은 '무싸'가 없이 서술되는 이야기지만, 절대적인 '무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베르 카뮈와 카멜 다우드는 같은 사건을 다룬 전혀 다른 두 권의 책 속에서, 꼭 같은 내용을 완전히 다르게 써냈다.
현실의 부조리와 고발, 종교의 부정, 인간 사회에의 통찰과 모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꼭 '이방인'을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방인'에서 끌어온 문장들은 알베르 카뮈의 문학성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카멜 다우드의 호기로운 도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이 '이방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처럼 문학적으로 우수한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으나(번역서로만 읽었기에 원서의 느낌과는 다를 수도 있으려나.), '이방인'의 그림자를 비추는 한 줄기의 달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토록 지난 옛 문학을 다시 되짚는 흥미로운 책들이 세상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뫼르소, 살인 사건'은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창의적인 책이다.
다만, 내가 훗날 프랑스어를 공부해서 원서를 읽는 날이 온다면 기필코 '이방인'과 '뫼르소, 살인 사건'을 원문으로 읽어보리라.
아마도 내가 번역으로 읽은 지금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울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이방인'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뫼르소에 대한 증오에서 출발하여 그를 집요하게 분석하던 하룬은,
결국 자기가 뫼르소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옮긴이(조현실)의 글 中 -
'뫼르소, 살인 사건'은 '이방인'을 향한 각색이자 왜곡으로 새로운 진실을 고백한다.
나는 '이방인'을 읽으며 뫼르소에게 뜻모를 동질감을 느꼈고, '뫼르소, 살인 사건'을 읽으며 하룬의 삶에 내 인생 한 조각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어낸 지금에서야, 현실 속의 이방인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나는 '이방인'이 되어 이방인이었던 '하룬'과 '뫼르소'.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아득히 뜨거운 태양을 그려본다.
오후 두시 작열하는 태양 속에 '이방인'을 높이 들어 보인다.
그리고 '이방인'의 그림자 속에 '뫼르소, 살인 사건'을 가두어 본다.
그래, 두 책의 관계는 딱 이렇게 정의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