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생각지 못한 세상의 또다른 이면에 관해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예고 받을 수도 있다. (도깨비나 저승사자에게서? ㅎ)
어느 쪽이 되었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진리만큼은 불변하지 않을까?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서식하는 자들은 강력한 권력 아래 벌어지는 악행들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는다는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인간성이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범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프랑수아는 착한 인간인걸까?
범죄 속에서 살던 폴은 나쁜 인간인걸까?
  세상에 벌어지는 악한 일들 가운데, 뉴스에 드러나지 않을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악한 범죄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편리한 삶이 지구를 아프게 하고 인류의 위협이 되는 것에 걱정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우선 나부터도 빙하가 녹는 일에 그닥 신경쓰지 않고 에어컨을 틀어대며, 세계적 물부족엔 상관없이 수도꼭지를 열어댄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커피와 초콜릿을 먹으면서, 그것들이 얻어지는 과정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손솔지 작가의 '먼지 먹는 개'에서 언급된 돼지고기가 생각난다. 나는 도살과정은 생각할 필요없이 먹기만 하면 되는걸까.)
  그렇다면 나도 그들과 한패인걸까?
결국엔 나도 공범인 것이 아닐까?
진정으로 삶을 살아내고, 쓸모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내 생의 마지막에 나의 손을 꼬옥 잡아줄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까.

  책을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무거워 지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어나기 때문이겠다.








프랑수아는 본능에 충실하기로 마음먹고 또다시 미리 정한 행선지도 없이 도로 위로 나선다. 맹목적인 도주, 똑바로 앞만 보고 달리기, 멈추지 않고 달아나기, 주행거리를 하염없이 늘려가기  (p.12)


폴은 그림 한 장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로 말하자면 그림 앞에서 단지 몇 분 동안 서 있는 것도 따분하다.  (p.59)

※ 음… 나는 그래도 몇 분은 서 있곤 한다. 가끔은 마음에 들어서, 가끔은 어떻게 그려야 이렇게 근사하게 되나 고민하면서, 가끔은 그냥 같이 보러 간 사람 속도에 맞추느라 (?) ㅋㅋㅋ


나 역시 정신이 나갔기 때문이야. 내 계좌에 넣어둔 돈의 가치가 전에 비해 많이 달라지기도 했어.

프랑수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을 구걸하는 노숙자들에게 땡전 한 푼 준 적이 없다.

너희들도 나처럼 일해서 벌면 되잖아,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 벌리는 노숙자들을 대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말이다.  (p.103)

※ 갑자기 잠실역에서 벤츠S클래스를 타고 출퇴근한다던 노숙자 아저씨 소문이 떠올랐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꼭 가난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라규. ㅠ


'나는 곧 죽는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지만 프랑수아는 폴과 함께 하는 동안 마치 죽음으로부터 멀리 도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

왜 모든 일에 반드시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p.104)


죽을 날이 임박해오고 있는데 마음이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한껏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족쇄를 채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인간을 구속하는 건 아닐까?  (p.133)

※ 삶이 인간을 구속한다라….


아무것도 보지 않기, 아무것도 듣지 않기,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심지어 통증이나 열기, 한기조차 의식하지 않기. 비와 바람조차 의식하지 않기. 그 어떤 감정, 웃음과 울음, 기쁨과 고통, 분노와 쾌락도 잊기.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닐까? 땅속에 묻혀 부패해가는 살덩어리가 되는 것.  (p.210)












  카린 지에벨이 남기는 소설 속 여운은 내 삶에 미세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나같이 뉴스를 등지고 사는 사람에게, 저질러지는 범죄 속 '인간의 존엄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있다.
당장에 나의 이익과 불이익을 떠나 진정한 인간성에 관한 고민을 떠안아본다.
우리가 사는 삶은, 인간의 문명과 편리함은, 언제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가 인간성을 모두 상실해 버리면 이런 세상은 다시는 볼 수 없지 않을까.
  누구도 사탄이 될 수 있고, 누구도 천사가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관여치 않고 내 세상 속에서만 사는 것은 나쁜 것일까?
혹은 그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면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껄끄러운 진실에 맞닥뜨리는 사건을 알게 되어도 묵인하며 사는 것이 그른 것일까?
힘없는 자들을 돕기 위해 구원의 손길을 뻗는 것만이 착한 것일까?
단순히 흙수저, 금수저를 떠나… 나 또한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아이로 태어날 수 있었고, 나 또한 한반도를 가른 휴전선 건너편 땅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자꾸만 잊는다.

  사람의 한가지 이면만 보고 그 사람의 생애를 판단할 수 없듯,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 누구나 죽음을 향해 걷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인생을 오롯이 충실하게 살아낼 각오를 다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사탄이 될 것인지, 루시퍼가 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서 우주를 정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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