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계 심장을 단 발레리나 1~2 세트 - 전2권
아멜리아 카하니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책 속 활자들과 함께 달리는 나의 심장



  예전에도 언급했었지만, 내 '영어원서 취향'은 사실 '로맨스'나 '히어로'같은 'Young Age/Teen/Young Adult'소설이 대표적이다. 
이 이야기는 곧 원서 읽는다고 폼 잡아봤자, '인터넷 소설'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흐규... 나도 폼나게 원서로 고전문학 읽고 싶고요. 두꺼운 원서는 대학 시절의 원서 교재가 전부고요. ㅋㅋ) 
뭐, 나는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되는 영에이지 소설까지도 즐겁게 읽는 편인데, 이번에 황금가지의 '블랙로맨스클럽'이란 영에이지 전문으로 출간하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블랙로맨스클럽에서 번역서로 출간되어 나온 책들 중 내가 아마존에서 구입해서 킨들로 읽었던 원서들이 대거 눈에 띄었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이 영양가 없다고 치부되어 가벼이 여겨지지 않고 이렇게 번역서로 출간되고 있었다니, 나도 모르게 입 끝에 미소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아, 당연히 원서 자체가 '영에이지'인데, 번역서가 '성인들을 위한 진중한 책'일리 없다.
유치한 사랑놀이, 말도 안되는 공상 속 뱀파이어를 비롯한 히어로물, 마법이 난무하는 세상, 시시껄렁하고 읽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십대의 일기장 따위(하지만 일기장 주인은 PO진지WER) 등을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은 '필히 읽지 말아야 할 0순위 장르 책' 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미 유명해져 영화로도 나온 '트와일라잇', '해리포터', '메이즈러너' 같이 기억에 남는 영화 원작들은 상당히 고퀄리티의 영에이지라고 보면 무방할 듯…. 보통, 이 장르의 책들은 손발이 오그라지면서 돌고래 소리를 몇 번 내면서 읽는 것이 정석이다.ㅋ)

  으, 서론이 길었다.
'기계 심장을 단 발레리나' 책 제목 그대로다. '기계 심장'을 얻어, 인간 이상의 능력을 얻은 아름답고 우아하기 그지없는 발레리나 히로인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적당히 로맨스도 녹아있고, 십대 소녀의 마음 속 묘사도 훌륭하며, 너무 폭력적이거나 성적이지 않아 좋은데다가, 몇 번의 반전 충격도 안겨준다. 결정적으로, '원서의 느낌이 죽지 않게 잘 쓰여진 번역서'라고 평하고 싶다. 
(이 부류의 소설이 그러하듯, '맛'이 안 살면 읽기가 어렵다.)
주인공도 좋고, 스토리도 좋고, 결말도 좋고!
여주인공에 빙의되어 심장을 콩닥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나만 그런가?)
자, 유치뽕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들이여! 소설 속 세상에 깊이 빠져들 하이틴 소설을 읽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펼쳐 드시길!







깨어진 심장

시내를 지켜보며 앉아 일몰을 기다리는 동안 소녀는 거짓말의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 직접 겪어 보니 시간이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선한 마음이 있다는 말.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해악을 끼치기 위해 태어나기도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말. 그녀는 지난 몇 달간 겪은 일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이란 자신이 쓰러진 후에도 계속해서 발길질을 해 대는, 불량배 같은 야수라는 사실을 배웠다.  (p.12)


선 모양 장식이 세공된 석조 난간에는 수백 개의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다. 이 다리를 거닐었던 연인들이 남겨 놓은 것이었다. 그들은 자물쇠를 걸고 열쇠를 강에 던져 깨지지 않는 인연의 증표로 삼았다. 문득 강바닥에 열쇠가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을지 궁금해졌다. 수백 개? 수천 개? 그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랑의 맹세를 했을까?  (p.52)

※ 그러게…. 나는 그 중에 한개가 없네. 또르르


"두 분이 나를 낳으신 건 언니를 대신하기 위해서였어. 아빤 내가 엄마에게 다시 살 이유를 주길 바라셨나 봐. 하지만 난 내가 아무리 완벽해지려고 노력해도 두 분이 잃은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지."  (p.58)

※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 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나 자체로의 삶을 살지 못 한다는 것은 단순한 자유로의 갈망보다 더한 고통이겠지.


유리창에 가림막을 쳐서 훤한 햇빛을 가리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뜨거운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흘렀다. 비단 베갯잇에 얼굴을 묻고 목구멍에서 솟아오르는 걷잡을 수 없는 통곡 소리를 막았다.  (p.137)

※ 아… 비단 베개. 난 편백나무 베개라 저렇게 울어볼 수 없구나. ㅎ


"모든 남자가 다 우리가 쏟은 시간만큼 가치 있으란 법은 없단다."  (p.203)

※ 아, 쏟아본 시간이 없… 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안고도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죠?"

잭스가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너를 살린 것과 같은 일들로 그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지."  (p.433)


이런 식으로 경찰은 엘리트 집단뿐만 아니라 최하층 범죄자들의 부패한 이익 관계를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복잡한 돈과 권력의 교환 체계에서 이득 볼 것이 없는 대도시의 일반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두려움에 질리고 무력해져 이런 시스템 자체를 바꿀 엄두를 내지 않는다.  (p.471)

※ 그러고 보니, 히어로물 중 도시의 범죄를 뒤쫓으면 언제나 부와 권력층이 검은 조직과 손을 맺고 있었다는 결말이었던 듯?

ㅎㅎ 이 책은 그런 결말일까 아닐까? 룰루루 ㅡ 나는 스포를 하지 않는다네.


"'늪의 절벽' 프로젝트를 점검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거기서 그만, 휙 하고."  (p.474)

※ 소름!






보이지 않는 자들


내 얼굴에 바보, 멍청함, 어리숙함이라고 적혀 있기라도 한 걸까?

전에는 그런 멍청이 딱지가 붙어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흔적도 없을 터였다. 이제 나는 매사에, 모든 사람들에게 의문을 갖게 되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사실일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들지 않았다. 사람을 볼 때도 끝없이 의구심을 품었다.  (p.13)


공주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가 진동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기분이었다.  (p.22)


한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대상이 바로 그 사람일 때는 더욱더. 아무리 알아도 충분하지 않은 사람 말이다.  (p.46)

※ 크으… 나는 이제 그 사람이 누군지 알지. ㅋㅋㅋ


"베들렘의 시민 여러분. 모든 것이 달라지려 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편안한 자들을 덜 편안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지요."  (p.52)

※ 글쎄… 정의라는 이름하에 부의 재분배를 행하겠다는 어느 미치광이가 벌이는 테러 메시지인데, 이 대사로 인해 '돈이 곧 행복이 되는 세상이구나.'하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눈꺼풀이 절로 감기며 나는 천천히 그에게로 몸을 기대었다. 서로를 이끄는 매력에 사로잡히는 그 순간…….

포드의 뒤에서 방문 손잡이가 찰칵 소리를 내더니 잠옷을 입은 샘이 나왔다. 

"무서운 꿈을 꿨어."  (p.86)

※ 에헤이, 샘! 이렇게 분위기를 망치다니. 요 꼬마놈이 보통이 아니군.


멍청한 헬리콥터들이 도시를 순찰한답시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중 하나가 강가에 늘어선 나무들 위로 낮게 하강했다. 경박스런 기계 잠자리 같으니.  (p.268)

※ 진짜로 가끔 커다란 잠자리를 발견하면, 헬리콥터랑 똑같다고 느끼곤 한다.


뇌물이니 보상이니 특정한 사람들을 죽인 신디케이트 활동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남부를 집 사기 불쾌한 곳으로 만들고 북부에 매도 활기를 물어넣기 위한 일이었다.  (p.363)

※ 소름.


고통스러운 열기가 가슴에 차오르더니 그 불길은 이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p.375)

※ 소오름!


마치 우리에게만 들리는 출발 신호탄이 발사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셋은 달리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웃고 함성을 지르며 회색 도시 방향으로 풀이 덮인 언덕을 내달렸다. 천 개의 말없는 묘지들만이, 거의 땅에 닿지 않는 우리의 발과 하늘을 배경으로 이상하게도 흐릿해진 우리의 몸을 알아챌 수 있었다.  (p.410)






  어렸을 때 시골에서 분교를 다니던 내 눈에, 너무나 예쁘던 고학년 언니가 하나 있었다. 
목이 길고 커다란 눈망울에 팔다리가 길쭉한 사슴같던 그 언니는, 저학년 반에서 맨날 코를 찔찔 흘리고 친구들과 흙장난을 일삼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다. 
  복도에서 가끔 마주치면 뭔가 우아한 느낌으로 걷는 그 언니의 모습에, 나같은 저학년 꼬맹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래, 그 언니덕분에 학교엔 하얀 타이즈와 팽그르르 돌면 활짝 펴지는 플레어스커트가 유행했었지.)
그런데 내가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더 멀리까지 나가 학교를 다니게 된 통에 그 언니를 다시 본 적은 없다. 자세히 알 수 는 없었지만 기억 속 그 언니는 읍에서 발레를 배운다고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앤섬'이 내가 기억하는 그 언니의 이미지와 여러번 겹쳐졌던 것 같다.
내가 그 어릴 적의 기억을 아직도 떠올린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그 시절 나도 그 언니만큼 크면 나도 분명 언니처럼 그렇게 예뻐질 것이라 믿었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 지기도 했다. (이런, 착각쟁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언니처럼 예뻐지지 않더라.
발레를 배웠어야 했나.
(아니, 어릴 적 사진을 보니 이미 그 때부터 가망이 없었구나. 난 너무 아빠를 쏙 빼닮았어.)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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