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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트
로버트 레피노 지음, 권도희 옮김 / 제우미디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을 향한 화살에 맞서며
어느날,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은 마침,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간단히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손끝에 저릿하게 잡힐 것만 같은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빵을 집다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공포에 주변을 불안한 눈으로 돌아보지만, 평온한 일상속에서 달라진 모습은 하나도 없다. 집 안을 돌아보다가 조금은 안심을 하며, 다시 자리로 가려는데 강렬한 그 느낌에 다시 사로잡히고 만다. 누군가, 누군가가 노리고 있다. 그 것이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모를 것이 노리고 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섬찟한 소름에, 반사적으로 몸을 급격히 돌려 보았는데…
내가 기르는 강아지가 두발로 일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똥깡아지 시키가 식탁위에 놓인 빵을 훔쳐먹고 있었다.
모트는 딱 그런 책이다.
About Morte (War with No Name)
독특한 내용의 시나리오는 분명 좋았으나,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함에 따라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에서 오는 느낌으로, 예를 들면 'colony'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라고 생각된다. 영어로 된 하나의 단어에서 오는 여러 중의적인 느낌이나 표현들이 다른 언어에서는 전달되기 어렵다는 느낌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단어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토리가 빈약하게 느껴지는 시점이 생겨나게 되었다. (말하자면, 어려운 단어로 모호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이 모든 것이 언어에서 오는 차이로 비롯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된다.)
모트는 기본적으로 내가 즐겨읽는 가벼운 소설(그렇다. 난 주로 원서로 인터넷 소설같은 가벼운 것만 읽는다. ㅎ)이기에, 나는 꽤 즐겁게 읽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원서'로 읽었다면 분명 더욱 즐겁게 책을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종종 사로 잡히게 된 책이었다. 아마도 한글책으로써 이 책을 주변에 소개한다면, '킬링 타임용' 책이라는 평을 받지않기 어려울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생각엔 동물을 사랑하는, 조숙한 초등학교 고학년들과 중학생들이 무척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한다. 책의 약간의 어려운 단어들은 읽다보면 그닥 거슬리지 않고, 책을 지배하는 전쟁에 관련한 장면들은 폭력성이 강하지 않다. 다만, 종교에 관련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특정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설 안에 어떤 종교가 등장하고 그 종교는 개미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며, 인간들이 그 종교를 칭송하게 되는 이야기가 중후반부에 지배적으로 나온다.) 회의적인 입장으로 쓰여진 부분이 많아, 종교인이라면 다시금 고민하고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집안이 조용해졌다. 세바스찬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혼자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 있어 진짜 적은, 침입자는 누구일까. 세바스찬은 집에 갇혀 있는 포로이면서 동시에 버팀목이기도 했다. 저들은 그의 몸을 훼손했고 이름뿐인 경비 자리를 내주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앞날을 그려 보다가 세바스찬은 이곳에서 혼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7)
※ 강아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닐까, 슬프다.
오랜 세월동안 연구한 끝에 여왕은 인간의 언어가 원시적이고 자멸적인 의사소통 형태이며, 매우 즉각적이고 확실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잘 나타내 주는 자신들의 화학적 언어와는 몇 광년의 수준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니기도 했다.
…
여왕이 소유한 지식은 더듬이를 맞대기만 하면 완벽하게 전달되는 데 반해, 인간들은 번역 방식과 저자, 역사적인 맥락, 상징, 의미를 놓고 다툰다. 자신들이 모아 놓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정확하지 않은 기억력과 필경사의 편향된 해석, 그리고 비효율적인 관료들의 변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p.57)
※ 아...나도 더듬이가 있으면 좋겠다. ㅋ
그 순간 모트의 안에서 온갖 것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시바, 대니얼, 햇살이 내리쬐는 양탄자, 낑낑거리며 울던 강아지를 담은 양동이. 아무 이유없이 시바의 이름을 불렀던 일. 상황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없었는지에 대한 끝없는 자문. 어째서 그는 살아있고 시바는 떠났는지에 대한 의문. 어째서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쉽게 극복하는데, 왜 그만은 잊을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 (p.120)
※ 글쎄. 어쩌면 다른 이들도 쉽게 극복할 수 없는데, 내가 모르는 것 뿐이지 않을까.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에 들어간다. 바이러스가 증가한다. 박테리아는 적응한다.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를 이긴다.
박테리아는 죽는다.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에 들어간다. 많은 바이러스들이 많은 박테리아에 들어간다. 많은 박테리아가 죽는다. 많은 박테리아가 살아남는다. 박테리아의 방어체계가 작용하면서 바이러스를 파괴한다. 하지만 그 박테리아는 변하게 된다. 박테리아들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좀 더 적대적으로 외부요소에 반응하게 된다. 박테리아들이 유사한 것들끼리 달라붙어 영양분을 교환한다. 박테리아들은 하나가 되어 빛을 찾아 나간다.
박테리아는 진화한 것이다. (p.285)
변화가 일어난 뒤로 모트는 항상 혼자 있으려고 했고,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작은 자리를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 그 안에 행복은 없었다. 자유만이 있었을 뿐이다. (p.402)
※ 아, 이 문장은 왜 이리 와닿는 것일까.

귀여운 내 애완견이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면 기분이 어떨까. 당장 살고픈 마음에 다급하게 애완견의 이름을 부르게 될까?
아니…. 나는 곧바로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 할테지. 아마 나는 한 마디도 못할거야.
내가 너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내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일테니, 그래서 총을 겨눈 것일테니, 당연히 실망하겠지.
너에게 실망하는 거냐고?
아니.
아마도 너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사랑을 혼자서만 주구장창하며, 나는 내 강아지를 사랑해라고 생각한 나 자신에게 실망할테지.
나는 믿고 있어.
똥깡아지야. 너가 훗날 '원인모를 호르몬'에 감염되어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너는 분명 나에게 총을 겨눌 것이 아니라 나와 대화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말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어.
오직 그 날을 위해서, 너가 내 물건들을 씹고 뜯고 맛보아도…, 도저히 못 참겠어도,
나는 널 혼내지 않고 참아낸거야.
그 날이 되었을 때, 네가 내게 총을 겨눌까봐 (두려워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겠어. 그러니 딱 한마디만 할게.
…
부탁인데, 책에 침 묻히지 말아줄래? (나는 지금 궁서체다.)

요즘들어 자꾸 자기가 책장을 넘겨주려고 한다. (혓바닥에 책이 들러붙는게 좋은건가.)
전에는 책에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책 냄새를 심각하게 맡은 이후로 부쩍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꾸 책을 노리는 것 같다.
솔직히 침묻는게 싫다. 책을 잘 숨겨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