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이름은. ㅣ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박미정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6년 12월
평점 :

그림이 그려지고, 음악이 들려오는 책
영화를 보고나서, 소설을 읽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글귀들을 읽고 있자니, 자연히 애니메이션 장면들이 떠오르고 음악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때에도 이렇게 확실한 시나리오와 뒷 이야기가 받쳐줘야 하는 거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영화만 보고서는 알 수 없었던 주인공들의 감정 묘사들,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몰랐던 부분에서는 책을 읽고서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 영화만 보았다면 동의하지 못했을, 사랑을 향해 '아름답게 발버둥치는' 두 사람의 고군분투를 아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소설이 먼저 출간되고 3개월 뒤 영화가 나왔다던데, 아마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면 그 감동이 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으로 번역된 책을 들여다 본 느낌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야 책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는 마음이다. 아마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원서로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깊은 감동을 느끼기엔 좋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일본 특유의 잔잔함과 신카이의 섬세한 묘사들이 내 마음의 호수에 진동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의 호수는 영화 속 이토모리 호수의 형태와 쏙 빼닮아 있어서, 타키와 미츠하가 일으키는 물결에 동그란 파동 두개가 나란히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조차 이렇게 그림이 그려지는데, 하물며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 풍경과 음악이 떠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가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말에는 옛 노래 같은 독특한 박자가 살아있다. (p.42)
선명한 색으로 엮인 실매듭을 틀에서 빼내자 달그락, 쓸쓸한 소리가 났다. (p.43)
※ 이렇게 글에서 소리를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산 끝자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호수의 마을이 태양 빛에 서서히 씻긴다. 아침의 새소리, 낮의 정적, 저녁의 벌레 소리, 밤하늘의 반짝임.
빌딩 사이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무수히 많은 창이 순서대로 햇살에 반짝인다. 아침의 인파, 낮의 소란스러움, 저녁 무렵의 사람 사는 냄새, 밤거리의 반짝임. (p.90)
※ 이런 라임이 참 시같고 좋았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요가 갑자기 왜 떠올랐을까.
'빌딩 숲 속을~ 벗어 나봐요~ 예아. (feat.조용필)'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해두고자 한다. 어떻게든 다음 세대에 전하려 한다. 문자보다 오래 남는 방법으로. 혜성을 용으로, 실매듭으로 표현한다. 갈라지는 혜성의 모습을 춤동작에 넣는다. (p.167)
※ 마코토 감독이 이런 의미있는 이유에서 다양한 요소를 고민하며 넣었을 생각을 하니, 역시 이런 만화영화에도 필연적인 요소와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 것일까.
뇌의 시냅스 배선 패턴 그 자체일까. 안구나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개처럼 형태가 없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덩어리가 어딘가에 있어서 그것이 기억을 간직하는 것일까. 마음이라든가 정신이라든가 혼이라고 불리는 것들. OS가 들어간 메모리카드처럼 그것은 빼낼 수 있는 것일까. (p.207)


신카이 마코토 본인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라고 한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읽어본 적은 없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와 책을 보고나니, 일본의 서정적 감성이란 것이 참 매혹적인 분위기로구나 하고 깨달았다. 아마도 그 유명한 무라카미의 작품들도 가슴을 울리는 섬세한 감각이 살아있는 책들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라카미의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저 책을 제일 먼저 읽게 되지 않을까. )
영화관에서 나올 때는 '너의 이름은.'을 화려한 음악과 혼을 쏙 빼놓는 영상으로만 느꼈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새삼스레 이 스토리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고 느꼈다. 단지 우연이거나 대충 만들어 둔 플롯이 아닌, 꼭 필요한 연유에서 시작되었고 의미있는 세계관에서 시작되었다는게 상당히 놀라웠다. 아마도 이런 일본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 덕에 '마니아' 문화가 깊게 뿌리내릴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영화와 상호보완적' 이라는 문구를 읽고 책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미츠하' 가 아버지를 설득하는 장면을 좀 기대했었지만 영화에서 나온 장면외에 새로운 것들이 추가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의미로 '상호보완적' 인 내용이었다. 각 주인공들을 1인칭으로 묘사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동화와 영화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동에 던진 의문을 모두 풀어주는 그 마음의 결심을 읽고 나니, '아! 애니메이션과 별개로 이렇게 소설로써 작품을 풀어내는 것은 정말 멋진 것 같아!' 하고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너의 이름은.' 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간절히 찾아 헤매는 그 모습을 읽으며, 나도 곰곰히 생각해본다. 혹시 지하철에서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었나. 누군가 닫히는 전철문 사이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사라졌던 적이 있진 않았을까.
... 그건 단지 미친 사람이 아니라, 혹시 내 짝일지도 모르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