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시 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혼란스러운 나를 일으키는 책
처음 책을 펼쳐들었던 날엔 눈이 많이 내렸다. 마당에서 새하얀 눈이 떨어지던 시각, 이 새빨간 책을 펼쳐 들었는데 손안에 느껴지는 책의 감촉이 놀랍도록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책 표지의 코팅 방식이 흔히 보는 유광의 매끈한 촉감이 아니라 손에 펼쳐들면 포근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이 마구 내리는 마당에 앉지도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서서 '들어가는 말'을 몽땅 읽고 나니, 누군가에게 한대 얻어맞은 듯 띵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들어가는 말' 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꼼꼼히 정리하기 위한 시간들이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보다 더 많아졌던 것도 같다. 준비하는 과정의 시간들이 정작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아서 지치곤 했던 것 같다. 목표만 세세히 세우다가 장렬히 막을 내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안지 못한 채, 나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좌절을 느껴왔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완벽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어.'라며 용기를 준다. 강박적인 모범 사례들과 나를 비교하며 괴롭혀온 날들에 '꼭 나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건 아니잖아?' 라며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혁신의 힘을 주는 그런 책이었다.


생각의 틀을 깨고 통찰력을 주는 사례들
책 속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있다. 아마도 이 책은 독자를 위한다기 보다 작가 자신의 메시한 기록의 책이 아닐까. 수많은 저서와 광범위한 분야를 오가며 그는 기록을 했다. 아마도 그만의 방식으로 큰 틀의 주제를 끌고 가는데 각기 다양한 분야를 혼란속에 몰아넣고 책 속에 가둔 것 같다. 그 생생한 흐름이, 그 뛰어난 통찰력이, 발상의 전환이 되어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끔 한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스티브 잡스가 설계한 픽사건물 이야기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의 대담한 경영이야기였다. 역시 평소에 좋아하고 관심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쫑끗 집중하게 된다.
'나중에 픽사 투어를 가게 된다면 꼭 그 건물의 화장실을 한번 가봐야지.'
'나조차 킨들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도 아마존은 더 엄청난 회사가 되겠지? 얼른 파이어 타블렛도 갖고 싶고, 아마존 에코도 갖고 싶고, 파이어TV도 사고 싶다.'
'...내년엔 착한 일을 많이 해야겠다.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결과가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정확하고 완벽한 시스템과 질서정연함에 굴복하고 만다는 것이다. (p.8)
봉투를 꺼내 서류를 사용한 다음에는 반드시 책꽂이의 왼쪽 끝에 꽂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주 사용하는 문서는 왼쪽으로 이동하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문서들은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p.27)
실제로 정형화되지 않은 게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탁월한 혜택을 제공한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 정형화되지 않은 놀이를 즐긴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창의성이 높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p.63)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기술을 실행해보고, 현명한 선택과 어리석은 선택을 직접 해보며, 고통과 상실을 경험하고, 엄청난 혼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운다고 생각하겠지만, 더 완벽한 인간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성을 대폭 축소해버리는 것이다. (p.69)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전부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거나, 전자계산기를 사용하면서 암산능력이 떨어지는 등 일상적인 사례에서도 자동화의 역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p.82)
디지털기기 덕분에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줄어들었지만, 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오히려 커졌다. 기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일반적인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통탄할 것이다. (p.104)
스티브 잡스가 일단 중요한 아이디어라고 판단을 내리면,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픽사 본사 중앙에 최고급 화장실을 만들어 직원 간 교류를 유도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반드시 실현할 생각이었다. 잡스는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연결이 직원들의 발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으며, 결론적으로 그는 옳았다. (p.154)
라세터는 잡스의 직감이 옳았다고 말한다.
"새 건물에 입주한 뒤 몇 달간 못 보고 지냈던 사람들을 우연하게 만나는 일이 계속되었죠. 이 건물처럼 협업과 창의력을 고취하는 건물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픽사의 사장 에드 캣멀도 이에 동의한다.
"매일같이 우연한 만남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우연하게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뜻이죠. 건물에 들어서면 활기가 느껴집니다." (p.155)

이 책의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나서 돌연 나는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결국에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메시'에 불과했다. 메시의 이로움을 알리고자 방대한 지식의 산물을 적절한 주제에 앞세워서 늘어놓은 '대단한 혼돈' 그 자체였다. 사실 책을 읽던 도중에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이야기들이 예시로 나오거나 좋아하는 주제에선 고도의 집중을 하며 지식을 흡수했던 반면에, 관심없는 이야기들의 나열은 좀 지루하게도 다가왔다. 하지만 딱 한가지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난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스스로가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라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기존의 방식대로 컴퓨터 파일들을 수많은 폴더안의 또 다른 폴더들로 정리하고, 매일의 단기 목표를 세우는 것에 열중하고, 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에 무관심하다면 이 책을 진정으로 읽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이제 나에게 체화되어야 하고, 이제 내가 행동해야만 비로소 읽은 것이 되는 그런 실질적으로 유익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의 내용들을 체득하지 못 한다 하더라도, 책에 명시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게 남는다면 나의 뇌는 한단계 더 열릴거다.
이제 책장은 덮어졌고,
다가오는 2017년엔 더욱 적극적으로,
메시한 행동력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돌진할 일만 남았다.
이제부턴 나도 '메시형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