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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누네즈 /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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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존재했던 것에 대한 향수도 충분히 고통스럽지만 과거에 존재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한 향수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게 진실이란 건 알지.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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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에서는 두 친구와의 관계와 심리에 치중해서 읽었다면 이번 책은 1968년 격동의 미국사회의 흐름과 변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여성인물들의 삶을 조명해볼 수 있었는데 이야기의 중심축인 앤과 조지가 뉴욕 바너드대학에서 룸메로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미국사회 상위계급에 속하는 부르주아의 외동딸 앤. '흑인으로 태어났으면'하는 소망을 비치며 특권층의 삶을 진저리칠 정도로 증오하고 부모를 혐오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내던지는 것조차 누군가에겐 조롱거리가 되고 말지만 그럼에도 따지지 않는 순수한 호의는 교도소에서도 지속된다. 부러지면 부러졌을 지언정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반하는 것들에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만신창이고 지쳐있던, 딸의 뺨을 힘껏 때리던 엄마, 떠나버린 아버지, 생활고에 쌍둥이 동생을 이모 집으로 보낸 조지. 둘은 가정환경도, 성장배경도, 삶을 관망하는 시선이나 외모와 성격까지 무엇 하나 닮은 점이 없었지만 서로에게 가장 친밀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대학을 중퇴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는데... 물리적거리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매사 애쓰며 살아가던 둘은 사소한 싸움으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고... 어느 날, 조지는 신문에서 경찰을 살해한 앤의 기사를 보는데...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이들의 40년 가까운 세월을 조지가 화자가 되어 서술한다. 이야기속에는 조지의 주변 여성인물들도 등장해서 각기 어떤 모습으로 시대를 통과하는지 보여준다. 사랑과 우정, 마약과 섹스, 가난과 폭력, 난무하는 상실과 한번씩 고개를 삐쭉 내미는 희망같은 것들. 그렇게 살아내고 살아지는 여성의 삶들. 누군가는 혼자인 삶을 이어가지만 엄마가 된 조지에게서 느꼈던 감정은 묘한 동질감이자 슬픔이었다. 마치 기성세대를 보며 "나는 저들처럼 살지 않을 거야." 특히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던 딸들이 자라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쯤 자식에게서 느껴지는 그 눈빛, 지난 날 그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봤던, 나를 마주하는 심정이었달까. 누군가는 마냥 철없고 미친 것 같았고 누군가는 한없이 딱했으며 괴롭기도, 아프게도 했던 이 사람들이 분명 허구만은 아닌 것을 알기에 이 일대기가 마냥 '그 부류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디선가 또 계속 되고 있겠지, 싶어서 한편으론 먹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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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편안하게 살잖니, 우린 직접 참여했고, 정치에 대해 걱정했지. 우리에겐 이상이 있었고, 우린 대의명분을 위해 싸웠어. 그때 우리가 그 모든 걸 이루어놓지 않았더라면 너흰 지금의 권리들과 특권들을 누릴 수 없었을 거다." P251
🔖"굴욕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것이 어떻게 사람에게 최악이 아닌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단 말인가? 이성의 박탈이 어떻게 진실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겠는가? 베유의 관념, 앤과 그 동지들의 관념, 못 가진 자가 신에게 더 가까우며 오직 그들만이 삶의 진실을 알고, 그들의 정신은 그들의 비참한 처지, 선망과 모방의 대상이 되어야 할 그 처지에 이르러본 적 없는 다른 모든 이들의 정신보다 위대하다는 관념ㅡ이 관념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빼앗긴 자들, 노예들과 매춘부, 미치광이들과 전과자들에 대한 찬양ㅡ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P366
🔖사랑. 아이들. 희생.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그렇다, 우리는 주저 없이 기차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 기차가 지나가면 자식들은 우리의 몸을 넘어갈 것이다. P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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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출판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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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부류의마지막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