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 레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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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건을 치정이 아닌 사회적 사건으로 보아야 했다. 우리는 비극으로 끝난 부부 싸움이 아닌, 지속적인 폭력과 공포가 어디로 치닫는지에 관해 말해야 했다. 살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내세우며 지배하려는 한 남자의 욕구에 관해 말해야 했다. 눈이 먼 사회를 말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에 이름 붙이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해야 했다. p203

-필리브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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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도 유추할 수 있듯이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수십차례 칼에 찔러 참혹하게. 그리고 열 세살의 딸이 목격했으며 범인은 남편이자 아빠이다. 그는 범행 직후 자리를 떠났고 레아는 타지에 있는 오빠에게 전화를 건다. "일이 생겼어."

직관적인 제목이 눈길을 끄는 소설이지만 사실 이 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제목 너머를 보아야한다.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가정안에서 가정폭력과 여성살해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전후로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일어나고 있는지, 한 가정안에서의 사건을 "사회적 사건"으로 보아야만 하는 이유까지도 말이다.

현장을 목격한 레아의 트라우마가, 화자인 '나'가 과거를 되짚어보며 엄습하는 죄책감에 앞서 이 사건은 일상에 징후가 만연해 있었다. 남매의 묵언이, 무시된 피해자의 신고가, 목격자의 주저함 같은 것들 말이다. 회피하고 싶었고(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고) 모른척 하고 싶었을 뿐(역시나 어쩔 수 없었다면 말이다). 이 순간이 무던하게 지나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일상에 작은 비극들은 결코 그렇게 쉽게 놔줄리가 없을텐데. 그래서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독자 입장에서도 아프기 그지없었다. 다만 은유 작가님의 추천사처럼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은 문학이다"라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사건 발생 후에도 이들은 순탄치 않다. 집을 잃었고 증언해야 했으며 재판에 참석하고 가해자인 아빠를 마주해야했다. 포기와 체념이 반복되는 와중에 언론에 가시화 된다는 것이, 대중을 경악케 하는 만큼 동정 어린 눈길을 동반한 이 사건이 얼마나 소비되는지에 대해선 기시감마저 든다. 그리고 이내 잊히거나 다른 사건으로 묻히거나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 제동을 걸 것이다. 외면하지 않도록, 쉽게 잊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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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들의 무너진 삶은 어떻게 다시 재건할 수 있을까. 소설 속의 '나'는 "눈에 띄어서도, 목소리를 내어서도 안 되는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파괴된 우리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글을 쓴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p236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삶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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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엄마를죽였어
#필리프베송
#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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