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30년째 - 휴일 없이 26만 2800시간 동안 영업 중
니시나 요시노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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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점주가 되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장시간 서서 일하다가 생긴 요통도 아니고, 사람을 써야하는 어려움도 아니고, 바로 인간에 대한 불신이었다. 불신아리가보다 공포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중략) 툭하면 손님이 소리를 질렀다.영수증을 주면 주는 대로 "쓰레기를 주고 난리야"하는 소리를 들었고, 안 주면 안 줬다고 "영수증을 줘야 할 거 아냐"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언제, 무엇을 했을 때 소리를 지를지 알 수 없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p98

-니시나 요시노, 『편의점 30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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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표지만 보고 편의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힐링소설을 예상한 독자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그게 나다....👀 그러나 이 책은 진정한 '편의점 인간'의 생활 밀착 극한 에세이로 휴일 없이 26만 2800시간 동안 영업 중인 일본의 편의점 '패밀리 마트'의 점주의 업무 일지이다:)

한국에 편의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시골의 작은 동네 슈퍼 자리에도 편의점이 들어왔다. 참새방앗간 마냥 들락날락하면서도 점주&알바생과 형식적인 대화가 전부였던 내게 이 책은 익숙하디 익숙한 편의점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물리적 공간의 편리함을 우선시 했다면 이제 이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기까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다는 사실. 진상은 차고 넘치는 현실, 휴일 없음, 알바 없음, 돈 없음의 쓰리 콤보가 활개를 쳐도 일은 계속 된다는 깨달음 같은 것들을 줄줄이 나열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사정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수수한 일상의 기록이라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음의 지옥문이 열리는 별별 사건과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 사이에서 덤덤함이 묻어나오는 건 3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삶을 이어온 저자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치솟는 인건비와 전기 요금과 씨름하면서도 다음 계약 갱신을 해보려" 하는 이들 부부에게 패밀리 마트는 사랑일까, 증오일까.

정답은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에 버젓이 쓰여있지만 나는 내 안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비록 30년의 반절도 안 되고, 업종도 전혀 다르지만 천천히 일을 정리하고 있는 때가 되니까 알겠더라. 다사다난한 지난 시간을 다시 돌아가 겪으라고 한다면 극구 사양하겠다만 그래도 증오보단 사랑이었다고. 무의미한 시간은 없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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