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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평점 :
『여기, 카미유 클로델』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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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자유롭게 숨 쉬어도 어떤 해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이미 알았는지 모른다. 자신을 다 소진해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예술을 하는 일과 진정한 일생을 사는 일이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걸. 그녀의 작품이 그녀 삶의 이야기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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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을 떠올릴 때면 으레 오귀스트 로댕이 함께 뒤따른다. 혹은 로댕의 커다란 이름 앞에 클로델의 작은 존재감이 드러나거나. 이 책에서도 그렇다.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를 걷어내고 그녀를 바라볼 순 있겠으나 로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말하자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요람에서부터 외로웠던 클로델은 자연속에서 진흙을 만지며 자랐다. 온가족이 파리로 거처를 옮긴 뒤 스승 알프레드 부셰가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자 제자들을 로댕에게 맡겼는데 둘은 그때 처음 마주하게 된다. 마흔두 살의 로댕에게 열여덟의 클로델은 그야말로 "오, 나의 천사, 나의 열정이여."이었다. 혼인신고는 안했지만 로댕에게는 이미 헌신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음에도 클로델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그녀가 더 가치있게 여긴 것은 예술적인 열망과 공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본성"과 닮은 로댕의 감수성과 감각때문이었을까, 그녀도 차츰 로댕에게로 마음이 기운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을 지닌 사람에게 더 쉽게, 더 많이 마음이 끌리는 법이므로. 한 남자가 돌을 다듬는 방식 때문에 한 여자는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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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함께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클로델은 단순한 제자와 조수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로 로댕의 작품에서 클로델의 손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미하지는 않다고 예측할 뿐이다. 더욱이 그들이 만지는 돌, 석고, 청동보다 단단한 사랑으로 빚어진 관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무렵엔 식어가는 로댕에 비해 불꽃처럼 피어나는 클로델을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를 알려고 하면 그가 사랑하는 방식뿐 아니라 괴로워하는 방식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인생에 대해, 예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가 견뎌낸 혹독하고, 아름답고, 미숙한 모든 것을...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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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반복되는 결별과 재회, 누군가는 회피하고 누군가는 애원하고, 증오와 연민이 한데 뒤섞인 이들의 관계속에서도 클로델은 쉬지않고 작품을 탄생시켰고 그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파국이자 붕괴였고 곧 체념에 이르렀지만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건 당시의 여성에게 갖는 편견과 차별이었다. 특히 그녀의 작품성과 별개로 "로댕의 뮤즈" 또는 "외교관이자 시인"으로서 이름을 드높이던 남동생 폴 클로델의 꼬리표였다. 그래서 그녀는 살면서 이 말을 제일 자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로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들이다."
돈이 많이 드는 조각이건만 재정상태는 최악이었고 가난이 덮쳤으며 클로델이 받는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녀의 방식대로" 한 인간이 으스러질 때도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벨 에포크. 1913년 파리에서 마흔아홉의 클로델은 동생의 의해 정신병원에 봉인된다. 코코 샤넬이 최초로 인공향수를 만들고 헤밍웨이의 아내가 기차역에서 그의 단편 소설 모음집 원고가 든 여행 가방을 잃어버렸던 때, 모네와 릴케가 죽고 미국에 로댕박물관이 개관하고 전쟁도 일어났던 30년동안 그녀는 "파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또, 다시는 흙을 만지지도 않았다. 오직 기다림만 있었는데 그건 엄마였을까, 죽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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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로댕을 만나지 않았다면, 재능이 없었다면, 엄마에게 사랑받았다면... 어떤 가정을 세워본들 그것이 클로델의 존재를 온전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멀찍이 서서 이 얼마나 안타까운 삶인가 겨우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작품 앞에서는 어울리지 않다. 어떤 삶이었건 그녀가 새긴 조각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은 이것만을 기억하고 싶다. 읽는 내내 아물지 않던 그녀의 고통이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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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카미유클로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