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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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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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게을렀던 건 아니다. 남들만큼은 노력했다고 믿었는데 부족했던 걸까. 더 노력한다고 달라지기는 할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더 하찮아 보였다. P12

🔖유령이 되는 건 외로움에 대한 저항이 실패하는 과정이었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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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양'이,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약국 전산원으로 취직하고 그 일상을 덤덤하게 그린 소설. 크게 김약사와 부장 조, 부모님과 기억속에만 남은 친구 혜가 등장한다.

"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은 설레면서 우울하다."는 양의 말처럼 이야기의 챕터는 0.1부터 시작한다. 0.2, 0.3, 0.4... 한 챕터를 끝마칠 때마다 양이 온전한 1이 되는 걸까, 면접일에 김약사가 산 사람도 '유령'이 될 수 있다는 드립을 쳤으므로 유령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일까, 온갖 추측을 남발하며 읽은 나와는 달리 양은 자기만의 페이스를 줄곧 지켰고 끝끝내 그리했다. 그건 양이 한걸음 더 내딛는 희망적인(대체 뭐가) 과정도 아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한걸음 후진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단지 희미해진 영의 자리가 서서히 선명해지는 것 같았달까. 그래서 '영의 자리'가 '0의 자리'가 아닌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혹시 '0'을 '공空'으로 읽는다면 이 존재가 너무 쉽게 비어버릴까 봐, 그럴바엔 차라리 영靈으로 존재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습니다.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꿉니다.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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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를 집에 데려다준 뒤로 단단한 기둥 같았던 사람이 연약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식된 면이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자리에 머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자리를 옮겨 앉는 순간 어긋난 틈을 메우지 못한 채 자꾸 벌어지기만 했다. 관계가 허물어지는 소리는 짧은 알림음과 긴 적요의 반복이었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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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설에 여지는 둔다지만 꼬치꼬치 해석하는 타입이 아니라 갸우뚱스러운 건 가볍게 넘어가는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를 좇는 재미가 붙었다. 말이 재미지, 가끔씩은 서늘할 때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양과 혜 그리고 조로 이어지는 미묘한 변화에 시선이 집중됐다.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사람의 예상치 못한 이면을 보았을 때, 느꼈을 때의 순간의 기억들. 혜를 빼고 양의 20대를 말할 수 없다지만 거의 썸타던 조부장과의 관계가 오버랩 되면서 허물어질 때 참 얄팍하다, 얄팍해- 혀를 찼지만 비단 소설속만의 일이던가. "컵에 가득 담긴 물은 마지막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로 넘쳐 흐른다." 마지막 딱 한방울이 씁쓸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자조 섞인 웃음만이 남았다.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편협해지고 멀어질수록 공평해진다. P219

🔖입장을 정한다 건 경기장 밖에서 응원만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링 위에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나는 선택을 주저했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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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약국이 배경이라 약국 내외부 사정(?), 시스템 등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 알았는데 후시딘과 마데카솔의 효능이 다르다는 사실. 후시딘은 상처를 소독해 감염을 막아주고, 마데카솔은 새살을 빨리 돋게 해서 흉이 덜지게 해준다는데! 여태 그냥 발랐는데 말이다!
+++ 김약사는 정말 주둥이를 한대 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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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서포터즈 <하니포터 3기>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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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자리
#하니포터3기_영의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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