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 - 영혼의 손길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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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이름이 내게 확실히 각인된 계기는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니었다.
유병록 시인의 산문집 <안간힘> 덕분이었다.
<안간힘>은 시인이 아들을 잃고 써내려간 치유의 기록이다. 그 중 자코메티 전시회에서 본 「걸어가는 사람 walking man」은 시인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담백하고 강건"한 위로가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나는 자식을 잃은 시인의 글 앞에서 내 고통을 덜어낸듯한 죄책감과 함께 시인이 얻은 위로의 원천인 작품을 만든 조각가가 못내 궁금해졌는데, 그것이 이 책을 읽게된 시발점이 되었다.


🔖"그날 한순간에 나의 일생이 변했다. 모든 것이 덧없이 느껴졌다."p99


그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아무래도 열아홉살에 노신사와 떠난 여행을 꼽아야겠다. 그동안 평탄한 일상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홀로 겪어본 적이 없는 자코메티에겐 노신사의 급작스런 죽음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인간 생명의 보잘것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자코메티는 조각이나 회화, 추상작품들까지 인물을 주제로 꾸준히 만들어냈다. 그의 손은 완성품을 향해 계획적이지 않더라도 조각을 훑으며 덜어내고 비워내면서 성냥개비만 한 크기에서 길고 가느다란 형상으로 변화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 즉 실패할 것이 분명한 것을 탐색하는 점,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알베르토가 헌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p308

돈다발이 굴러들어와도 7평 남짓한 작업실을 고수한 자코메티는 가족, 친구, 아내와 연인들을 모델로 세웠고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로드도 마찬가지다. 모델들을 오랜 시간 바라볼수록 낯선 인물이 되거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경험을 했던 그는 보는 것seeing과 존재하는 것being을 동일시 했다.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보는가"에 초점을 맞춘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이렇게 생명력을 가진다.


🔖알베르토의 자기 부정은 긍정에 대한 탐색이었고, 궁핍하게 지내기를 좋아한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사치, 즉 정신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결심이었다.p543

"안전한 성공을 경멸"했고 자기 표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만족했던 자코메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내인 아네트와의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웠다. 궁핍한 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육체적 관계(이유가 있지만)와 자녀계획도 무시되면서 그저 위대한 조각가의 아내 타이틀만으로 버티고 살았다는 점. 그리고 한참이나 어린 매춘부 카롤린을 여신화하며 말년에 남편이 돈을 뿌려대는 바람에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남편 사후에 법적 권리와 유산을 가지게 된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다만 저자가 미리 밝혔듯이 이 전기에 자코메티가 남긴 모든 종류의 출판되지 않은 글과 편지, 잡지등을 담지 못하게 권력을 행사한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어쨋든 남의 부부사에 말 한마디 보태는 것은 위험하므로 끝;

🔖"예술은 내게 매우 흥미롭지만, 진실은 엄청나게 더 흥미롭다." p45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자코메티라의 삶을 여행하는데 충분하다. 전기가 아니라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자코메티의 감정과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와 동시대에 살며 교류했던 피카소,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앙리 마티스같은 이름들이 등장하면 벽돌책의 무게가 더욱 묵직해지는 마법도... 무엇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뗄 수 없는 그의 동생 디에고 자코메티의 무게는 감히 잴 수도 없는 것이었다.
디에고가 아니었다면, 디에고가 없었다면... 아, 하늘에서 알베르토 역시 고개를 가로젓고 있을 것이다.

🔖"죽음은 존재하지만 존재의 부정이며, 예술은 불멸을 제공하지만 예술가의 죽음을 필요로 한다.p210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고자 했던, 앞서 말했던 시인이 얻었던 위로의 원천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냐면? 나야말로 그의 작품을 인생 어느 지점에 종종 떠올리는 것으로 대답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유독 와닿았던 그의 말을 덧붙인다.


🔖"나는 늘 생명체의 허약함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마치 계속해서 서 있으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서 언제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그리고 바로 그 허약함이 내 조각들과 유사하다."p271

✔자발적으로 서평단에 신청하여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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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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