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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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 #다다서재

​📖
남자 사진가는 청인(聽人)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음성언어인 일본어에 기초한 교육을 받았다.
단, 선천적인 난청으로 열여섯 살부터 본격적으로
수화언어를 사용, 스무 살 때는 보청기를 아예 뺏다.

여자 사진가는 농인(聾人)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태어났을 때부터 수화언어로 소통했다.
수어가 모어(母語)로 이른바 '데프 패밀리deaf family'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고, 아이가 태어났다.
이쓰키. 청인이다. 들을 수 있다.
이쓰키는 수화언어와 음성언어를 모두 사용한다.

언어도 감각도 서로 다른 세 사람.
 

📖
막연히, 아주 막연하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세상은 아주 적막해서
외롭진 않을까. 표현의 한계에 매번 부딪치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영혼을 흔들 음악,
웅장하고도 신비한 자연의 소리를 평생 소유해보지도,
마음에 담아보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엄청난 오산이었다. 부끄러울 만큼이나.

​📖
오직 보는 사람에만 그치지 않은 하루미치는
이렇게 말한다.

🔖
"네가 들은 것. 그것을 나는 바로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상상한다.
거기에 무슨 소리가 있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연달아 머릿속에
떠오르며 다양한 형태로 생겨난다.
이렇게 상상해도 괜찮다. 전혀 상관없다. 자유롭다.
공연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중략)
마나미가 말한 '느끼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더욱
깊게 온갖 것들을 느끼고,'상상하는 사람'으로서
만물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을 지녀야지.
그렇게 너에게 소리를 전해야지." p67

​📖
'눈에 보이는 것'을 그저 표면으로 훑었던 나와는
달리 하루미치와 마나미는 그 이상의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세계는 분명 경계선이 존재하지만
따로 또는 함께함으로써 불가항력의 기쁨을 매일 맞이한다.
이쓰키가 태어나서 더욱 견고하고 아름답게 말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나의 '다름'을 오직 '무無'에서
짚어냈던 것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였는지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
그래서 사소한 일상에 삶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먼저 볼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들 부부를 보며
배운다.

🔖
"다른 사람에게 내 의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장을 쓰는 데 필요한 문법처럼 규칙과 의미가
정해져 있는 것이 '언어'다.
한편 '말은 어린아이가 내는 소리나 춤, 그림, 동물의
울음 등 의미를 특정하기 어려운 행위를 포함한다.
달리 표현하면 '언어'는 의미를 관장하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상징하며, '말'은 감정이 의지를
뛰어넘어 절로 넘쳐난것이라고 할 수 있다." p220

​📖
종종 묘사되는 수어를 따라해봤다.
특히 손끝의 움직임이 꽤 복잡한 '달'을 여러번
시도해봤다.
딱 맞댄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끝을
벌리며 아래로 내리다 다시 좁히면서 내려 손가락
끝을 맞대는 것이다. 어린 이쓰키는 처음부터 그
동작을 잘 따라했다! (이쓰키는 이이쓰키라 그런가?!
무슨 소리야? 싶으면 책을 꼭 보세요😁)

낯설고 어색한 내 손동작에 수어를 처음 시도했다는
설렘과 뿌듯함같은 것도 섞여있었다.
분명 글로써 언어로 전달된 이 책은 내게 새로운 말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곤 했다.

문득.
아, 책은 계속 말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느꼈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읽은 게 아니고 보고 있었다. 말을 보고 있었구나!

순간 울뻔했다.품에 꼬옥 껴안았다.
잊지 않아야지. 오늘의 이 순간을 느낌을 기분을 만남을.

 
🔖태연한_pick
너와 생활하면서 목소리로도 손처럼 상대를
어루만질 수 있음을 떠올렸다.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떠올렸다.
갓난아이와 같은 무력함이란 거짓 없이 순수한
다정함의 결과임을 떠올렸다.
역시 마음속을 흐르는 시간이란 시곗바늘처럼
일정하게 나아가지 않는다.
마음속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삶과 죽음을
헤아리는 단위가 점점 더 세밀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네 덕분이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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