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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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나' 와 '자존감'에 대해 말하는 제목들을 자주 본다.
취향이 아닌지라 마주치고도 늘 지나치기 일쑤였다.
무한의 긍정과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제목만 봐도 나는 오히려 피곤함이 들더라.
태생이 그렇지 못 한 인간이기도 하거니와 읽는 노력을
한다쳐도 되지 않는 건 안되는 것을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에둘러치는 스킬만 늘었다.

그러다 유난히 신경 쓰이고 눈에 띄던 제목이 있었는데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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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자존감을 지키며 어찌되었든간에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들을 다 보고도 나를 끌어 올릴가 말까
할 마당에 창피하다니.

어쩐지 나는 괜찮다고, 나는 아니라고, 너와는 다르다고
건방을 떤 내면에 툭 던져진 이 한마디는 무언의 물결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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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를 졸업했고 좋은 직장을 다녔고 '묻지마' 퇴사를 한 마흔살의 사추기 김소민 저자.

쌓이는 고지서가 두렵고 고민하다 놓친 편의점 알바가
아깝고 무엇보다 말 시켜주는 사람은 다 고마워서
이렇게 1년이 가면 모든 인류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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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피식 피식 웃으며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아쉬워서 아껴 보려고 몇번을 덮고 펼치기를 반복했다.

글은 왜 이렇게 잘 쓰는 건지, 근데 또 재밌기까지 하면 어쩌자는 건지 불쑥 튀어나오는 찌질함에도
어? 이건 난데? 순도 99% 공감이 일렁인다.

고개가 절로 끄덕 끄덕하다가, 웃다가도 눈물이 찔끔 고이며
보는 문장들에 밑줄을 그어 보라면 책 한권을 몽땅 칠해야 할 판이다.

그녀가 쓴 글부터 인용한 문장들까지 어느 하나 가슴을
후벼 파지 않는 게 없다.
회사에서만 사회 속의 나를 경험한 탓에 인간관계도
회사가 둘러쳐줬고 하루 필요 인간 접촉량도 회사가
제공했다. 퇴사 후 홀홀단신으로 선 저자는 비로소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듯 싶었다.

전직 기자였던 시선으로 그녀가 쓴 글은 사회적 약자에게도
뻗치는데 나는 전혀 새로운 (과거)사건을 알고 한동안
멍해있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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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과 눈물을 빼면서, 쓰고 지웠다 쓰고 지우면서,
이별을 독립의 이야기로, 상실의 고통을 한때 가졌던
행운의 증거로, 결핍을 공감의 끈으로, 그리움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쓸 수 있다.
쓸 수 있다고, 쓰겠다고 다짐한다(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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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비유, 저자 고유의 감정선에 따라 풀어 놓은
에피소드들, 어떤 분위기에도 매력적인 위트, 인용에
선택한 책들의 센스까지.모든게 궁합이 잘 맞았던 책.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꼭 읽어 보라고
오두방정이라도 떨고싶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면서
쿨내 풍기며 아닌 척, 안일한 척 하며 피해자 또는
방관자 코스프레를 일삼았던 날들에 대해 충분히
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밀려오는 창피함은 가끔이라면 괜찮지 않나... 하며 안도 할 쯤에 다시 펼치게 만드는 마법의 책이다.
창피할 줄 아는 인간이라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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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실패일 것을 알면서도 끝끝내 이해하려는
정성이 사랑인지 모르겠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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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와 나 사이의)균형을 찾는 방법은 관계의
약자가 상대에게 쏟는 에너지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
스스로 서는 것밖에 없다. 해봐라, 되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당신에게 나는 무슨 의미야'가 아니라 나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내 가치를 타인이 아니라 내게 묻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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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 후려치면 제정신을 강탈해가는 '패닉'은 공포이자
외로움이다. 문제는 외롭지만 같이 있기 버겁다는 데 있다.
슬픔을 소화하는 데도 내장에 축적된 지방까지 박박 긁어
쓸 만큼 힘이 든다.
선의의 위로에 '고맙다' 응대하는 것도 힘겹다.
그때 필요한 건 같이 있으되 혼자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말이 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말 안되는 말을 해도 되는상대가 필요하다.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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