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법륜.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TV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결국엔 눈물을 훔치곤 했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전쟁을 직접 겪지도 않았고, 이북에 헤어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독 "통일"을 말하면 가슴 가득 울컥하는 무언가가 솟구치곤 한다.


먹고 살만한 시절에 태어나 살고 있는 나는
독립을 위해 비밀결사를 할 일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을 할 일도 없다.
내 눈에 정치는
밥그릇 하나 놓고 서로 차지하려 싸우는 개싸움으로 밖에 안보이고,
어느 쪽이 차지하든 결국 산으로 가는 건 매한가지인
그렇고 그런 그들만의 왕좌인 듯 하여
솔직히 와닿지도, 관심가지도 않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지금
새삼 관심 밖이던 정치가 눈에 보이는 건
아마도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걱정되서이리라.
지금처럼 이라면 필시 내 아이가 살아 갈 미래의 꼬라지가
지금보다 더 나을 것 같지 않기에,
적어도 내가 사는 시대보다 더 나아지진 않아도
나빠지진 말아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기에...


하지만,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어떤 것 부터?


이제 눈을 뜨기 시작한 나로서는
바른 식견과 명확한 비전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을 가리기가 참 어렵다.
이 사람이 이 말 하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이 저 말 하면 저 말 또한 옳은 것 같고...

이 책을 읽고 보니 나에겐 "역사관"이 없다.
제대로 된, 올바른 역사관이 내겐 없다.
아니, 나 뿐 아니라 이 땅, 이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역사관", "역사의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고,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오늘, 내일을 보던 눈에 10년, 50년, 100년 후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듯 했던 정치가
자고 있는 내 아이의 등을 구부릴 수도, 펼 수도 있단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의 눈속임같은 평화에 안주하고파
안되어도 그만이라 생각했던 통일이
역사적 숙제가 아닌 미래의 보험이란 생각에
또한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책은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역시 누군가의 사견일 수도 있지만,
이토록 설득력 있는 사견이라면,
그리고 이 이야기에 어느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가슴이 뜨거워 진다면,
함께 동조하고 뜻을 함께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너 이제 어디 갈 거니?> <지금 도서관에 가야 됩니다.> <도서관에 갔다가는?> <집에 가야 됩니다.> <집에 갔다가는?> <학교에 가야죠.> 이렇게 문답이 계속되다가 결국 <죽죠, 뭐>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자 다시 <죽고 난 뒤에는?> 하고 물으셨는데, 제가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스승님이 벽력같이 고함을 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 이놈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 -p.28-


"이제 더 이상 종교냐 과학이냐, 불교냐 기독교냐로 나누지 말고, 진실이냐 거짓이냐, 상식적이냐 비상식적이냐,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로 문제를 봐야 합니다. 저는 종교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종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잖아요. 그것을 똑같이 믿음의 한 종류로 취급해줘야지 종교가 없는 사람을 나쁜 사람처럼 취급하면 안 됩니다. 다 각자의 믿음이 있는 것이죠. 종교에도 신을 믿는 종교가 있고 신을 믿지 않는 종교가 있으며, 신을 믿는 종교 중에도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있고 다신을 믿는 종교가 있는 등 다양한데 그 중 하나를 가지고 다른 것을 쳐내고 단죄하면 안되죠." -p.42-


"젊은이들은 미래 비전적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때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면서 통일 이야기가 반짝 나왔지만 바로 사그라져 버렸죠? 과거 청산적 통일은 부담이 되거든요. 과거 청산적 통일이 늙은 부모를 어떻게 모시느냐의 문제라면, 미래 비전적 통일은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는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p.77-


"만약 우리가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20, 30년 후에는 우리가 중국의 변방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지금 미국은 세력이 점점 약해지고 반대로 중국은 점점 커지고 있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힘을 키워왔듯이 앞으로 20, 30년 동안 북한도 중국에 붙어서 힘을 키우고, 그때는 중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통일이 다시 시도될 수 있겠죠. 그랬을 때 우리 민족은 결국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합니다. 중국이 일으키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변방이 되고 마는 거죠. 그때 가서 통일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우리의 비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바로 지금이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을 만들 수 있는 적기라는 겁니다." -p.91~92-


"중국은 남의 나라 역사도 제 나라 역사로 만드는데, 우리는 제 나라 역사도 자꾸 남의 나라 역사로 만드니 문제가 있는 겁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거죠.
우리나라가 지금 세력이 약하다 해서 과거부터 변방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걸 우리가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민족사를 정립할 때 민족의 시원에 대한 정확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p.111-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생각을 자꾸 옛날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 새로운 시대에는 특정 국가의 주도력이 꼭 영토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거든요. 이제는 과거처럼 이웃나라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협력으로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본을 점령해서 우리 땅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한일 간 협력관계를 강화해서 우리 땅이나 다름없게 만들어야죠. 통일한국이 만약 일본, 동북3성, 연해주,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북아 지역의 공동체를 주도한다면, 그것이 곧 고구려의 예영광을 되찾는 것이나 다름 없겠죠. 사고를 옛날식으로만 하면, 이웃나라와 자꾸 싸우게 됩니다. 이스라엘하고 팔레스타인을 보세요. 서로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자기 땅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는 서로를 해치는 것으로만 보이잖아욧." -p.114~115-


"문제는 나라의 독립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10퍼세트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그 10퍼센트가 당장은 독립에 관심 없어 보이는 나머지 90퍼센트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의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지 않고 그 10퍼센트가 90퍼센트의 보통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나라의 독립에 관심이 없으니까 저런 사람의 이익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독립운동마저도 집단 이기적인 운동이 된다고 봅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여러 가지 피해를 봤듯이, 지금도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향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칩니다. 자각한 10퍼센트에 속하든 자각하지 못한 90퍼센트에 속하든, 통일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통일에 기여를 하면 됩니다. 지나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죠." -p.132~133-


"그 시대를 인정하고 역사를 껴안자는 말씀이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썼던 글 가운데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됩시다"라는 문장이 생각납니다. 시대도 역사도, 내 옆에 있는 어느 부족한 사람처럼 이해하고 동지로 삼아야 제대로 껴안을 수 있겠죠." -p.158-



"저항이란 그 당시 민중의 수준에 맞아야 두려움 없이 실천을 하게 됩니다. 현재 북한에서 주민들이 당국에 저항하는 것 가운데 장마당을 허용하라는 문제가 제일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냥 막연히 장마당을 허용하라고 하지 않고, 만일 배급을 못 줄 거라면 우리 스스로 장마당을 통해 먹고살 수 있도록 단속하지 말고 좀 놓아달라는 겁니다. 이런 주장은 누가 봐도 무조건 탄압하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갖고는 주민과 관리들이 싸운단 말이죠. 보안원하고 멱살까지 잡으며 막 싸우는데, 이것도 굉장한 하나의 운동이거든요.

저항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만일 `김정은 타도`라는 벽보가 한 장 붙었다고 해봅시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단지 겁낼 뿐, 대중한테 영향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어요. 그런데 어느 장마당에서 관리가 부당하게 주민들의 장사 밑천과 상품을 빼앗아갔다고 칩시다. 그래서 수백 명이 몰려가서 항의를 했다면 사람들의 권리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겠죠. 이런 흐름에 대해 우리가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주목하고 도와줄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해요. 실질적 개선이 가능한 것을 도와야 합니다." -p.192~193-







"오 : 스님도 자신의 문제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을 때가 있나요? 그럴 때는 주로 어떻게 해법을 찾으시나요?

법 : 우선 지금까지의 처방이 제대로 됐는지 되돌아보며 따져봐야겠죠.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적절하게 대응해야 그 문제가 풀리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잘못을 100만큼 했을 때 처벌도 딱 100만큼 해야 반성을 하는데, 처벌을 500정도 하면 아이가 억울해져요. 그러면 교육 효과가 나지 않죠. 그렇다고 처벌을 전혀 하지 않으면 아이 버릇이 나빠지잖아요. 그러니까 적절하게 판단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p.211-







"통일이 밥 먹여주느냐고들 하는데, 이렇게 되면 더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한계에 달해 있는 남한 경제가 통일된 나라에서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거죠. 연해주와 시베리아로부터 오는 안전한 에너지 자원도 확보할 수 있고, 중국 동북 3성의 노동력과 시장도 확보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거대한 하나의 내수시장처럼 되겠죠.

문명사적으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동아시아에는 크게 중화문명과 조선문명이 있습니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뿌리인 황하문명과 우리의 뿌리인 홍산문명이 있는데, 그 두 문명이 결합해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거죠. 우리가 이런 식의 큰 비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p.253-







"선배들도 못했는데 우리가 해내면 재미있잖아요. 요즘 젊은이들이 일제강점기에 살았다면 독립운동을 한번 해봤을 것이고, 1960년대에 살았다면 박태준 같은 건설의 리더십을 발휘했을 것이며, 1980년대에 살았다면 민주투사라도 되었을 텐데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버렸죠.

하지만 마침 우리 앞에 그보다 더 큰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앞의 것들은 다 20년, 30년짜리 역사적 과제인데 이건 100년짜리 잖아요. 통일은 독립, 성장, 민주화를 완성해주는 통합적인 우리 민족의 100년 과제입니다. 과거의 100년을 청산하고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는 이 좋은 일이 노력 없이 너무 쉽게 이뤄져버리면 안 되잖아요. 형설의 공이 들어가야죠. 통일이 너무 쉽게 되면 100년을 가기는 커녕 아시 10년 만에 무너질지도 모르잖아요. 버거운 과제인 만큼 사람도 많이 모아야 하고 연구도 많이 해야 하고 힘도 많이 모아야 하니 할 만한 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합시다.

이렇게 과제가 꽤 커야 일할 맛이 나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인생을 한번 바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나중에 아이들한테도, 아빠로서 돈은 많이 못 벌어줬어요, 엄마로서 유학은 못 보내줬어도 내가 이런 일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할 때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통일이라는 엄청 재미있는 일을 때마침 우리가 잘 만났다고 생각하면 힘이 돋고 기가 살 것 같아요. 우리 함께 해봅시다." -p.32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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