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읽는_신학도‬


*사랑을 잃고, 그 사랑을 빈집에 가두어둔 시인의 마음이 아련하다. 왜 빈집인가. 빈집은 비어있다. 헌데 역설적으로 그 비어있음이 가득찬 곳이 빈집이다. 아무도 없는 집을 들어갈 때의 그 헛헛한 마음. 그 공허감은 다른 어떤 빈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히 강력한 감정이다. 그 헛헛함과 공허함으로 완전히 채워진 곳이 빈집인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빈집을 잠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빈집에 가득한 헛헛함이 새어나올 수 있으니까. 겨우 무엇인가 쓰는 일에서 위로를 찾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