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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
박후기 글.사진 / 문학세계사 / 2013년 12월
평점 :
사랑의 물리학
- 상대성 원리 / 박후기
나는 정류장에 서 있고
정작 내가
떠나보내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던
당신의 일 분이
내겐 한 시간 같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생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당신은
날 알아볼 수 없으리라
늙고 지친 사랑
이 빠진 턱 우물거리며
폐지 같은 기억들
차곡차곡 저녁 살강에
모으고 있을 것이다
하필,
지구라는 정류장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한 시절
지지 않는 얼룩처럼
불편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울게 되었듯이,
밤의 정전 같은
이별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시읽는_신학도
*사랑에도 물리학처럼 법칙이 있다고 누가 믿을까. 시인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사랑에 적용하는 엉뚱한 발상을 한다.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상대성 이론을 알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서 생각한다는 것. 이 시는 시간과 사랑을 묶어서 생각한다. 당신에겐 일 분인데 내겐 한 시간이다. 내가 가진 사랑은 "늙고 지친 사랑"이다. 사랑도 시간의 흐름(늙음)에 지배를 받는다는 거다. 사랑 앞에 "늙고 지친"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갸우뚱한다. 사랑도 늙고 지칠 수도 있는 건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 사랑, 정말 그런가. 정말 그렇단다. 이 시가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이 물리학이라는 것을 받아드려야 하니까. 물리 법칙에 사로 잡힌 내 사랑이 애처로웠을 것이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울게 되었"을 것이니까. 그래서 이런 시를 썼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