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연서 - 디트리히 본회퍼와 약혼녀 마리아의 편지
디이트리히 본회퍼 &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지음, 정현숙 옮김 / 복있는사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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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와 약혼녀 마리아의 편지 <옥중연서>를 읽는 일이 즐거운 이유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지나가는 날짜들 속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석사논문에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한 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 민망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논문 하나 쓰는데 언급할 한 구절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기 때문에 부끄럽진 않다. 그 때는 번역본이 없어서 영문을 보고 썼는데, 이렇게 번역이 되어서 보고 있으니 힘들었던 시절에 사귀었던 친구처럼 반갑다.





내가 논문에서 언급한 내용은 1944년2월7일 마리아가 본회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작된다. 번역이 잘 되었으니 좀 길게 인용해보자.

"지금 저는 두꺼운 신학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다지 지루하지 않군요. 제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좀 더 당신 가까이 있고 싶어서일 뿐, '부르카르트하우스'와 같은 목적에서는 아니랍니다. 어쨌든 저는 지금 이 책을 흥미 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파울 쉬츠의 <복음>이라는 책입니다."

1944년2월18일 본회퍼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이 쉬츠를 읽는다니 매우 기쁘군요! 그러나 동시에 웃고 말았다는 사실에 대해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 지난날 신학자들 가운데 쉬츠만큼 저의 비난을 산 책을 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말해도 된다면, 그 책은 신학자들에게 위험할 뿐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책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로 키에르케고어의 <공포와 전율>, <그리스도교의 훈련>,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은 책을 읽는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1944년3월2일 마리아는 본회퍼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쉬츠의 책은 이제 그 가방 속에서 영원히 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일련의 책을 항목으로 만들어 저를 혹독한 학교로 인도하는군요. 이제부터 저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수줍어하며 당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고, 결국 '공포와 전율'로 '병들어 죽을 때까지' 키에르케고어를 읽어야 하겠군요."

본회퍼에게 키에르케고어는 강력한 "해독제"였다. 오늘 무수히 많은 신학서적에 파묻혀 있는 우리에게도 그것들은 또 다른 맹독이고 키에르케고어는 여전히 해독제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마리아의 고백처럼 '공포와 전율'로 '병들어 죽을 때까지' 키에르케고어를 읽어야하는 것 아닐까. 잠시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길, 저항의 두려움에 빠지는 길, 상상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길일지도. 나는 그저 소심한 얼굴 쳐들고 망연한 표정으로 묵묵부답 할뿐. 다만, 그 길에 본회퍼의 동행이 있으니 얼마나 큰 위로이고 다행인지.

덧니1. 마리아의 편지 중에 나를 설레게 한 문장이 있다. 누가 내게 이런 말을 한다면 당장 청혼을 해버릴지 모른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당신의 설득에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덧니2. 좋은 책을 번역해주신 복있는사람과 누구보다 빨리 책을 만나게 해주신 이승용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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