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 문장으로 쌓아 올린 작은 책방 코너스툴의 드넓은 세계
김성은 지음 / 책과이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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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시작하고 보면 다른 이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 갑자기? 왜 그 일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야.” 등등

하지만 당사자에겐 분명 갑작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욕구가 발현된 시점을 갑자기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코너스툴의 김성은 작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내면에는 충분히 책방에 대한 욕구가 쌓이고 있었으리라. 그 책방을 이용하는 독자들 역시 갑작스러운 듯 책방 독자가 되었다가 슬며시 책방을 떠나게 되는 것 모두 예정되어 있던 우연인 듯하다. 누구에게나 작은 위로가 되고 쉼터가 되어 줄 코너스툴이 지금은 잠시 중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책방을 열 때 그 첫 마음은 결코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책방의 시작부터 자리잡고 독자들과 소통하고 이웃들과 소통하는 순간의 에피소드들 하나하나는 이제 갓 책방을 시작한 책방지기에겐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새로 일어날 힘이 된다.

 

삶의 어떠한 순간을 기어코 생생하게 만들고야 마는 맞바람오르막길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심심한 일상에 양념이 되어 주는 야트막한 높이의 허들을....(22)

 

요즘에는 오히려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 손을 자주 문지르고 턱을 팔에 괸 채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내뱉기 전에 한번 더 입속에서 생각을 굴려보는 사람들. 기껏 꺼낸 목소리가 작고 약해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그들이 두르고 있는 하얗고 반투명한 커튼 너머로 취향의 윤곽이 하늘하늘 보인다면 내 배꼽의 방향과 어깨의 각도는 반드시 그들 쪽으로 틀어진다.(92)

 

어른이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 사실은 뭘 못하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다. 나는 부족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인데 어른이 되고선 무라도 있는 척을 하느라 허술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107)

 

처음부터 능숙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보다는 빈틈은 많지만 마음이 끓는 사람들과 쇠붙이부터 모으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109)

 

누군가에게는 그리 넓지 않은 책방의 문을 여는 일이 산중에 꽁꽁 숨겨진 화력발전소의 입장허가를 받는 것만큼이나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전이 한복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면 책방은 확실하게도 발전에 적합한 곳이다. 누군가 발전의 동력을 여기에서 얻었다면 몸과 마음 어딘가의 형광등은 마침내 켜질 테고 그러다 보면 아주 작은 발전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138)

 

책방지기로서의 마음을 떠나 삶의 순간마다 한번씩 떠올려 봄직한 작가의 표현들을 오늘도 다시 새겨본다. 어른이기 때문에 늘 한쪽 어깨에 무거운 부담을 가지고 지냈던 날들, 순간순간 불어왔던 맞바람들, 이제 다시 힘겹고 오르막길을 오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순간들을 작가의 마음으로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낸다. 다시 또 읽고 또 읽으며 느리지만 천천히 작가의 마음을 새겨보고 싶다.


#어느날갑자기책방을#김성은#책과이음#느린사람의읽는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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