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3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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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봐도, 신문을 봐도,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까 싶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 수도, 더 크게는 사회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모든 사건은 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지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은 두 남자가 늦은 밤 한 싸구려 바에서 대화를 나눈 모습이 목격되고, 그 다음날 그 중 나이든 남자가 조차장에서 심하게 훼손된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가마타 조차장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 느껴지는 살인 사건이지요.
목격자들의 증언은 남자가 동북 지방 방언을 썼다는 것과, '가메다는 여전하지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피해자의 신원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몇 달의 수사 끝에 수사본부도 해산되지요.
하지만 이마니시 형사는 틈틈이 이 사건을 추적해 나가고.. 진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은,많은 사건들의 진상이 그러하듯이, 알고보면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우발적인 것,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았을 이유이지요. 하지만 그 이유는 가해자에게 있어 꼭 그렇게 했어야만 할 필사적인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든가, 그것으로 인해 내가 타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온다든가.... 그런 것들이요.

그러니까 완전 범죄라는 것은 없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언제 무너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지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허상의 모래그릇처럼요.

 

사회파 미스터리가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새로운 예술을 표방하는 전위 예술가들의 등장,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상 등을 다채롭게 그려내면서 사건의 연쇄를 짚어나갑니다. 무엇보다 철도를 이용하여 각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역시 일본의 철도는 촘촘하게 퍼져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입니다. 엄청난 다작을 했구요, 미스터리물뿐만 아니라 순문학 작품에서도 뛰어나지요. (나오키 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가 심사위원의 추천에 의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게 된 일화도 있지요..)
세이초의 소설은 일단 술술 읽히고요, 시대상이랄지 사회적인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생동감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살아온 길과 그 배경을 꼼꼼히 짚어내기도 하고, 인물의 생활 그 자체를 보여 주기 때문에 인물의 면면과 심리를 자연스레 따라갈 수 있다는 것도 그의 소설의 매력이지요.

 

상권까지만 읽고 묵혀 두었던 세이초 전집을 다시 펴 보려고요. 세이초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볼 때인 것 같습니다.

 

여담> 제가 좋아하는 일드 중에 '검은 가죽 수첩'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요, 요네쿠라 료코가 악녀(?)로 나와요. 평범한 은행원이 정재계 인사들의 차명계좌를 알게 되고 화류계로 진출하여 정재계 인사들을 하나하나 협박하는 내용이지요.. 이것도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인데요..  번역되어 나올 기미는 없는 것 같네요 ㅠ 원작 소설이 너무 궁금한데.. 아무래도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빠르겠지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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