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제목처럼 따스한 내용인 줄 알았어요. '담요'라고 하면 보통은 포근하고 따뜻한 어떤 것을 떠올리니까요. 물론, 이 책을 읽는 어느 순간에는 포근함이 마음을 감싸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작은 상당히 우울해요.

 

 크레이그의 유년기는 우울하고 어두운 기억이 많죠. 무섭고 엄격한 아빠와 독실한 엄마, 그리고 장난기 많은 동생 필. 크레이그의 집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어렸을 때 동생과 더러운 장난을 치면서 노는 것도, 더럽고 유치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두 벌받아 마땅한 '죄'이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요. 항상 큰 아이들에게 놀림 당하거나 맞고, 따돌려지는 크레이그에게, 성경 시간에 배운 '천국'이란 모든 상처를 견뎌 낼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크레이그에게 성경은 진리이고, 예수님은 두려운 존재이지요. 하지만 크레이그는 늘 궁금합니다.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찬양이 될 수 없지? 왜 성경에는 모순되는 일화들이 있는 거지? 

 크레이그는 홀로이고, 생각이 많은 청년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한 성경 캠프에서 레이나를 알게 되지요. 레이나와 크레이그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지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들은 그들이 순수하게 그 사랑을 일구어갈 수만은 없게 하지요.

 레이나가 크레이그에게 선물하는 퀼트 담요에는 이런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크레이그가 유년의 모든 것은 태우고 저버리더라도 이 담요만은 골방에 넣어 둔 것은,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천을 하나하나 골라, 서로 엮어 나가는 과정에서 담겼을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 사랑의 마음을요. 

 그는 자라면서 많은 삶의 변화를 겪지만, 어쩌면 삶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삶이 커다란 퀼트 담요이고 경험과 생각들이 작은 퀼트 조각들이라면, 그 한 조각조각이 담요가 되기 위해 촘촘히 엮여 있으니 말이지요.

 

 부드러운 펜으로 슥슥 그려간 듯한 그림체와, 환상적인 장면들에 나오는 여러 문양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모든 선이 환희와 아름다움을, 우울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선 자체가 공포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작품 자체가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깊이가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청년 크레이그가 마음 속 포근함을 간직하고, 좀 더 밝게 잘 살길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