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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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편이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일본의 문화이 일본 사람들의
몸에 배인 듯한 친절과 질서의식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고 독도에 대한 망언을 하거나 역사적 자각이 없는 발언을 하는 것은 당연히 시정되어야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인정해야 할 점도 있긴 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이 국가 그 자체는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에 있고, 나는 당분간은 흔쾌한 마음으로 일본 여행을 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었다.
가깝고도 먼 그들은 누구인가. 알 듯 하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은 누구인가?
1944년에 미 국방부 위촉으로 쓰여진, 특이하게도 일본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저자의 연구로 쓰여진 이 책은 놀라운 분석을 들려 주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철저한 계층주의.
봉건사회에 살면서 철저히 영주에 복속되어 살아온 그들의 역사에는 혁명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 알맞게 사는 것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대동아 전쟁은 자기네보다 덜 발전했다고 생각되는 아시아 국가들의 알맞은 자리를 찾아 주기 위한 의도라는 그들의 주장은 이러한 계층주의를 근거로 한다.

둘째는 죄의식보다 큰 수치심.
어떤 죄를 저지르고 죄의식이 느껴질 때 이것을 고백해서 오히려 후련함을 얻고 죄의식을 더는 경우가 있지만, 그들은 그 죄가 알려짐으로 해서 생기는 수치심을 더 못 견디는 속성이 있다. 죄를 고백함으로써 생기는 문제가 더 큰 것이다. 나보다 남의 시선이 중요하므로, 수치심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이나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 온을 갚거나 온을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마음, 의무로 하는 것과 의리로 해야만 하는 것..
서양인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을 가치들이 - 일부는 자의적 해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 잘 풀어서 설명되어 있었다.

패전 이후, 그들의 손으로 전후 처리를 하게 하면 다른 나라의 시선을 의식해서 스스로 평화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군비를 억제함으로써 그들은 경제 발전의 발판을 다질 것이라는 예상도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통찰력 있다. 단지 승전국의 입장에서 쓰였기에, 식민지 생활을 하고 피해를 본 많은 국가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 여부를 간과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이 책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이 책은 일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생각의 물꼬를 틔울 수 있는 실마리를 여럿 제공한다. 이런저런 기사들과 현안 사이에서 이 책은 제 3자의 눈과 같은 객관성을 제공한다.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로서의 일본을 바라보는 데 또다른 시선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책이었다.
많은 사람이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면 좋겠다.

일본에게 불행한 일은 일본 점령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대동아의 이상을 일본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까지도 일본은 대동아의 이상이 도덕적으로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를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한다. 그들은 세상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움(하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자기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커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이자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상한 대망大望으로 나타난다.

수치가 주요안 강제력이 되는 사회에서는 참회승海僧에게 과오를 고백했다 해도 전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 행위가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고백은 도리어 스스로 고민을 자초하는 일로 생각된다. 따라서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론 신에 대해서도 고백의 관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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