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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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글쓴이가 감독인지 책을 검색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고 소문만 많이 들어왔는데, 그래서 더 순수한 마음으로 이 글을 담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한 감성 에세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익숙하고 가까운 공간에 대한 세심한 마음의 결을 담은 산문이었다. 일기 같기도 하고, 감상 같기도 한, 아주 가까운 곳에 놓일 쉬운 글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마음 깊숙한 곳을 톡 하고 건드리는 그런 글들 말이다.

중간중간 들어 있는 글쓴이가 직접 찍었을 사진들 속에서도 이런 감성들은 여실히 나타난다.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들이 가고 싶은 곳을 만들고, 그 가고 싶던 곳은 이상향으로 살이 붙는다. 서른두 살의 늦은 봄에 만날 뻔했던 그 공간은 그런 식으로 나와 인연이 된 것이다. -64p"

간 곳, 머문 곳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지 않은 곳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맞다. 어떤 공간을 꿈꾸고 거기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분명히 위로받는 순간이 있으니까.

 

공간과 분위기를 아주 세밀하게 느끼고 그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의 영화에 그런 감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겠지.

 

가을바람처럼 어느 순간 슥 불어와 마음을 선선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들이 가고 싶은 곳을 만들고, 그 가고 싶던 곳은 이상향으로 살이 붙는다. 서른두 살의 늦은 봄에 만날 뻔했던 그 공간은 그런 식으로 나와 인연이 된 것이다.
건대 앞 치킨 집 처마 밑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닥의 패인 홈을 내려다보며 피로와 슬픔의 한 덩어리가 턱 밑까지 차올랐다고 느꼈을 때, 나는 주변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출발 자세를 하고 있었고, 관계에 서툰 청춘에 지쳐 있었다. 그 시간 위에서 마다가스카르행이라는 잠시의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당시의 고단함을 이겼던 힘은, 가지지 못한 그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지지 못한 위로야말로 때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으로 둔갑하곤 하니까.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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