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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작가 이름 앞에 작가의 작품이 붙는 건 당연한 일인데, 수록작 <오기>를 읽으며 작가 본인은 『82년생 김지영』의 작가라는 수식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이제 이 소설은 무언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함의, 의제, 논란···. 물론 선두에 세워야 할 단어는 페미니즘이겠고.
무릇 페미니즘이란 젠더 따지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일진데, 필요는 하지만 전제 자체가 어긋난 논쟁을 보며 좀 신기했다. 『82년생 김지영』과 『우리가 쓴 것』이 던지는 이슈는 나를 둘러싼 주위에선 숨쉬듯 내뱉은 이야기들이었다. 활발히 논의되어 왔고, 그다지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었고, 충분히 공감하고 공감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두고 논쟁이 과열됐을 때 어느 쪽에선 평범한 이야기가 어느 쪽에선 불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몹시 신기했다. 한편으론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의 목소리는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는 뜻이니, 강 건너에 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리라. 그렇더라도 내가 나로 사는 이야기가 당신에겐 뭐 그렇게 불편하고 불쾌할까 싶어서 솔직히 말하면 웃겼다. 종내엔 우스워졌고.
어쨌거나 글이 가진 힘이 책을 뚫고 나와 세상에 뿌리 내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기분이 몹시 짜릿했다. 『우리가 쓴 것』은 또 어떤 이야기로 내 가려운 속을 긁어줄까 기대하며 책을 기다렸고, 읽었고,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한 남자의 내면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여서. 재미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글을 글로 바라볼 땐 재미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읽는 내내 '이건 너무도 현실이잖아!'라는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 책을 두고 '재미'라는 단어를 사용할 순 없을 거다.
수록된 단편 단편이 각기 다른 면모로 빛났다. 작가가 알알이 흩어놓은 단편을 독자가 하나의 주제로 묶는 결과값이 단편소설집의 재미라 생각하는 편인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세계'라는 매듭을 지으며 책을 덮었다. 각 편의 감상을 기록해본다.
매화나무 아래
큰언니는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회생 가능성 없이 누워 있다. 생사를 결론내지 않아 해결되지 않은 세계라는 건 내게 너무 무엄한 가치관이고. 그러니까 한 인간의 존엄을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가 마감했다는 것인데. 닫혔든 닫히지 않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소용도 없다. 작가가 띄운 운을 독자가 길어올려 저마다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이 소설 읽는 재미니까.
다음은 내가 파악한 작가의 질문이다.
- 무릇 인간이란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나.
-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다행한 일인가.
- 우리 존엄을 얘기해볼까.
그에 관한 나의 생각은 아래 옮긴 일부에 기댔다. 결론은 아직 없고, 사는 내내 생각해보지 않을까. 이어지는 내용에 더 풍부한 질문이 담겨 있지만, 일부만 옮기겠다.
"그런데 저는요, 할머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기적 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니고요. 그냥 살아만 계시면 좋겠어요."
"근데 승훈아. 나라면 싫을 것 같아. 아무것도 못하고 저렇게 누워만 있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교차로의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었고 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섰다. 승훈이가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걸까요?"
승훈이는 큰언니가 식당을 운영하며 쪽방에서 키운 손주다. 할머니를 갸륵히 여기는 장성한 손주의 마음보다 할머니랑 얘기하면 재미있다는 손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이 좀 낯설었다. 나는 재미있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키가 큰 청년 하나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는다.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알 수 있었가. 분명 나를 보고 웃었다. 아이고야, 나 노망났나 봐.
"이모할머니, 언제 오셨어요?"
말이 입술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놀란 건 위 네 줄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줄 몰랐다가 아니라, 나 역시 노년이 되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것 같기 때문에. 나의 미래를 예견한 내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는 편이 맞겠지. 이 대목에서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도 떠올랐다. 제리의 잔인함에 주목했던 영화였는데, 문득 만져지는 메리의 마음이라니. 이 영화를 다시 이해할 시즌에 접어든 것인가.

오기
오기에서 해결되지 않는 건 관계다. 혜원 선생님에게 보낼 수 없는 메일을 쓰는 것으로 마치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주인공이 발송 버튼을 눌렀다고 믿고 있다.
도무지 잡히지 않는 실마리로 이어가는 관계들. 나에게 인장을 남긴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들. 그게 곧 긍정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관계라는 건 대체로 오리무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에 휘둘리고, 그걸 명징하게 설명할 수도 없으며, 설명한다 한들 티끌만큼의 오해없이 전달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때때로 어긋나고 삐것대고 아름답게 안녕도 하는 것인데. 나는 오해라는 관계의 부스러기를 소명하지 않은 채, 순환에 맡기며 살아가는 경우와 입장이 많았다. 그리곤 시간이 흐른 후 깨닫는 것이다. 괜찮을 줄 알았던 그 지점이 내게 돌이킬 수 없는 구멍을 낸 거였다고.
아. 주인공이 자기고백으로 점철된 메일을 썼고, 끝내 발송 버튼을 눌렀다면, 그렇다면 이 얘기는 인생의 어느 단락을 해결한 이야기가 되는 거네.
여러 방면에서 '<오기>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제 경험담은 아닙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밖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소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거는 진짜로.
가출
가출한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서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세계'라는 건, 바꿔 말하면 '뭔가를 해결해야 하는 세계'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읽으면서는 '그러나 바뀌는 건 없다. 당연하다. 이게 현실이니까.'를 소설로 쓴 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소설 <가출>을 읽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아빠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지금. 그런 아빠를 위해 체크카드를 해지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보내는 딸. 그럼 이건 해결할 필요 없는 세계 아닌가.
미스 김은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네 번째 단편은 다시 해결하지 못하는 혹은 할 수 없는 세계로 돌아온다. 이건 좀 거대하다. 여자 혼자 살아가냐 하는 현실의 엄중함을 공포로 깨닫는 거. 혼자 자취해본 여자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거다. 다만 완연한 어려움 속 귀여운 복수가 들어 있다. 진짜 사소하지만 거슬리는 것. 차마 어디 내놓고 말할 수 없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종류의. 당신, 강력한 펀치라인을 못 가졌다고 살면서 뒷덜미 서늘하고 그러지 말 것. 당신이 가진 게 잽뿐이라면 끊임없이 잽을 날려라. 반복하다 보면 그게 당신의 돌이킬 수 없는 무기가 될 거다. 뭐 그런 기분이었다. 미스 김의 복수는.
현남 오빠에게
다섯 번째 단편 <현남 오빠에게>는 양상이 바뀐다. 해결되지 못할 뻔했던 현실을 주인공이 직접 탈출한다. 주인공은 10년 연애 기간 동안 애매하게 이상하고 불편했던 지점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깨닫고 회사를 휴직한다. 직업도 바꿔볼 예정이다. 오빠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다. 전화번호도 바꿨겠지? 청혼을 받고 가스라이팅을 깨닫다니. 일생일대의 위험에서 빠져나온 당신에게 축하를.
오로라의 밤
직장 다니며 육아까지 해야 하는데 의지할 곳 없는 여성이라면 너무 공감할 이야기. 고부관계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갈까 궁금하기도 하고. 주인공에게 주어진 환경과 별개로 인물의 내면에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단편이다. 페이지 모서리를 겹겹이 접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팔을 쭉 뻗어 앞뒤로 번갈아 박수를 치며 언덕을 올랐다. 언덕이 너무 어둡고 조용해 갑자기 야생동물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기척을 하라고 가이드가 말했었다.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그게 안전해요."
내가 있다고, 가까이 간다고, 피하고 싶으면 피하라고 알려 주는 일.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
여자아이는 자라서
현남 오빠로부터 탈출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여성은 다시 십 대로 돌아가 좀 더 계획적으로 현실을 전복하려 한다. 잘못한 당사자가 정식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대안을 마련할 마음은 없고 내빼기만 하니 현장을 잡는 것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덫을 놓는 게 전복이라니. 애초 상황이 성립되지 않는 게 중요할 텐데 '정식으로 사과받고 재발 방지'를 대책이라고 쓰고 있는 내가 싫다. 하. 도대체 니 몸 내 몸 다 중요하다는 건 어디서 배울 수 있나. 난 배웠던가. 난 내 몸을 아꼈던가. 누가 내 몸을 소중하게 대해줬나. 너무 공포스러워서 읽다가 몇 번이나 멈췄다.
내 마음을 파고든 작법 하나도 기록해둔다. 완두콩, 아보카도로 이어지는 식탁 위 열매로 정서를 만든 작가의 세공력을 무지 배우고 싶었다.
첫사랑 2020
너무 슬픈 이야기인데 너무 귀엽게 쓰셨다. 이 단편은 작가의 말도 소설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옮겨두겠다.
"코로나 19로 일상이 무너졌던 2020년 여름에 썼습니다. 교육과 보살핌의 공백에 방치된 아이들, 고립된 아이들, 표정과 몸짓이 함께하는 대화를 나눌 수 없고, 땀이 나도록 뛸 수 없고, 이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어 더욱 불안한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자라게 될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소설 속에서 선생님은 두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선생님이 뭐가 미안하냐는 물음에 글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답한다. 코로나 이후 나 역시 짝꿍이나 친구들과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