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에 둥근 달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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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그림책 <오늘은 하늘에 둥근 달>이 도착했다. 

하루를 여는 시간과 하루를 닫는 시간의 에너지를 담은 두 그림책을 나란히 세워본다.

정말이지 '에너지'라고밖에 설명 못할, 그림과 글씨를 뚫고 전해지는 기운이 담긴 두 그림책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이 아침의 상쾌한 에너지를 전해준다면, 

<오늘은 하늘에 둥근 달>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차분하고 고요한 에너지를 전해준다....

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직 꺼지지 않은 태양의 잔불이 느껴진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떠야만 시작되는 이야기가 가만히 고개를 드는 기분.

달무리가 줄지어 산책을 나갈 때 빚어재는 미묘한 뉘앙스가 은근하게 전해지는 기분.

괜히 모두 잠든 밤에 나 혼자 차라도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소박한 열기가 몸을 데우는 기분이다.

표지를 보자마자 '사랑'이라는 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달이 아름답네요'라 번역했다던 나쓰메 소세키가 떠올랐다.

아, 맞아. 밤이라는 손님은, 밤새 써 내려간 편지가 아침에는 부끄러워지는 이상하고 달뜬 열기가 흐르는 시간이었지. 

밤이란 그런 것. 그런 밤에 둥근 달까지 떴으니.


지난 2주 동안 침대 헤드에 올려두고 밤마다 아이와 함께 읽었다.

그림책의 마지막 문장인 '선물 같은 달님'을 큰 소리로 따라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도 선물 같다.

밤새 우리의 머리맡을 지켜주는 그림책의 고단함은 모른 척하기로 한다. 내내 위로로 기억하고 싶은 책이라서.


첫 페이지의 주인공인 아기가 하늘을 본다.

하늘엔 둥근 달이 떴다.

다음 페이지에서 그 달이 비치는 이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 무용수다. 

그다음 페이지에 등장하는 운동화를 품에 안은 소년이 버스를 탄다.

소년의 앞 좌석에는 무용수가 앉아 있다.

동네 공원은 밤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역시, 달이 그곳을 비춘다.

그 달은 공원 옆 아파트 또한 굽어본다.

아까 그 무용수가 춤 연습을 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무용수의 집 위층에 또 다른 주민이 제 할 일을 한다.

이렇듯 달을 중심으로 같은 시공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페이지마다 소개된다.

그들이 겪는 시간, 그들을 감싸는 달의 온도, 모든 것이 우리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 혹은 희망을 품게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페이지는 기타 연습을 하던 이가 등장하던 대목이었다.

그림 옆으로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연습하고 있어요.'

상상해본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는 부모님 반대에 부딪쳐 할 수 없이 회사에 취직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마음 어딘가가 허전하다.

그러다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기타 가게에서 홀린 듯 기타를 한 대 샀다.

그리곤 밤마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연습하는 거다.

성실한 직장인의 아침에 창문을 열고, 오늘은 하늘에 둥근 달이 뜨면 기타를 치는 거지.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버리곤 새벽녘에 일어나 달을 바라보는 요즘의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간절히 바란다.

하늘에 달이 떠야만 겨우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게 가끔은 울적했는데, 

누군가는 그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연습하는 데 쓴다니. 

그 정성이 너무 예쁘고 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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