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65
강경수 지음 / 시공주니어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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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달이 뜬 어느 밤. 깊은 시름이 빨간 지붕집을 찾아갑니다.

개구리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죠. 내일은 꼭 펭귄 선생님을 찾아가 봐야겠다고요.

다음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마치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처럼 등장하는 제목이라니.

제 귀에는 넷플릭스의 오프닝 시그널 '두둥'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때 눈치챘어요. 범상치 않은 그림책을 만났구나.

서사보다는 캐릭터에 빠져 책을 따라가는 24개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저로 말할 것 같으면요.

그동안 해외에서 출판된 전집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이를테면 추피나 곰돌이나 바바파파 같은 캐릭터들이 이끌어나가는 시리즈를요.

아이가 워낙 좋아하니 매일 읽어주긴 하지만, 이 책들에게서 아쉬운 부분이 눈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특히나 음식, 놀이, 문화를 토대로 만든 생활 동화들을 읽어줄 때면, 한국 사람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정서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에 목말랐습니다.

아름다운 한글의 말맛을 잘 살린 한국 사람이 쓰고 그린 캐릭터 중심의 그림책.

그게 바로 제가 찾는 거였어요.

그리고 마침내 찾았습니다.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을요.

이미 <코드네임 J>라는 시리즈로 유명하신 분인데 그것도 모르고 괜히 다른 나라 캐릭터들 부러워했어요.

이 책 펼치자마자 아이는 앉은 자리에서 4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이 저희 집에 온 그날부터 오늘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이가 선정한 잠자리 독서 목록에 포함되었습니다. 보통 3일이면 질려 하는데, 이거 저희 집에서는 대단한 사건이에요.

반복되는 문장에서는 안정된 리듬감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이어지는 내담자로 숫자 익히기를,

본인에게는 진지한, 듣는 '어른' 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은 고민으로 웃음을,

그러나 그 고민을 고뇌하며 경청하는 아이를 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유리창 너머로 상담실을 힐끔대는 다음 내담자를 보며 숨바꼭질 놀이를,

각 내담자마다 다른 포즈로 귀 기울이는 펭귄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자세를 배우게 되는 이 책.

얼핏 단순한 구조 같지만, 깨알 같은 의미를 곳곳에 심어놓아 발견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아, 펭귄 선생님의 반전 또한 잊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을 고뇌하며 경청하는 아이를 보며 새로운 깨달음"이라고 쓴 이 부분을 좀 더 정리해두고 싶어요.

이제 연어가 맛이 없다는 곰이나, 겨울잠이 안 온다는 개구리 등 동물들의 절실한 고민이 어른인 저에게는 그저 유머 코드로 다왔는데, 아직 동물들의 속 사정을 모르는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정말 심각하게 듣더라구요.

왜, 살면서 마주치는 가족, 친구, 지인의 고민이 내 보기엔 별로 심각하지 않을 때 있잖아요.

나에겐 정말 죽을 만큼 심각한 문제인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요.

그동안 내가 맞닥뜨렸던 수많은 상황이 떠오르면서, 고민과 걱정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 돌아보게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고민도 걱정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경중이 다르다는 의미겠으니, 나 역시 잠깐쯤은 걱정을 가볍게 바라보자고 정리하고 책을 덮었어요.

그런데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고민이 떠오를 때면 경중에 상관없이 잘 들여다보고 다독이고 소화시켜보자는 마음이요.

요즘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저에게 누군가 선물해 준 비밀의 열쇠 같았어요.

참. 우리 집 꼬마는 이 책의 면지마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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