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그림책 수급 현황 및 독서 과정은 이렇다.
일) 아이의 취향, 최근 관심사, 발달 단계, 엄마 취향 조금 어울렁더울렁 섞어서 대여섯 권의 그림책을 고른다.
이) 매월 초 고른 책을 사들인다.
삼) 이 아이는 낯선 책에 흥미를 느끼는 타입이 아니므로 전면 책장에 꽂아두고 자연스럽게 노출한다.
사) 아이에게 한 권 한 권 표지 보여주며 읽어볼까? 의사를 묻는다.
오) 읽는다면 오케이. 안 읽는다면... 그것도 오케이.
대체로 엄마가 제시하는 책에 이견이 없었는데 두 돌이 되어가며 변화를 맞이했다.
호불호가 명확해졌고, 오로지 익숙한 책만 고집하며, 앉은 자리에서 30번씩 반복해 읽던 습관도 서서히 옅어졌다.
그리하여 요즘 아이에게 읽어줄 책 선별 작업이 난항이다.
3월에 선정한 그림책은 총 여섯 권이었는데 모두 실패했다. 단 한 권도 읽자 소리를 안 한다.
책을 들이밀 때마다 "딴 거."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럼 넌 어떤 책이 읽고 싶니? 언제쯤 너와 함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를 수 있니?"
대답 없는 아이를 뒤로하고 이번 달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본다.
먼저 엄마 취향이 도드라진 경향을 들 수 있겠다.
그림 차분하고, 글 길고, 무엇 하나 23개월 남아의 흥미를 끄는 구석이 없다. 반성한다.
그다음은 책 좋아한다는 아이라 과신한 것.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책을 골라버렸다. 미안하다.
이 책도 저 책도 거부하며 오직 추피 외길 인생을 걷는 아이를 보며 심히 갈등했다.
23개월 동안 좌충우돌하며 평준화된 맛집인 전집보다는 월등히 특출난 맛집인 좋은 단행본 한 권을 반복해서 읽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순간 다른 전집을 구해줘야 하나 고민했었다.
확신도 없는 채 결제창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하던 찰나 도착한 그림책 <곰 사냥을 떠나자>.
같은 문장이 두 페이지에 한 번씩 반복해서 나오는데, 소리 내어 읽어보니 운율 살리기 좋지 아니한가!
혹시 이 그림책이라면 이 책 저 책 다 시큰둥한 아이의 잃어버린 책맛을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3일 정도는 강력하게 거부해서 진땀 좀 흘렸다.
우리 집 꼬맹이가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시간은 잠자기 직전인데,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는 의식을 치른다.
욕심껏 골라온 책 무더기 속에 이 책을 스리슬쩍 껴 넣고 한 번, 두 번 읽어줬더니 어느 날부터 순순히 듣고 보더라.
성공 요인을 복기하자면, 읽어줄 때마다 반복되는 문장을 다른 리듬으로 읽어주니 차츰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 같다.